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기 위해서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면
나는 아마 시험도 통과 못할 것이다.
최근 며칠 사소한 일로부터 못마땅하고 언짢은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 폭발했다.
안경이 너무 무겁고 테가 자꾸 휘어서 기분 전환도 할 겸 겸사겸사 안경을 바꾸러 안경점에 갔다. 하이는 안경테를 고르기 위해 이것저것 써보는 나를 보더니 자기도 안경이 쓰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남편과 하이는 안경이 얼마나 불편하고, 안경테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신경쓰이는지 모른다. 둘 다 안경 쓴 내게 조심성 없이 구는 경우가 많아서 짜증을 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안경이라니.
친구 누구는 눈 좋은데 책 읽고 게임할 때 보호 안경을 쓴다고 나도 사고 싶다며 하이는 어린이용 테를 이것저것 쓰고 와서 내게 계속 얼굴을 들이밀었다.
뭘 해야 하면 그걸 해줄 때까지 사람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소위 들들 볶는 행동을 하는 하이 때문에 질려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딱히 반응이 없자 하이는 토라져서 나 지금 완전 기분 나빠. 하는 걸 최선을 다해 표정으로 나타냈고 나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이가 입을 꾹 다물고 뚱한 표정만 되면 나는 금방이라도 왁. 터져 나올 것 같은 고함을 삼켜내느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안경점을 나올 때 하이는 신이 나서 나왔다. 원하던 걸 얻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공부할 때, 게임할 때만 쓰고 잘 정리해 놓는다는 조건으로 안경을 사줬다.
그렇게 얻어낸 안경은 하루정도 하이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이틀 만에 방 어딘가 방치됐다.
이까짓게 뭐라고 둘 다 기분이 나빠야 하나 싶어서 애가 요구하는 뜻을 들어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결과 하이는 부족함을 모르고 고마움을 모르는 아이가 되고 있다.
결핍을 모르게 해주려고 했던 것들이 독이 됐다.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는 무질서하고 혼란한 하이의 방 한가운데 서서 나는 한 숨을 푹푹 내쉰다.
문제를 대충 읽고 푸는 버릇 때문에 다 맞을 수 있는 것들을 종종 틀려서 꼼꼼히 문제를 읽고 풀어와야 게임을 1시간 허락해 준다는 규칙을 줬었다.
실수하는 게 줄어서 이 규칙이 꽤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문제 중에 5문제를 어이없는 실수로 틀려오자 노여움이 치밀었다.
공부를 하는 것에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서 차근히 설명을 해주고 같은 문제를 조금씩 바꿔 다시 풀게 했다. 틀렸다. 다시 설명을 해주고 이번엔 이 전에 풀었던 문제를 똑같이 써서 두 개를 더 풀게 했다. 그런데 또 틀렸다.
며칠 전에 그렇게 서로 기분 상해가며 산 안경이 쌓아놓은 책과 스케치북 더미 밑에 깔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온갖 물건이 쌓여있는 책상,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올려둔 침대, 입구가 벌어져 바닥에 뒹구는 책가방.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같은 문제를 몇 번이나 설명해 주는데 집중하지도 않고 이런 데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고함을 쳤다.
그냥 말없이 듣기만 하는 아이는 내 눈에 그냥 얼른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처럼만 보였다.
옛날에 엄마가 자기 분풀이할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 같아
자기혐오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더불어 아이를 대면하기가 너무 괴로워졌다.
정수기 옆에 쌓아놓은 마시고 난 물 컵들과 빵을 꺼내먹으며 빵 봉지 입구를 아무려 정리하지 않고 그냥 벌려놓은 것에 제발 정리 좀 하라고 버럭 성을 내고는 아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출근길 차 안에서 왈칵 터지는 눈물에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한다.
진짜 가야 해. 이젠 진짜 가야겠어.
마음 먹지만 퇴근하고 해야 할 일과, 주말로 미뤄둔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럴 때마다 내 인생 하나 제대로 감당 못 하는데 어쩌자고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애를 낳았을까 반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