씩씩하다는 말은,

씩씩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by 아보카도

둘째 아이가 지난 토요일 제 언니랑 서울숲을 다녀왔는데,

둘이 신나게 자전거를 대여해 탔다더니 생각보다 귀가가 늦었다.

밤 10시. 집으로 오는 방향의 광역버스에 자리가 없어 몇 대를 놓치고선 그래도 내일이 일요일이니 지각할 일은 없겠다며 깔깔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그렇게나 건강하던 둘째가 열이 올랐다. 해열제도 잠시의 열내림에 자기 몫을 다했을 뿐,

39도까지 열이 오르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 8시 20분,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 엄마입니다."

"네?"

"네 **이 엄마입니다. 다름 아니라 **이가 독감인 것 같아서요.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어머님~ 요새 유행하는 독감이 초기엔 검사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 일단 오늘은 보내지 마시고요. 내일쯤 가보시고 확진이면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일요일 열나고 월요일 학교전화, 화요일엔 병원. 둘째라 그간 쌓인 경험이 있고 5학년이나 됐다 보니 그렇게 놀라거나 걱정스럽진 않아도 아파서 축 처져있는 아이를 보는 건 내내 안쓰러움을 동반했다.


열나서 안아달라는 아이를 차마 뿌리칠 수 없어 팔베개를 하고 재웠더니, 아니나 다를까 화요일엔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등이 쑤셨다. 아무리 매트를 고온으로 높이고 전기스토브를 켜놔도 추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둘째도 이렇게 아팠겠구나-' 둘째는 춥다는 얘기에 있는 힘껏 모든 이불을 내 위로 쌓아 올렸다. 기력이 부족해 겨우 김치라면을 하나 끓여서 나눠먹었는데, 몇 년 만인지 모를 구토를 쏟아냈다.


학교에서 네시쯤 돌아온 첫째는 여태 본 적을 손에 꼽는, 청소 안된 어지러운 집을 보더니 말이 없었다. '이해하지. 이해하고 말고지. 안 아픈 게 이상하지'하는 눈빛.


둘째 아이가 받아온 타미플루를 내가 두어 번 먹고 나서 추위가 가라앉았다. 수북이 덮인 이불을 걷어내고 나는 첫째한테 물었다.

'엄마 요즘 어때 보여?'


그랬더니 말수 적고 속 깊은 첫째는

'엄마?! 씩씩하지.'

'그래? 아파도 그렇게 보여?'

'씩씩하단 말은, 그동안 충분히 씩씩했으니까, 아픈 오늘만큼은 씩씩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라고 전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보카도의 말

- 누구나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열심히 사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그러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신호를, 몸이 먼저 보낼 때도 있습니다.

'씩씩하다'

저희 애들이 종종 듣는 이야긴데요.

제가 먼저 그런 모습으로 오랜 기간 살아낸 것 같아 마음이 담담하게 혼자서 뿌듯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저는 줄곧 '씩씩했으면 좋겠어, 씩씩해야 해'로 해석해 듣곤 했습니다.

큰아이가 내놓은 또 다른 해석은, 시작이 어딘지 모를 위로와 격려의 언어였어요.


씩씩한 모든 분들. 그래야만 하는 모든 분들.

아픈 날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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