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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빵 Dec 22. 2024

8. 신혼 이혼, 이렇게 진짜 돌싱이 되었다.

전남편과의 마지막 만남


법원에 이혼 신청서를 넣어놓고 6주가 흘렀다.


드라마에서는 4주후에 뵙겠습니다, 한다던데. 4주든 5주든 그건 내맘대로 하는게 아니란다.

요즘은 어째 드라마보다 내 인생이 더 드라마같다.


6주라는 시간이 지겹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이혼 확정 기일이 기다려지지도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당일이 다가왔다.


전날까지도 전남편은 말을 바꿨다. 정말 미치는줄 알았다. 돈돈돈돈. 자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부모님도 힘들어졌으니 나보고 배려를 좀 해달란다. 나는 복장이 터질 판이다. 내가 쫓아냈냐고, 제발로 걸어나간 놈에게 사회적 망신을 줘도 모자랄 판에 이쯤에서 곱게 이혼해주면 배려는 내가 한것 아닌가.


감사하는 태도는 무슨 마치 나때문에 본인이 가난해졌다는 원망조의 말투와 적반하장식의 태도에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혼자 외근갔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 보는 동네에서 차를 대놓고 마음껏 통곡을 했다. 올 한해 받은 스트레스는 도가 지나쳤다. 정말 가슴이 답답해 이러다 죽을것 같았다.


참고참던 내가 그의 헛소리에 휴가와 비행기를 취소하고 법원에 가지 않겠다, 이혼 안한다고 선포하자 그제서야 그는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예정대로 이혼 확정 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연가를 냈다. 이렇게 즐겁지 않은 휴가가 또 있을까.


서울이 춥다길래 제일 두꺼운 옷을 입었다. 비행기에 타서 제주공항을 눈에 담았다. 다녀올게, 말할 사람도 없는데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원래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던게 버릇이라 그런가 혼자, 홀로 사는건 아직 어색하다.



오랜만에 신혼집을 도착하니, 모든게 그대로였다.


가을 끝자락에 노란 나뭇잎들이 더 예뻤다. 그와 내가 손잡고 수도 없이 걸었던 7년의 세월이 끝나가는 이순간에 배경음악처럼 거리에는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구세군 종소리가 들렸다. 아주 이혼한다고 감성이 충만해진다. 눈이 좀 뜨겁긴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혼자 늦은 점심먹었다. 국수집에서 제일 좋은 메뉴를 주문했다. 하지만 잘 안들어가서 먹을 수가 없었다.


협의 이혼은 법원에서 3시에 여러 부부들이 모여 시작한다.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화장품을 좀 샀다. 화사한 파운데이션을 얹으니 얼굴이 좀 나아 보였다. 난 아직 예쁘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걸어가기엔 힘이 들어 간만에 택시를 탔다. 평소엔 비싸서 생각도 안하는데, 이혼하는 마당에 이정도는 해도 될것 같았다. 창밖에 사람들이 많았다. 왜인지 여러분 저 이혼하러 가요, 사실은 가고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하고 말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부질없이.


법원에 도착하니 이혼하러 온듯한 남녀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차림새도, 연령대도, 분위기도 제각각이었다. 모두 절절한 사연이 있겠지. 제일 처음으로 온듯 보이는 남녀는 붙어서 수다를 떨었다. 이혼하러온게 맞나? 그들 물리적 격이 이혼과는 어색해 보였으나, 어쨌든 그들은 아직 부부임을 알려주는듯 했다.


나는 혼자 앉아서 가만히 남편을 기다렸다. 나는 지금 화가 난걸까? 불안한걸까, 슬픈걸까. 7년 세월을 마치러 법원에 오다니, 내가. 는 아직도 이 현실이 놀랍다.


일찍 온다 해놓고 기약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분의 말소리가 들렸다. 결혼 생활동안 해준것도 없으면서 이혼을 하자고해? 연세가 많아서 발음도 또렷하지않고 음성도 떨렸으나 그녀의 분노는 여실히 느껴졌다. 그녀의 세월은 나보다 길고 무거웠겠지, 인생 경험치가 아직 여기까지인 나는 그녀의 고통을 감히 헤아리지 한다.


내 남편은 좀 늦었다. 덕분에 우리의 순서는 10번째였다.

6주만에 보는 그는 그 사이에 더 말랐다. 못난 놈, 지가 했던 말한마디 제대로 못지키는 주제에 얼굴은 왜 저모양이야.


몇년 전, 지독하게 바빠 야근이 잦은 그의 건강이 염려되어 아침죽을 사다 날랐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가 쪽잠자는새 방해될까봐 그의 자취방 문앞에 샌드위치를 걸어놓고 출근했던 새벽도. 디션이 안좋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장어탕 사 먹이기 바빴던 어느 날의 녁식사도.


우리의 순서가 되었다.

재판장이라고도 뭐하게 조그마한 회의실에 들어갔다. 판사와 사무원이 한명씩 배석해 이혼을 진행하고 있었다.


생년월일을 한사람씩 확인하고, 이혼 의사가 확실한지 묻는다. 그는 제깍 대답했다. 순간 나는 망설였지만, 나도 네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한 1분만에, 이혼 확정서가 나왔다.


나는 나오는 길에 조금 얼떨떨했으나, 그는 마지막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구청에 제출할 이혼 신고서를 게 작다.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내게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와라 여기에 도장찍어라 하는 태도는 쌀쌀맞았다. 신경질내듯 서류를 건네줘서, 또 마음이 다친다.


내가 할 일은 다 끝났고 우리 이제 아무사이도 아니게 되다.

나는 잠시 어색함을 느꼈고, 이제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갈게, 하고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 하고 그도 잠시 나를 보았다.


아주 짧았다. 나는 돌아서서 지하철 타는법을 검색해 곧장 공항으로 출발했다. 오는 길에 나의 마음을 정리했다. 이혼 신청하러 처음 법원에 왔다 돌아가는 날, 차마 지우지못했던 사진과 문자들을, 오늘 완전히 지웠다. 할 수 없을것 같았는데, 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



제주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에 왔는데 벌써 밤이다.

전남편이 된 그는 나에게 카톡으로 구청에 신고를 끝냈다고 알려주었다. 남들은 고민하다 신고 안하는 경우도 많다던데. 그의 선택과 실천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했다.


내 결혼생활이 파탄난지 거의 다섯달이나 되었네.

그날이 떠오른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혼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냐고 묻던 나.

우리 둘이 같이 골랐던, 현관 중문 앞에서 정말 가는거냐고 묻는 나를, 무심히 내려다보더 너의 얼굴.

마음이 그렇게 무너지면서도, 한번도 네가 하고싶다는거 못하게 해본 적이 없어서, 가겠다는 너를 차마 막지 못하고 복도에 나가 네가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걸 지켜봤던 순간들.

네가 없는 집에서 모든 전등의 불을 다 켜놓고 지샜던 밤.

너와 손잡고 걷던 거리를 버려진 마음을 안고 서성였던 시간.

...이젠 나도 너같은건 버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볼거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했고 지난 시간들 후회하지는 않아 다만 이제 다시는 너 보고싶지 않아 우리 마주치지말고 살자.


그가 내앞에 더이상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혼을 인정해본다. 앞으로도 그와 나 사이엔 돈 얘기와 그에 수반되는 서류들을 교환하는 일이 몇가지 더 있다. 아마 연락이 끊기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가 알지 못하는새, 그의 인생은 계속되겠지.

그여자와 결혼을 할지 어쩔지, 난 이제 모르겠다.


오랜 기간 널 사랑했던 열정과 힘을 이제는 나를 돌보는데 쓸 것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이 말을 실천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건줄 몰랐다. 아직은 충격에 벅차서 불현듯 솟구치는 우울감과 예상못한 크기의 분노를 다스리기 어렵지만, 나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리라. 이혼 절차는 끝났어도 죽을만큼 힘들었을때 기댔던 이 공간을 못떼고 또 징징댈지라도, 그런 나도 토닥여주리라. 내 먹을것 입을것을 아껴 너의 필요한 것들을 샀던 내 카드도 이제 나를 위해 사용할거다. 날씨가 좋은날, 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걸을 거다. 네가 나에게 준 위자료로,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살거다. 너의 행복을 빌어줄 생각조차 잊고서, 나는 건강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살거다. 수없이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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