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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13. 2021

2010년생도 싸이를 한다

새로운 세상

전 국민 씨족사회화 및 서퍼화를 이끌던 싸이월드. 가족도 친구도 아닌데 1촌이면 그의 거친 생각과 눈빛까지 짐작할 수 있던, 손발가락이 반의 반으로 쪼그라드는 마법이 횡행하던 그곳. 현 40대 중 싸이월드 갬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다.


2주 전 저녁, 2009년생, 10년생, 12년생의 술래잡기가 모니터 앞에서 시작됐다. 도스 시절 페르시아 왕자 이후로 게임을 해보지 않은 나는 모니터 앞에서 무슨 술래잡기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노트북이 없어서 놀이를 함께 못하는 2013년생 막내의 눈물을 봐버리고 말았으니...차라리 울고 불고 떼를 쓰면 '노트북이 새우깡 사듯 막사는 물건인 줄 알아!' 했을 텐데.


물약 마신 페르시아 왕자처럼 등에서 불을 뿜으며 마트로 날아갔다. 새우깡 한 봉지 결제하듯 노트북을 결제했다. 도토리 10개 충전과 15개 충전에서 반나절은 고민하던 사람이 80만 개 충전을 15분 만에 끝냈다.


네 명의 초등학생이 밤 10시까지 모니터 술래잡기를 하는 것을 구경하며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오늘의 신속함을 어찌 수습할 것인가. 다음 달 카드값이 부릅니다.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으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이 노트북은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산 가전제품이었다. 3만 원짜리 샌드위치 메이커도 후기 30개를 보는 사람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저 조용한 눈물을 만든 정체는 무엇인가.


내가 싸이월드에서 도토리를 모았다면 아이들은 마인크래프트에서 흑요석을 모은다.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는 2010년생의 싸이월드였다. 기껏해야 방을 꾸미는 싸이월드에서 벗어나 성을 짓고 마을을 만든다. 그러다 지루하면 게임 판 자체를 다시 제작한다.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떠밀리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놀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게임의 정의가 모호해졌다. 내가 아는 게임은 상위 0.1프로의 프로게이머 아닌 이상 현생 파괴 주범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진화를 했나. 아이들의 게임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아이의 세상을 폰 화면에, 15인치 모니터에 가두지 말라며 현실 활동을 강조했다. 현실 놀이터는 저녁 6시만 돼도 바리케이드를 친다. 아이들 넷이 술래잡기를 하면 집합 금지에 위배된단다. 놀이터가 열린 들, 우레탄으로 덮인 아파트 놀이터에서 흑요석을 상상할 아이가 있을까.  


눈은 모니터에, 귀는 스피커폰에 열어놓은 아이들은 밤 10시까지 떠들며 온라인 술래잡기를 했다. 다음 달 카드값의 입을 막기로 했다. 저렇게 잘 노는데 니가 좀 참아, 내가 넉 달 동안 쇼핑 안 하면 좀 참아지겠니... 하며 장바구니 몇 개를 비웠다.


노트북은 내겐 그저 가전제품인데 아이들에겐 가전제품 이상이다. 노트북 안에 있는 그들의 평행우주를 이해해보려 노력 중이다. 나의 싸이월드가 내 아이의 로블+마인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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