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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낙원

by 마이분더






언젠가 낙원에 도착해 있을 나를 꿈꾼다. 두 눈을 감고그때를 떠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딱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줄 수 있다고 한다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화창한 아이의 인생을 보장해 달라고 빌 것이다. 하지만 넓은 아량을 가진 지니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것도 물론 첫 번째 소원은 ‘아이의 인생’일테고, 두 번째 소원까지 ‘나와 가족의 건강’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세 번째다. 나는 항상 마지막 소원을 앞에 두고 두 가지 갈림길 사이에서 망설인다. 하나는 꿈, 다른 하나는 돈, 둘 중 무엇이 나를 낙원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를 두고 기로에 선다.


꿈이 이루어지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 꿈은 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쪽에 가깝다. 읽고 쓰고, 그것에 관해 대화하고 여행하며 사는 것이 내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에 어느 정도 야망을 덧입혀 ‘어느 날 유명한 출판사 편집장이 내가 쓴 글을 읽고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면?‘, ’어쩌다 출판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면?’, ‘유명세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시간에 값을 매길 수 있다면?’, ‘ 결국엔 그 돈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야망 가득한 상상처럼 된다면 마지막 소원은 꿈을 이루어 달라고 빌고 싶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은 언제나 희미하고 현실적인 불안감은 보이는 것처럼 선명해서, 나란 사람의 머릿속은 또 생각의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마지막 소원으로 돈을 선택한다면? 그 돈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읽고 쓰고 여행을 다니면 되는 것이 아닌가, 스치듯 상상을 해보지만 그건 너무 쉽게 공허해졌다. 진심이 없는 껍데기를 돈을 주고 산 것 같은 기분은 내가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도 나에게 묻고 싶지만 여전히 마지막 소원을 결정하지 못했고 결국 나는 아직 낙원에 도착하지 못했다.


나에게 현실 가능한 낙원이란, 하루 종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을 보았다. 매 순간 궁지에 몰려있는 상연과 그에 비하면 보통의 일상을 누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은중, 두 사람의 선망과 원망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다.


<은중과 상연>을 보는 내내 나는 상연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다.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에게 보상은 왜 늘 하찮고, 불행은 감당할 수 없이 크게 찾아오는 것인지.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상대를 보면 ‘저 사람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어도 저 자리에 있을수 있었을까?’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상연의 모습을 보며 단순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라며 그깟 질투심으로 단정 짓기에는, 상연은 너무 큰 불행이 인생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있고 사라지지도, 지나가지도 않은채 계속해서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런 사람이 타인을 향해 갖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과연 누가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기억해야 해 가슴속에 사라지지 않은 구멍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가,
글 김개미, 그림 이수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구멍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고, 또 너무 적다. 구멍의 크기가 자꾸만 커져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경험의 이유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불행만을 경험한 사람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크고 깊은 희소한 불행 속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나의 낙원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단념한 지금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있다면 마침내 당도한 그곳에서는 부디 커다란 구멍 안으로 희망의 물결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그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바란다.






북토크 메모장

1) 24.12.04, 그림책 수업, 무루 작가님 작업실

-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가> ‘현실로 닿지 않고 꿈으로 사라진다’ 그림책에서 공간성은 판타지로 진입한다. ex) 숲에 도착하자 2족 보행을 하는 고양이

- 너무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또 다른 소중한 존재들이 눈에 보인다

- ‘없음’은 부재가 아니고 이전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곳에 없음은, 어디에나 있음’

-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가 전달될 때는 반드시 이야기는 굴절된다. 그 굴절된 각도를 회복하는 방법은 심미적 감동과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것이다.

- 성숙하는 과정에서는 ‘기쁨’보다 ‘슬픔’의 과정을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 모두는 ‘함께’ 였음을, 그 소중함을 기억해야 한다.

- 추천 그림책 :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가>, <세상의 모든 밤에>, <판판판 포픠포픠>, <워터보이>, <구멍>


2) 25. 9.11, <우리가 모르는 낙원 > 북토크, 리브레리아 Q

- 낙원의 조건

•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존재와의 조화. 공생

• 불행의 요소가 소거된 상태

• 현실적으로 가능한 안락과 평온, 음악과 숲이 보이는 창밖 풍경, 커피와 함께 있는 공간, 찰나의 감각 같은 것

-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 누군가에게 낙원이 될 수 있다.

- 추천 그림택 <기다리고 있어_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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