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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7. 2021

스뎅 프라이팬 비밀

계란프라이 가루 만들기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라고 하면 내가 쓰고 있는데 내꺼 아닌 듯한. 그래서 스뎅 프라이팬이라고 한다.


코팅 팬 쓰는 사람에게 스뎅 팬 얘기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아, 계란 프라이 하는데
10분 걸리잖아.
안 써!!


맞는 말이다. 운 좋으면 배달 식사가 도착할 수도 있는 10분에 고작 계란 프라이 한 개라니. 우주적으로 비효율 하다. 아주 오랫동안 코팅 팬만 썼다.


'우리 코팅 재질은 어쩌구와 저쩌구 성분으로 안전합니다'를 굳게 믿는다. 흠집이 조금이라도 나면 가차 없이 버리고 새로 산다. 그 흠집에서 이러쿵 저러쿵이 나와서 해롭다고 하니까.


아이가 태어났다. 어쩌구저쩌구 이러쿵저러쿵이 영 신경 쓰인다. 저 코팅에 뭔가가 있긴 있다는 거잖아? 스뎅을 다시 살펴본다. 영구적이란다. 벗겨지고 말고 하는 게 없다. 도저언?


스뎅 팬을 처음부터 잘 써보겠다며 비장하면 백발백중 망한다. 망하는 게 정상이야! 의 마음이 필요하다. 계란 프라이가 형태를 진작에 잃고 가루 프라이가 되는 꼴을 보고 눌어붙은 걸 팔 아프게 닦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얼한 손목을 달래며 '코팅에 그냥 계속 속을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뎅 팬 예열이 중요하다고 해서 팬을 올려놓고 '지금쯤이면 예열이 됐을까? 더 할까? 말까?' 식의 고민을 하면 망함발 특급열차다. 무심히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딴 일을 하다가 후끈 열기가 느껴지면 불을 잠깐 끄고 기름 둘러 재료를 올린다. 제대로 달궈졌을 때 나는 치이이익 하는 소리, '너무 뜨거워서 팬에 붙지 못하겠어'라고 말하는 재료의 언어다. 그럼 스뎅 요리 성공이다. 얼레벌레 스뎅 팬에 익숙해지면서 '그냥력'을 생각한다.


하기 전에 이러쿵 저러쿵 머리로 생각하는 많은 일들, 하고 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들어오는 태클들.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저쩌구에 일일이 화답하다 보면 화병 먼저 다. 


그래서 그냥력이 필요하다


머릿속에서,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그냥 하는 것, 하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질 에너지조차 아껴서 그냥 하는 것 말이다. 불법이 아닌 이상 그른 일이라도 일단 한다면 결과는 안 좋을지 몰라도 '한다'라는 실행력이 확보된다. 


확보되도 망한다. 세상이 그리 쉽지 않은거 다 알지 않는가. 상관없다. 망함을 기본값으로 두면 진짜 망해도 산뜻하다. 망하고 실행력 한 스푼 얻은걸로. 그 한 스푼이 언젠가 나를 도울 거라 믿는다.




살림이 내게 말을 걸면 그냥 무시해버리지 않고 잘 듣는다. 살림의 시간이 십 년 넘게 쌓이니 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가 자꾸 쌓인다. 다른걸 그냥력으로 넘기고 그렇게 절약한 에너지로 살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력은 집중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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