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국제 개발협력을 하려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교예절 이야기되어야
만약에 국제 개발협력을 하려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교예절도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다 지난 이야기을 왜 해야하는지 가끔은 나조차도 힘이 든다.벌써 30년은 묵은 이야기로 그당시에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아무이야기도 안하고 끙끙거렸다. 한국에 집사정도 만만치 않아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을 그때 햇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을 햇길래 짍책만 따랐을것이다.그리고 나이든 후배님들이 좀 제대로 보고을 했더라면 KOICA에서도 오지로 갔다온 UNV에게 그렇게 하지는 못햇을 것이며 나도 외국에 어느 국제기구에 수장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후배님이 어느 날 내가 사는 집에 찾아와서 이야기을 햇다. 아니 집에서 화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난 거의 화장을 부탄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도 안했다.잠깐 행사있을시에 만 한다.어머니가 화장을 일찍하면 얼굴에 생기가 죽는다고 해서 화장품을 안사주셧다. 동생이 대학들어가서 화장을 1학년부터 햇다. 아마 대학근로학생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받으면 화장품을 사지 않앗나싶다. 어미니가 드봉화장품 가방세트을 사주고 립글로즈 하나 사주셧다. 그러다보니 대학4학년때 KAIST1학년이 기숙사 주소을 주었다.버스안에서 옆에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얼마나 웃엇는지 모른다. 우리가 4학년인데 하면서 말이다.
부탄UNV로 나갔을때 처음에 난리가 났다. 내가 영어를 너무 못한다고 ...그리고 부탄인들이 너도 나도 UNV오피스을 찾아와 자기들도 UNV로 나가겟다고 하는 소리을 들엇다.UNV프로그램오피서와 처음에 UNDP부탄대표을 만나서도 이야기 햇따. 영어를 천천히 말해 주세요. 웃으셧다.그 때 대표님은 일본분으로 여자엿고 소문에 의하면 일본에 왕족이라고했다. UNDP부대표는 체구가 큰 캐나다분이셧다.
국내 월드 프랜즈 교육계획안을 받아 들고 아무 말을 할 수없엇던 것은 나에게 KOVA에서 어떠한 직위도 주지 않아서다. 내가 교육안에 대해 왈가 왈부할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다. 좋은 옷도 집도 아무것도 없다.
지난날 코바 모임 장소을 정하면서 내 귓가에 지나가면서 좋은 옷을 입어야지 ...돈이 있어야지 ..별별소리가 다 있었다. 모임장소가 참 중요하다. 봉사단으로 나가서 봉사단 평가회의을 호텔에서 진행한 나라도 있을 것이고 그 나라의 유명식당에서도 진행한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시골이나 듀티스테이션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평범한 식당에도 갔을것이다.나나 아사드게이트센타의 천막식당에서도 식사을 하고 아버지을 도와 일하던 아이가 학교을 가기을 바랬다. 길거리에서 찜통같은 솥에 코코넛과 흙설탕같은 것을 쪄서 파는 삐타도 사먹고 했다.
봉사단수준에 맞춰 장소을 구할까 하다가 많은 생각을 했다.전 김사모코바 이사장은 호텔에서 모임을 했다. 예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러 해야 할 것이다. 정부추진행사에서는 무료로 식사을 주는 행사들이 꽤 있다.준외교여권으로 봉사단을 나갔다 왔고 코바가 민간차원에서 할일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종교을 떠나서 생각한다면....제3세게는 가만히 보니 엔지오가 회사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같다. 이권싸움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기도 한다.
매번 충청KOICA대표을 맡으라고 김우연씨가 한국을 떠나면서 약간의 서류을 나에게 넘기고 서둘러 자리을 떴다. 그런데 김사모전코바이사장은 나에게 직무대리라고 문자을 보내 왔다. 나중에 서류을 보니 충청코바 통장도 들어있었다.모임장소와 이메일도 연락도 했지만 ....
1996년 11월에 부탄에 UNV로 파견이 되어서 일본인들도 나을 인정하지 않고 조센징이라고 이야기을 햇다. 한데 나중에 대화을 나누어 보니 일본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는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른다고 햇다. 나중에는 정말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초반에 음식도 설고 설사을 하고 나중에는 입병까지 났다. 일본 코디네이터는 자기네 음식을 해서 나보고 먹으라고 하고 어느 일본인 JOCV여자는 귀국할 날이 얼마 안남았다고 햇는데 로컬식당에서 움삭을 먹고 설사을 하자 곧바로 자기네 집앞까지 데리고 가서 정로환을 주었다.
부탄봉사단 초반에 일본jica에서 주최한 건축세미나 자료을 받았던가 ?아무튼 뒷풀이에 참석햇다. 일본 제일교포건축가을 부탄에서 만나서 부탄남자와 같이 사는 JOCV여자 건축가집에 초대받아가서 일본 JOCV들과 저녁식사을 하고 그자리에서 나는 도꾸가와 이에 야스을 좋아한다고 해
ㅆ떠니 그자리에서 남자JOCV들이 자기네 일본인들은 노부나가을 좋아한다고 햇다.나는 멋쩍어서 내고향가고파라는 가곡을 불렀다. 그리고 일본남자애들은 내가 사는 집에도 안왓고 노크도 안햇다.
나중에 UNDP의 쥬니어 오피서인 핼랜이 그나라 화가들과 다른 봉사단 남자애들과 회화그룹을 만들었다. 그림그리는 모임이었다. 한데 같이 하던 남자애는 유럽에 기숙학교을 나온 애인데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어서 핼랜이 많이 아쉬워햇다.
한데 그애가 나중에 내가 사는 집에 주말에 예고도 없이 찾아왓다. 네덜란드에서 인가 형이 왔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때도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맨발로 아무준비도 없이 그들을 맞이해 거실에서 차한잔을 하고 보냈다. 집에 비스켓도 없이 커피한잔만 마시고 갔다.
나중에 뉴질랜드 봉사단인 부부커플은 산악자전거을 타고 도시 밖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며 내가 사는 집을 노크 하고 에고 없이 찾았다. 그때도 화장기도 없었고 슬리퍼만 신고서 그들을 맞았다.
다른 프랑스애는 집으로 초대해 자기네 나라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보는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나중에 얼마나 뒤에 프랑스에서 여자친구가 왓다. 그래서 그여자친국에게서 프랑스어을 배웠다.다른 현지인들이 그 프랑스애가 그 여자친구와 집에서 같이 있었다고 이야기도 해주었다.
UNDP에 주니어 오피서엿던 덴마크애는 생각도 안햇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자꾸 자리을 만들었다.원래 영국VSO금발머리애가 있었다.내가 갔을때 그둘이 같이 있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그런데 나만 보면 길거리에서 내이름을 부르고 그냥 웃엇다.원래 팀퓨에 이탈리안하우스라고 unr관계자가 사는 건물이 있었는데 쿠바UNV가 떠나면서 나에게 인수인계을 할려고 햇는데 너무 집이 컸다.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졌다.나중에 그집에 친구가 초대해서 갔는데 나보고 잠깐 이층에 유니세프에 직원집을 다녀오라고 햇다. 가니 일본유니세프애와 덴마크애가 같이 소파에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후에 그 아이는 어는 식당 바에서도 부탄 나이트에서도 혼자서 서서 나을 지켜보았고 부탄에 RNRC유시팡에 메던은 그애와 자리을 마련한다고 여러번 이야기을 햇다. 나중에 호주분의 현지에서 결혼을 하고 피로연 자리에 내옆에 그애의 자리을 마련햇다.
영국VSO에서는 3년차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남자애가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을 햇다.내가 부탄에 파견된 초창기에 영국VSO애가 나을 레모바에 초대해 커피한잔을 하며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이야기 햇다. 방글라데시에 카마르바르에 농업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일본에서는 일본 JOCV코디네이터 언니와 친하게 지내다 보니 일본JOCV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고 지나고 보니 그들이 나을 질투을 해서 일이 좀 벌어진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여자봉사단은 많은 데 상대적으로 백인젊은 남자애들은 적은데 그때 그 남자애들이 몇마디 안했어도 질투에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초창기에 어느 영국봉사자는 담배을 피며 자기들이 진전한 자원봉사자라고 이야기을 햇다.조금 지나서 그나라 플럼이라는 식당에 갓다가 영국봉사자을 만났는데 좀 있으면 이나라을 떠난다는 것이다. 자기 송별회가 집에서 열린다고 플럼에서 만두을 잔뜩 사가면서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가 청소만 해주고 그냥 왔다. 한방은 파티장, 한방은댄스홀을 만들었는데 유시팡에서 오느라 화장도 해야 하고 옷도 그래서 그냥 왓다. 그리고 그 곳은 다운타운가라서 내가 사는 집까지는 멀었다. 한 밤중에 혼자서 갈 생각도 그렇고...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UNDP친구가 이테리하우스에서 하는 파티에 갔더니 어느 분이 춤을 추자고 하고 레모바에 어떤 분도 나이트에 가서 춤을 추자고 하고 ...그곳에는 유학을 다녀온 부탄젊은이들이 좀 많았다.
자꾸 자리가 마련되어도 자리에 가기가 좀 그랬다. 축구대회에서 다사다난한 사건이 있고 그 축구대회가 있던 날 나을 세미나에 초대을 해서 축구대회에서 레프윙을 맡기로한 네 포지션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햇다.
나는 축구대회을 준비하면서 ,,,...부탄에는 한국인들이 나 하나엿다.지금 생각해 보니 유럽남성들도 아시아 여성과 같이 일하고 싶으면 어느정도 예의을 지키고 다이렉트로 차한잔 하거나 여러명이 같이 어울렸따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서 자연스럽게 커피한잔 하는것이 무엇이 어려운가? 여자들의 질투심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니 체키가 성교육을 시키려고 햇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 보니 고마운 일면도 있었다.
메던이 핸리와 무슨 관계였는지 모르겟지만 매던이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다. 나에게 자기는 아버지가 이란인박사라 이란 친척이 있고 라오스에서 자기 친척이 있고 자기 어머니는 인도인이기 럽챠라고 햇는데 ..자기배경을 이야기 해주었다. 다른 사람말에 의하면 그녀는 호주에 유학을 가서 호주 간호사남자와 동거을 햇다고 하고 그 남자 친구가 부탄에도 방문한다는 이야기을 들었다.나는 그녀가 미국UNV 여자때문에 이라고 생각햇다. 다른 동료에게 이야기을 들으니 그 린다울프의 남편이 메던의 전 남친으로 그나라 전경련 부회장 아들이라고 햇다. 내가 어느날 산책을 하는데 아 침에 느닷없이 싱게가 나타나 멈칫멈칙 하며 어렵게 인사만 하고 갓다. 내가 부탄을
떠날무렵에는 린다가 이야기는 안하고 참 예민해있었다. 애기을 낳은지 얼마 안되었고 말이다.린다가 싱게보다 연상이었고 싱게는 세이브칠드런 물리치료사로 부탄에 갔다가 그나라에서 UNV로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부탄과수교 10주년 행사로 벼전문가가 KOICA 에서 왔을 때 메던이 이 교수와도 인사을 햇었고 나에게 매던이 볼댄스파티을 같이 가라고 인폼을 해주엇서 같이 가기도 햇다. 한데 이교수는 말이 좀 귝제 협력할 분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국제협력나가는 전문가에 대해서 소양교육이 필요하다.난 여자들 편이다. 아무리 저개발국가도 여자에 대한 에스코트와 존중이 필요하다 교수들이 잠깐 컨설팅을하는데 6000달러라고 이야기 하며....
봉사단 파견 목적중에 하나는 제3세계에 초기에는 공장에 일하러 파견된분들이 공장 출신들이 많고 배우지 않아 사람들을 마구 대해서 국격을 실추해서 배운사람들을 저개발 국가에 파견하는 것이라고 햇다.돈은 자랑햇지만 나에게 떠나면서 수고햇다는 말도 없었고 선물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올때 부터 무엇을 준비하느냐 하며 국제전화까지 하고 인도대사관에서 그나라의 경제개발계획서까지총3권을 부탁해서 내가 힘이 닫는한 구해주고 보냇더니 부탄사람들은 나보고 스파이하고 하고 그다음에 몇개월뒤헤 IMF 가 와서 무척힘들었다. 그때 일본전문가들은 부탄에 왔다가면 인사을 보낸다고 한다. 어떤 분이 혹시 연락이 왓냐고 물어보기도 햇다.
대구에서 는 어느 건축기계때문에 사람이 와서 같이 다녀 주었는데 비가 와서 내가 우산을 씌워주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IMF라 싸하기도 햇겟지만 UNV프로그램오피서가 건넨 부탄현황자료을 KOICA에 전달해주고 민숭맨숭 돌아셧다. 내가 어던 카드을 들고 있을 줄 알랐는지...
KOICA에서는 처음에 추천서와 이력서을 보내고 나중에 KOICA을 찾아가니 이제부터는 UN쪽과 컨텍을 하라는 것이었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진것이다.내가 룰대로라면 외교부 unr과에 인사을 하라거나 아니면 서울 un 사무소에 찾아가 귀국보도도 하고 대표와 인사도 해야 했다.
아니면 KOICA 에 서남아시아 과에 인사을 하거나 아니면 보고을 받거나 대표와 인사도 시켜주어야 햇다.
시간이 흘러서 10년이 지나서 이야기 햇'다 .네이버 밴드에 충청커뮤니티에 잠깐 언급햇다. 부탄UNV을 끝나면서 FAO와 IFAD에 캔디데이트 되었다고 그리고 현지인들이 다른 프로젝트도 컨텍을 햇다..그랫더니 곧바로 KOICA에서 대학생 UNV을 뽑는 것이었다.
부탄에서 국제기구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안해서 초미에 관심이엇다. 몽골은 호주UNV 남편을 이야기 하고 어떤 유럽인들은 국제기구에서 잏하는 사람들은 국제결혼을많이 한다. 첨ㅁ에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도 몰랐고 축구대회 일때문에 내가 많이 위축되엇던 것 같다..
부탄에서 돌아왓을때 어느 누구도 나을 반기지도 않았고 격려도 없엇다. 어찌된 일인지 게속 일자리는 잘렸다.내가 코바의 지방조직 활성화을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후배님들이 국제기구나갈려면 네트워크로 서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자체을 떠나서 말이다. 어찌 속속들이 말을 할까?어떤 화교는 좋지만 어떤 화교는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봉사단은 다문화가족이 꽤잇다. 다만 여자 후배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들이 이쁘게 본 것은 내가 어른을 챙기고 주위사람들을 챙기고 아이들도 챙겨서 일것이다. 스위스친구가 그러는데 자기네 나라에서는 노인공대을 안한다고 한다.그리고 우리나라는 남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아들을 못나서 겪은 설움때문에 아들은 남자는 하늘이라고 햇다. 우리집에서는 제사음식을 해도 남자는 절을 하지만 우리는 한족구석에 항상 있었다.부탄은 재산을 남자가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상속을 받는다고 한다. 네팔리들은 남자가 상속을 받지만 말이다. 부탄에서는 여자가 재산을 상속받고 남자을 집을 나간다고 한다.여자들의위세가 당당하다.
내가 부탄에 돌아와서 말을 할 동기가 별로없었고 일반 봉사단 갔다온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할 수가 없엇다. 대구친구도 나도 침묵을 햇다.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
그때 부탄에는 부산에 궁도코치와 제천에 태권도 코치가 있었고 나중에 순천사람으로 조선대 나온 궁도코치 출신한 분이 같이 사업을 하자고 대전복합터미널에 오셔서 2층 커피숍에서 커피한잔을 햇다. 그후에 대전시청에 대전고속버스터미널을 개발해야한다고 제안하기도 햇다.
봉사단 교육시에 남성들이나 여성들에게 이야기 해야 한다. 외국여자들이나 남자들을 어덯게 대할 것인지?에티켓교육과 연애과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 한다. 부탄의 경우는 영국인분이 이야기 하는데 봉사단 오리엔테이션에서부탄현지인들은 무료교육이자만 혼혈아나 외국인들은 교육비가 몇배라고 했다. 여러가지 문제점도 짚고 넘어간다.
인도에 최대사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일본 남자애들은 별로 그당시에는 나에게 이야기을 잘 안햇어요유럽애들은 주말에 예고도 없이 노크을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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