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사랑들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하면 성숙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사랑하면 진짜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하는 사랑들은 하면 할수록 초췌해지고, 성숙해지기는커녕 점점 어린애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갈구하고 더 원한다. 무조건적인 애정을 원하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선택했던 이성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날 점점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그들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상황까지도.
여태까지 그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내 운명이라며 팔자를 탓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외로움과 고독함에 사로잡혀 신중하지 못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날 턱이 있는가.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단단해져야 한다.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고요함과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절대 유별난 일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 고독함을 얼마나 현명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내면은 달라진다.
외로움이라는 이 쓸쓸하고 미지근한 마음을 여유롭게 다루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감정을 영감 삼아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 외로움이 버거워 한없이 저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였다.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이 감정이 함께 데려온 허무함, 슬픔, 무기력, 낮은 자존감 등이 내 발목을 더 깊숙이 끌어당겨 점점 더 숨이 막혀왔다.
끝을 내야 하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단지 혼자가 되는 것이 무섭다는 이유로 가면을 쓴 채, 관계를 억지로 이어갔고..
이 쓰린 감정들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바닥을 치고 있는 내 자존감 덕분에 난 여러 번의 연애들이 줄곧 하나같이 다 똑같았다.
감정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잘 느끼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크게 느낄 줄 아는 만큼, 행복함, 즐거움도 쉽게 느끼곤 한다.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나에게 주는 작은 애정과 관심에도 비교적 더 크게 받아낼 수 있는 좋은 재주가 있다.
내 영혼을 괴롭히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이 아이들은, 나에게 마치 다이어트처럼 평생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생스러워야 하는 그런 존재이다.
매번 마주할 때마다 익숙해지지 않는, 새로운 존재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잔잔한 조명처럼.. 껐다 켰다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는 조명이 되고 싶다.
조금 더 성장하면.. 불빛의 양을 조절하는 버튼도 생기겠지..? 작은 기대를 하며.
지금 이런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는 건 아직 나의 자존감이 회복되지 못했고, 아직도 내 자신을 사랑하는 힘이 부족한 듯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더 의지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있으며 결국 끝은 또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이 단어를 마주하며 견디려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글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마치 혼자만의 흰 방 안에서 내 마음을 소리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꽤 위로가 된다.
한 단계 성장하고 있는 나를 기특해하며..
내 갉아진 영혼들을 다시 조금씩 붙여나가는 이 노력들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