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책과 강연의 도서 서포터즈 1기로 활동 중이다. 이정훈 대표님의 책이 오랜만에 나왔다. 책을 지원 받아 읽었는데 읽다보니 따뜻한 글이 좋아서 주변에 선물도 했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작가가 위로받은 공간, 시간, 추억, 사람 등이 등장한다. 그의 위로받은 것들은 결코 서툴지 않게 독자의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다 늦은 밤 홀로 밥상 앞에 앉으면 종일 억누르고 있던 것들이 간혹 모습을 드러낸다. 성과에 대한 조바심, 타인과의 비교, 나이에 내몰리는 마음, 정년까지 남은 시간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 말이다."
62쪽
40대를 지나고 50대를 눈앞에 둔 남자의 심경과 지나 온 삶의 고백들을 들으며 남편과 남동생이 떠올랐다. 그들이 겪었을 삶의 무게, 외로움, 책임감이 느껴졌고 그들이 애틋해졌다.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위안을 안겨주고 싶었다.
"굳게 닫힌 딸의 방을 본다. 저 방 안에서 아이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중이다.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자라는 중이라는 걸 안다. 뾰족한 복어처럼 쏘아붙여도 지나고 보면 그것이 애 키우는 부모의 행복일 것이다. 슬프고 때때로 노엽고 눈물 나는 그 시간을 뭉치면 반짝이는 별이 될 것이다. 빛나는 모든 것들은 아픔을 딛고서야 별이 되는 법이니까."
이 부분을 보면 이정훈 작가는 기본적으로 마인드가 긍정적이고 성품이 아름다운 사람인 듯하다. '슬프고 때때로 노엽고 눈물 나는 시간을 뭉쳐 별'이 되게 하는 사람이다.
'뒷공간에서 삶의 충만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32쪽
"사람은 물이어서 담는 대로 형태가 잡힌다. 아름다운 곳에 담으면 아름다워진다. 제주에 담기면, 사람은 그냥 제주가 되는 것이다. 인색했던 말의 빗장이 풀리고 느닷없이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 마음 이해해요, 괜찮아요, 힘내요'라는 말을 퍼붓고 싶다.
(중략)
나는 달과 별을 담은 그릇 아래로 첨벙 뛰어들었다." 71쪽
숨, 쉼, 마음의 고향, 안식처, 그리움 등에 대한 표현이 무척 아름답고 공감이 되었다.
엄마의 양품점 간판 '대흥양행'에서 쏟아지는 사색도 인상 깊다.
나도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읽을 때면 특히 표현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들은 집요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나쁘게 말하면 질척거린다고 해야 할까?
한 가지에 꽂히면 생각이 바닥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해체하고 갖다 붙이거나 뭉개고...
그런 근성이 있어야 작가다. 이 부분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전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썼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쓸 거리가 무르익은 삶을 미리부터 살아 놓고 쓰자 하는 식으로 글과 세계를 바라보는 순서가 뒤바뀐 것 같습니다. 글을 쓰겠다는 막연한 조급함을 앞세우기보다 그전에 이야기가 될 만한 삶을 먼저 살아내자는 것입니다. 일상이 똑같이 돌아간다는 회의적인 착각 속에서 자기 언어를 상실한 채 타인의 말과 행동에 시선이 옭매인 채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글은 나를 벗어날 수 없으니 잘 살아보기 위해 쓴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나는 '나이만 먹었지 어른 수업을 더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는 큰 어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