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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18. 2021

계란말이가 '고작'일 때 생기는 일

20년 전의 고작, 지금의 고작

첫사랑에 실패한 남사친이 술독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화상전화가 없던 시절인데 입이 귀에 걸린 게 보인다.


"살림을 또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너 계란말이 못하지? 계란말이가 예술이야. 넌 계란말이 못해서 시집을 못 갈 텐데 어쩌냐 흐흐"


어, 그러니까 니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건 응원해. 그런데 니 연애 자랑이 왜 나의 결혼 걱정으로 끝날까. 더군다나 우리 이제 스물 하나밖에 안 됐는데?


내가 대놓고 핀잔주면 질투하냐? 이러며 더 뺀돌거릴 거 같아서 적당히 끊고 길석님에게 말했다. 길석님 왈,


"속없는 새끼 별소릴 다하네. 계란말이 못해도 걱정 마. 우리 딸은 계란말이 해주는 도우미랑 살면 돼!"


내 편인 듯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속이 시원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다시 반박할 뭣도 없는. 이날은 그렇게 접힌 채 기억 어딘가에 봉인됐다.  


20년이 지났다. 걔는 계란말이 하고도 헤어지고 내가 모르는 연애를 하고 고시를 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러다 내 애가 계란말이를 해달라고 하면 꼭 그 순간이 생각난다. 그 시절에 해결 못하고 접어버린 애매함은 이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계란말이는 그냥 하면 되는 거라고. 어려우면 지단만 부쳐도 되고, 지단조차 안되면 계란 프라이로 먹어도 된다고. 그리고 그게 결혼의 조건은 당연히 될 수 없으며 자랑의 조건 또한 되지 않는다고. 스물한 살에게 살림 잘한다는 감탄은 나라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을 거 같다고. 아마 이렇게 말했으면 그때의 기억이 접힐 필요 없이 반듯하게 남았을 텐데 스물한 살의 나는 그런 내공이 없었다.


그 시절 나는 걔 말대로 계란말이를 못했다. 그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걔가 그런 말을 한 이후로 불편해져 버렸다. 고작 계란말이는 내가 갱신해야 할 어떤 것으로 확 다가왔다. 갱신하겠다고 발버둥치진 않아서 그 와중에 다행이지만 밀린 숙제 같은 마음은 여전했다.


학교 못 가는 아이들에게 살림을 조금씩 가르치고 있다. 얘네들에게 계란말이가 '고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작' 계란말이라서 누구에게 자랑할 거리도, 누구를 판단할 거리도 안된다는 것을 그냥 자연스럽게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정말 날 닮아서 요리 똥손이라고 해도 기죽지 않고 "고작 계란말이로 그럴 건 뭐야. 대신 계란 프라이 3개 먹으면 되지"라고 별거 아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계란말이뿐 아니라 살림의 대부분이 '고작'의 영역으로 넘어가 힘 안 들이고 휙 해버리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나의 살림 방향이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살림 방향이길 바란다. 적어도 성인이라면 누가 누구를 위한 살림을 해주는 대신 본인의 살림은 본인이 해버리는, 커리어를 장악하는 만큼 살림력을 장악하는 것도 인간 성숙의 중요척도가 될 수 있기를. 그게 자랑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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