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모습이다. 자꾸만 볼륨을 높인다. 아무도 없다는 걸 숨기고 싶은 것처럼 볼륨을 높인다. 할 일이 많다. 이불 정리도 해야 하고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저 상자들도 정리해야 한다.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 책들도 정리해야 한다. 반찬 만드려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씻고 다듬어놓은 부추도 자신을 어떻게 해달라고 벌거숭이로 저러고 있다.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텅 비었다. 이 공간이 이리도 컸던가. 유튜브를 켠다. 즐겨 듣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자도 말하고 출연자도 말한다. 서로 웃기도 한다.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말하고 있구나 느낄 뿐이다. 왜 이러지.
엄마와 둘이서 살 때이다. 엄마는 늘 텔레비전을 켜놓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텔레비전을 켜고 밤에 잠들 때까지 텔레비전을 켜놓는다. 잠들었다 싶어 엄마 손에 쥐고 있는 리모컨을 살짝이 빼내 텔레비전을 끄는 순간 들리는 한 마디.
"내 안 잔다. 켜놔라."
텔레비전을 끄는 순간을 귀신 같이 아시고 깨어난다. 도대체 뭘까. 뭐가 엄마를 텔레비전을 계속 켜놓게 만드는 걸까. 평생을 별과 함께 출근하고 별과 함께 퇴근하는 삶을 산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그렇게 텔레비전과 함께 산다. 평생 제대로 못 본 텔레비전을 다 보기라고 하려는 듯이 그렇게.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것만 같다. 엄마는 외로우셨던 게 아닐까.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살아있다 느끼신 게 아닐까.
지금의 내가 그러고 있다. 사회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 단지 소리를 높일 뿐이다. 사람 소리가 들리기를, 사람 소리가 이 공간을 채우기를 바랄 뿐이다.
왜일까. 할 일을 하면 되는데, 밀린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그저 멍하니 앉았다. 볼륨을 높인다. 사람 소리로 이 공간을 채운다. 사람 소리로.
허전함의 크기만큼 볼륨을 높인다. 외로움의 크기만큼 볼륨을 높인다. 갑자기 닥치는 이 감정을 어쩌지 못한다.
그 옛날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허전한 만큼, 외로운 만큼, 볼륨을 높이고 텔레비전을 켜놓았을까. 그것을 꺼버리면 자신은 홀로 남겨질까 두려웠던 걸까.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라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갑자기 밀어닥치는 외로움이라는 폭풍 속에 갇혀버린다. 허전함이 풍선처럼 커져서는 빵 하고 터지기 직전이다. 볼륨을 높인다. 세상에 들어간다. 나 혼자 버려두지 말라고. 나 혼자 여기 두지 말라고. 마음속 외침을 듣는다. 내가 듣는다. 안아준다. 가만히 안아준다. 내 마음을 안아준다. 무엇이 두려운 건가. 버려질까 두려운가. 이대로 뒤처질까 두려운가.
그 옛날 엄마를 안아준다. 가만히 안아준다. 엄마는 혼자가 아님을. 엄마를 사랑하는 딸이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꼭 안아준다. 이제야. 지금에서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지금에서야. 후회하며 눈물 흘린다. 그때의 엄마가 내가 되어 내가 그때의 엄마가 되어 쓸쓸함에 가슴이 젖는다. 이렇게도 바보 같이.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