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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11. 2021

캡슐회사가 이 글을 싫어할까요?

머신이 로켓 카운트다운을 세다

우리 집엔 아홉 살 먹은 캡슐 커피 기계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는 작아도 너무 작아서 성에 안 찼다. (공유님 미안해요. 카누가 지겨웠어요)


귀여움과 환장함의 콜라보 시절, 그러니까 큰애는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서 나랑 말싸움이 시작되고 둘째는 혼자 뒤집어놓고 수습 못해서 앵앵거리는 그런 시절. 하루 세 끼는 못 먹어도 세 캡슐은 뽑았다.


캡슐 머신이 여덟 살 됐을 무렵, 4만 원을 들여 AS를 받았다. 두 달 후, 커피가 다 내려져도 물이 계속 나왔고 물을 딱 맞게 넣어두면 머신은 "물 안 주면 폭파시킬 거야!" 하듯 '주와와아아아아아앙' 거렸다. 밑에 연기만 깔아주면 이륙 카운트다운 세는 로켓인 줄.   


며칠 후 '주와와아아앙'이 '부롸라라아라왁커럭러러어응'하며 온몸 떨기로 진화했다. 당장 폭발해도 매우 당연한 소리였다.


그즈음, 쓰레기에 대한 다큐 한 편을 봤다. 알루미늄 캔 재활용 비율이 낮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캡슐을 잘 모아서 네소 매장에 갖다 주니까 적어도 내 캡슐은 저 방송에서 비켜나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캡슐 내부를 깨끗하게 세척하지 않는 한 소용없는 일이라나.


캡슐 머신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캡슐의 뒷모습을 보니 이건 아닌 거 같았다. 딱히 지구에게 이로운 짓도 안 하는데 나서서 해로운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환경 이슈를 파고파고 들어가다 보면 팜유도 나와서 새우깡도 끊어야 되고, 착취 커피도 나와서 커피도 끊어야 된다. 그렇게 파다 보면 내가 파묻혀질 지경. 안 파묻히면서도 직관적으로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본다. 그게 캡슐커피 끊기였다. 먹은 캡슐을 완벽하게 세척하는 거보다 아예 안 먹는 게 더 지속 가능한 실천이었다.


캡슐도 끊고 포장 쓰레기 계속 나오는 카누도 끊고 원두가루만 쓰는 머신을 샀다. 에스프레소가 안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보리차로 변신하긴 하지만 캡슐과 싸우면서 마음 불편하느니 싱거운 커피가 낫다. 정 안되면 텀블러 들고 5분만 걸어 나가서 사 먹는 걸로.


캡슐이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로 500년을 떠돈다면 결국 그 아픔은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도 결국 동물의 영역에 사람들이 침범하면서 종간변이가 일어난 결과라 하지 않는가. 인간은 지구의 코로나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코로나가 안 되기 위해 오늘도 캡슐을 포기하고 아이스 아메보리차노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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