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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by 마이분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거짓이다. 천주교 신자로써 기도를 할 때도 진짜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나만을 위한 기도를 해도 되는 것일까? 싶어 애써 이타심을 끌어모아 남을 위한 기도를 슬쩍 끼워 넣는다. 이를테면 누군가 내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벌 받게 해달라고 빌다가 금세 마음을 바꾸어 상대의 마음이 평온으로 물들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또한 승승 장구하는 타인의 모습에 배가 아플 때면 앞으로의 성공은 나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바라다가 이내 다시, 그가 계속해서 잘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리고 그 곁에 있는 나는 더 큰 배움의 기쁨을 얻게 해달라고 눈치 보는 착한양처럼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거짓으로 물든 바람 속에서 10년 가까이 한 가지 기도만은 솔직하게 빌었다. 그것은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연락을 하셨지만 내가 걱정할까 봐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늦게나마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아이에 관한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 말씀하시더니 이내 내 마음을 위로하시려는 듯, 몇 가지 어려움 보다 더 많은 가짓수의 잘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물론 전화의 목적은 몇 가지 어려움 때문이었다.그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것들이었다. 자주 공상에 빠지고 또래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것에 긴장하고 시간 약속에 유난히 민감한 것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내가 도와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와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편안한 환경에서는 누구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말로도, 그림으로도 보여주지만 밖에서는 달랐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쉽고 평범한 어울림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어렵고 힘든 일이었고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한 없이 가라앉는 날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기도만은 열심히 했다.


작년에는 어렵게 설득해서 아이와 남편도 성당에 나 가고 세례를 받았다. 이쯤이면 이제는 하느님도 아이의 안위를 보살펴주겠지,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고, 공상보다 현실 속 기쁨을 더 크게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겠지 기대했지만 여전히 모두의 하느님은 나의 하느님, 우리 가족의 하느님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잘 되는 사람은 그냥 잘 되고 안 되는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점점 신앙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쌓여 갈 때 정신 작가님의 <40세 정신과 영수증>을 만났다. 정신 작가님은 작가님이 25세일 때 쓰셨던 첫 번째 <정신과 영수증>으로부터 알게 되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180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이번 <40세 정신과 영수증>은 25세 이후부터 20년간 모은 영수증을 토대로 작가님이 남편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여정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그 가운데 나와 같은 천주교 신자로써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 신앙에 대한 나의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작가님은 마음속에 있는 모든 말들을, 그것이 좋은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궁금한 마음이 있다면 모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눈치 보지 않고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해 기도했고 의구심이 생기면 있는그대로 질문하는 기도를 했다. 여전히 정답을 모르고 알 수 없는일들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속이 후련해졌다.


아이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웃으면서 학교에 다닌다. 가끔은 공상에 빠지면서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그렇지만 자기 할 일을 해내면서. 나 역시 가끔은 아이 걱정에 두려움에 떨면서, 그렇지만 내 할 일을 해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선생님은 통화를 마치며 아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다고 했다. 또래보다 순수하고 맑아서 무척 귀엽고 소중하다고 했다.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 나는 괜찮다. 아무것도 이루 지지 않아도 이루어진 것처럼 살만해졌다.



여자가 되는 것은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40세 정신과 영수증>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큰 세상이 우주만큼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이미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북토크 메모장
25.05.21. <정신과 영수증>, 정신과 사이이다, 사회 이연실 편집자, 장소 카페 흙


<정신 작가님>

- 영수증을 모으고 나의 기억을 '영수증'이라는 프레임으로 편집한다.

- 잊고 싶은 순간을 영수증을 버리면서 지운다.

- 영수증의 순서를 바꾸며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의 순서를 바꾸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길게,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은 짧게 시간의 길이를 편집한다.

- 영수증을 통해 그때 함께했던 이들과 서로의 단상을 나누고 기록한다.


<사이이다 작가님>

- 평화의 비법은 감사하는 것과 과오가 있다면 상대에게 직접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다.

- 영수증으로 발급받지 못한 것들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수유, 엄마가 차려준 밥상 같은 것. 그런 이야기들의 영수증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급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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