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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25. 2021

엄마와 살면 70프로가 모르는 이것

화장실의 비밀

자취하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너무 억울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이 집주인 진짜 못됐나 봐. 얼마나 후진 걸로 시공을 했길래 화장실 세면대가 일주일 만에 더러워져?"


그러게, 왜 그런다냐...라고 맞장구칠 줄 알았던 엄마가 조용하다. "엄... 마?" 뭔가 불길한 느낌.


"너 일주일 동안 세면대를 한 번도 안 닦았지?"

"어! 매일 씻는데 뭘 닦아. 시공을 얼마나 개떡같이 했으면..."


"푸핫. 그게 시공 문제냐. 니가 안 닦은 거지!"

"맨날 씻는데 뭘 닦어! 우리 집은 맨날 깨끗하잖아!"


"내가 맨날 닦으니까 깨끗하지!! 내가 헛똑똑이를 키웠구먼"

"엄마가 매일 닦아서 깨끗했다... 고...?"


하이힐 굽이 기억하는 많은 밤거리와 지하철 막차 바퀴에 실렸던 각양각색의 사연들은 이미 전생 같다. 오늘의 화장실은 분명 현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생 같은 그 시절의 통화가 한 번씩 재생된다.


엄마 길석님은 20년 동안 워킹맘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더블 워킹맘이었다. 회사와 집, 둘 다 길석님의 일터였다. 아빠의 집은 옷 갈아입고 씻고 자는, 공항 캡슐호텔 같은 존재였다.


시어머니와 딸 둘을 그야말로 모시고 살았던 길석님의 어깨를 기억한다. 20년 동안 모심을 당하는지 조차 몰랐다. 머리 나쁜 걸로는 모자랐니, 꼭 눈치까지 없어야겠니. 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나를 타박한다.


내 살림이 시작됐을 때 내가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루먼 쇼처럼 누가 나를 속이는 거야!라고 퉁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너무 리얼이었다. 삿대질을 해야겠는데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몰라서 또 억울해져 버렸다.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했다. 누구랑 싸우기 위해서도 아니고 남들 다 하는데 왜 그래, 하는 명제에 묻히기도 싫어서다. 여백 없는 질문에서 돌파구를 찾아 헤맸다. 거대한 커튼이 둘러쳐진 듯한 이 느낌이 싫어서 걷어내고 싶었다. 다행히 찾고 찾다 보니 나보다 먼저 이 커튼에 대해 고민했던 여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화장실 청소뿐 아니라 이른바 '살림'이라는 카테고리의 일들을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로 치환해서 쓰고 있었다.


그림자라서 실체가 없고 그림자라서 보수도 없다. 이 그림자를 밖에 나가서 하면 일종의 노동이 되긴 하는데 그림자의 뿌리가 있어서 다른 노동보다 하대 받는다는, 산업혁명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일종의 세뇌였다. 커튼을 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뿌리는 거대하고 나는 그 위의 애벌레 n번 정도, 없는 것은 아닌데 딱히 있다고 말하기 뭣한 존재다. 그런 미약한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싶다가 길석님과의 전생 통화가 떠올랐다. 적어도 내 아이들 20대에는 나 같은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그 순간에도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있다고. 치즈를 까먹었으면 껍질을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고 먹다가 흘렸으면 흘린 사람이 닦아야 한다는 것, 양치하다가 음식 찌꺼기가 세면대에 남았으면 물로 헹궈놔야 한다는 것 등 너무 사소한데 쌓이면 너무 거대해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자꾸 말하는데 자꾸 지키지 않아서 결국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도 그다음 날 지치지 않고 또 말한다. 그럴싸한 결실이 맺어지는 일도 아니고 성적이 오르는 일도 아니지만 네 몸으로 누적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래야 엄마처럼 "시공이 후져서 더러워져" 같은 후진 말을 내뱉지 않을 거라고.라는 말을 해봤자 얘네 듣기엔 뷁괡홅퉳 같은 외계어겠지.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할 말만 계속한다. 어떤 식으로든 누적되겠지.


엄마와 산다고 해서 100프로가 몰랐을 거 같지는 않고, 반 이상은 몰랐을 거 같아서 70프로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결론을 냈다. 이다음 세대는 획기적으로 0에 수렴할 거라고 기대하긴 너무 이를까?


그림자 노동이 그림자를 벗고 그냥 노동이 되기를. 살림이 사람을 살린다면 말로만 살린다고 하지 않기를. 그림자 노동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림자를 진하게 인식하는 세대가 될 거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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