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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16. 2021

시끄럽게 침묵하는 살림들에게

프롤로그

내가 좋아하고 가장 많이 시간을 쏟는 것들은 나만의 고유한 아이템이 되는 시대라고 한다. 나의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것? 살림이다.


그럼 살림을 좋아하나? 아니다. 살림 노동자로 십 년 넘게 살았지만 십 년 내내 살림은 ‘빨리 해치워야 할 무엇’ 이었다. 누구는 살림을 하다보니 인플루언서가 됐다지만 내게 살림은 그저 인플루엔자였다. 끝없는 반복에 나를 가두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십 년이면 무생물이 생물이 되는 날이 온다. 십 년 넘게 나와 함께 한 살림들이 그랬다. 십 년까지는 의뭉스럽게 아무말 없이 있다가 십 년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 한마디씩 툭툭 던진다.


어쩌면 얘네는 우리 집에 온 그날부터 내게 말을 걸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그걸 듣는 귀가 없었을 뿐. 왜냐면 우리 집에 들어온 신입 살림들도 오자마자 떠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들을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신입들도 아는 모양이다.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도 한번 물꼬 튼 사람에게 계속 하게 된다. 앞뒤 설명없이 그냥 편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살림들도 그래서 내게만 시끄러운 거 같다. 이 살림들과 함께 사는 우리 집 다른 세 명에게는 조용한거 보면 말이다. 나의 살림들은 시끄럽게 침묵중이다.


그들의 수다가 온몸을 촘촘히 묶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딱히 보이게 묶은 건 아니어서 풀어버릴 수도 없는, 그럴 때마다 해독 주술을 외우듯 글을 썼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이것들아’ 하는 마음이었다. 주술은 꽤 효과적이어서 살림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풀어주곤 했다.


누구는 말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의인화 놀이를 하냐고. 그건 애들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니냐고.


맞다. 사물이 말을 거는 건 4학년도 유치하다고 코웃음을 칠 이야기다. 4세까지 내려가야 그나마 좀 먹힐라나? 그러니  40살 넘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유치한 의인화가  삶의 보석같은 답을 툭 던진다면 현대판 연금술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연금술사까지 아니어도 좋다. 어떤 심호흡으로도 헝클어진 마음이 자리를 찾지 못할 때 이들의 말없는 수다로 마음의 윤곽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래서 반나절의 방황으로 끝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런 살림들의 수다를 나눠보려 한다. 유치한 사물 의인화 이야기가 될지, 마음의 윤곽을 다듬어 줄 지,  보석같은 답이 될지는 이제 읽는 사람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다. 어느 영역에 있든지 최소한의 다정함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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