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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언니를 읽고

서평

by 문이


마지막 장을 닫으며 진한 여운이 한참을 가슴속에 머물렀다.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도 가슴이 뭉클하다. 아마도 내가 50 언저리를 지나는 중년이라 내 얘기 같아서, 주변 중년들이 생각나고 책 속 선이가 생각나서 더 그런 것 같다. 임영웅의 '바램' 노래를 찾아 들으며 중년들이 지닌 마음결이 공명된 상태에서 읽었기에 더욱 눈물이 났나 보다.



이 나이쯤 되면 인생을 절반쯤 살았기에 자꾸 지나 온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가까이 삼사 십 대에 나의 삶은 어떠했는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 있고 지혜롭게 극복하거나 피했을 문제들도 그때는 정면돌파하느라 너무도 아프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비하면 내가 걸어온 길은 그리 굴곡진 인생도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뭐가 그리 힘들다고 징징댔을까.




줄거리


선이의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원양어선을 타고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첫째 언니, 둘째 언니, 오빠, 선이, 옥희, 막내. 이 6남매가 엄마와 함께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간다. 엄마는 오빠의 일로 인해 어느 날 사라져 생을 마감한다. 언니들과 오빠는 집을 떠나고,


그 후 선이는 홀로된 아버지와 엄마 잃은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아버지는 남은 자녀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장애가 있는 옥희를 시설에 버린다.


선이는 결혼을 하고 남편과 가구점을 하면서 아들 환희의 교육에 열을 올린다. 살만하니까 IMF가 닥쳤고 조카에게 빌려준 사채 빚에 갇힌 남편 태준은 가족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남편을 잃은 선이는 억울함, 원망, 책망, 우울, 화병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이를 지켜보던 막내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주었던 선이 언니를 생각하며 조카와 언니를 돌보며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인상적인 부분


소설 속 내용은 나와 내 이웃들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것처럼 친숙했다.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서로를 위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감사했다. 막을 수 없는 불행들은 마치 경사진 길에 무거운 돌들이 굴러와 깔고 지나가는 듯 무섭고 아팠다.



"선이의 학벌에 대한 욕망은 아버지의 한이었고, 오빠의 한이었고, 자신의 한이기도 했다. 그 한을 풀어내려던 대상이 막내에게서 이제 아들 환희로 전가되었을 뿐, 그 욕망은 더 거세게 활활 타올랐다."


선이언니, 182쪽



"누렇게 달궈진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은 부인은 손님에게 알아서 챙겨가라며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문 안쪽으로 던져주는 돈을 잡느라 그제야 남산만 한 엉덩이를 치켜들고 방바닥을 기다시피 돈을 쓸어 담았다. 덩치는 산만 한데 자신은 매일 귤만 있으면 된다고 귤 바구니를 끼고 살았다. 익어 벌어지기 직전인 석류알처럼 튀어나온 볼이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 같았다. 들러붙은 살점이 뒤룩뒤룩 오리걸음을 걷기도 힘겨워 보였다. 그 큰 덩치에 가려 잠들어 있는 김 영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이 언니, 189쪽



아버지와 새 부인에 대한 서사에서 심봉사와 뺑덕어미가 떠올라 흥미 있었다. 욕심 많은 새 부인에 대한 묘사에서 그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8장에서 "갔어야만 했다. 그렇게 애타게 부를 땐 그냥 갔어야만 했다."로 시작하는 문장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225쪽에서 229쪽까지 선이 남편 태준이 죽기 전에 한 일련의 생각과 행동들이 자세히 묘사되었는데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다. 나의 시선이 그를 따르는 동안 그의 망설임 속에 짐작되는 그 심리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새벽 찬 공기에 맞잡은 손의 온기가 태준에게 스며들었다. 막내는 둘이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혼자 힘들어하지 말라고 태준을 다독였다. 태준은 나란히 걷는 새벽 골목길에 어둠이 걷히고 빛이 쏟아지는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씨를 느꼈다. 단지 함께라는 거,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그 한마디를 들었을 뿐이었는데. 태준은 막내의 손을 가만히 점퍼 호주머니 속에 넣어 감쌌다."


선이 언니, 243쪽



선이 남편의 이름과 막내의 남편 이름은 둘 다 '태준'이다. 작가는 왜 이름을 같게 했을까? 아마도 선이와 막내가 아주 친한 자매 사이로 서로를 한 몸처럼 생각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


또한 두 자매가 각각 IMF 위기에 처했을 때 두 부부의 말과 행동은 많이 달라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듯한 장면이다. 부부의 일을 서로가 솔직히 터놓고,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다.



코로나를 거치며 오빠를 잃고 선이는 고향으로 가서 오빠의 자리를 이어 받아 '흰 쌀밥 나무집' 식당을 운영한다. 동생 옥이도 어디선가 보살핌을 받기를 기대하며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무상으로 밥을 제공하는 나눔을 실천한다.



책을 읽는 내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삶과 죽음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감정이 들끓었다. 하지만 결국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행복해지는 선이 언니를 만나며 미소를 짓게 된다. 행복은 진정한 베풂에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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