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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가정들

김애란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고

by 문이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지우. 채운, 소리라는 세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번갈아 반복되는 구조로 전개된다. 작가는 처음부터 이들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는 단편적인 단서들을 따라가며 인물의 삶을 하나씩 짚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혼란스러움과 궁금증을 동시에 맛본다. 덕분에 끝까지 긴장과 호기심을 유지하며 읽을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얽혀 있던 사연이 드러나며 감동도 깊어진다.



줄거리


지우는 고3 남학생이다. 어머니는 혼자서 지우를 키우며 식당 일을 하기도 하고, 간호조무사 시험에도 도전한다. 그러나 뇌암 판정을 받고 지내던 중 바닷가에 놀러 가서 실족사 한다. 지우는 엄마가 자신을 남겨두고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며 원망하고 미워한다.

엄마는 3년 전 선우 아저씨를 만나 함께 살았고, 지우의 친부는 오래전에 소식이 끊겼다. 책 말미에 송곳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가정을 이룬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채운 가족의 사건을 목격한다. 지우는 단편소설에 '내가 본 것'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그날 본 사건을 담는다.

용식이라는 파충류를 키우는데 독립하기 위해 일을 찾아 떠나며 소리에게 맡기지만 결국 죽는다.

선우 아저씨는 파출소에서 지우를 데려오며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을 빌어 지우 어머니와 지우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내비친다.


채운은 일부러 다리를 다쳐 축구선수를 그만두고 학교를 옮기고 이모 집으로 들어와 산다. 지우와 소리가 있는 반에 배정을 받고,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을 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채운의 아버지는 한때 잘 나갔지만 사업이 망하고 술과 주식에 빠져 아내를 의심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칼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렸을 때 채운은 이를 막다가 실수로 아버지를 찌른다. 어머니는 자신이 찌른 것으로 하자고 당부하며 경찰차에 오른다.

이 장면을 지우가 목격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친부 살해가 이루어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으로 소설에 쓴다. 지우는 자신의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 와서 채운 가족이 외식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을 화목하게 생각했으나 정작 채운은 자기 기분대로 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했다.

이 사건으로 어머니는 징역을 사는 중이고 아버지는 무의식 상태로 요양병원에 있다가 숨을 거둔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머니는 나중에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났던 건 사실이고 그 남자에게도 배반 당했으므로 죄값을 치르는 것이니 괜찮다며 너의 삶을 살라고 말해 준다.

채운은 자신이 기르던 뭉치를 가족으로 여기며 세상에 단둘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뭉치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소리는 여자 아이다. 지우가 쓴 '용식 일기'를 통해 지우를 먼저 알게 된다. 지우의 부탁으로 용식이를 대신 맡아 키워주다가 용식이 죽는다. 채운의 개, 뭉치가 다친 채 길을 잃고 헤맬 때 채운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 주며 같이 많이 놀아주라고 말해 준다. 소리는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의 죽음을 예견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채운의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였으나 반대로 말해 준다. 소리의 엄마는 암에 걸려 힘겹게 투병생활을 한다. 소리는 간호에 지쳐 한두 번 엄마가 죽기를 바라기까지 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엄마는 조력사까지도 원했다는 것을 나중에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날 교통사고로 죽는다.

소리의 아버지는 입시 미술 학원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일을 하다 사업에 실패한다.


세 아이는 두 가지 이상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부모의 상황이 불안하고, 어머니나 아버지의 죽음을 겪는다. 아버지를 미워한다거나 엄마가 암에 걸렸거나, 미술 관련 일을 하거나, 애완동물을 기르고 그 동물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등, 겹치는 점이 많다. 이 점은 작가의 의도 같기도 하다. 너와 나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시대 수많은 이들의 보편적인 이야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불우한 가정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그래서 누구의 이야기로 확실하게 구분 지으며 읽으려고 하면 힘이 든다.



인상적인 부분


"본인이 기분 좋을 때는 한없이 다정한 아빠처럼 굴다 금방 변덕 부리며 모두를 긴장시켰던 것도, 정말이지 채운은 그 긴장이 지긋지긋했다. 아마 엄마도 그랬을 터였다. 그 어느 곳보다도 편하지 않던 곳, 현관문 앞에서 늘 크게 다짐하며 들어가야 했던 곳이 채운에게는 '가정'이었다."


가정은 가장 따뜻한 곳이어야 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180쪽)고 말해 준다. 가족이라는 족쇄가 자신의 삶을 갉아먹거나 망가트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닐 것이다.


"그러곤 더 이상 지우의 연락을 피하지 말고 용기 내 사실대로 얘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우가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내더라도 사과를 해야겠다고. 냉동실의 용식을 꺼내 지우에게 잘 돌려줘야겠다고." 192쪽


우리는 두려움이나 낯섦으로 사과, 위로, 격려, 감사의 말을 놓치곤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고, 책임지고, 돌보며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33쪽


작은 성장과 변화들, 그 속에서 겪는 실망과 모욕까지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자. 가혹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새로운 희망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자고 이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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