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걸 혀"

성장은 늘 경계 밖에서 일어난다

by 코와

몇 년 전, 충청도 사투리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소년시대’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유쾌한 코미디 속에 뼈아픈 진실이 숨어있던 그 작품에서, 제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된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매일 맞고 다니는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시키는 건 다 해봅니다. 상납도 하고, 학생회장 자리도 양보하고, 일진을 위해 소파까지 날라주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때, 그의 여사친이 무심하게 툭 한마디를 던집니다.

“병신새끼야, 할 수 없는 걸 혀.”


익숙함이라는 감옥에 갇힌 우리

우리는 살면서 늘 ‘할 수 있는 것’ 안에서만 움직이려 합니다. 잘할 수 있는 일, 해본 적 있는 일, 성공이 보장된 길. 그렇게 익숙하고 안전한 영역에 머물 때 우리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새로운 제안이나 낯선 기회가 찾아오면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 “이건 내가 하면 안 되는 일 아닐까?”라는 방어 기제가 먼저 작동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했습니다. ‘이 기회, 지금 안 잡으면 언제 또 오겠어?’

나이가 먹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뇌가 반복적인을 하면 그 시간을 까먹어서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운전할 때 통화를 하면서 가면 왠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 거 같고. 단순 작업을 루틴 한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갑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경험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뇌가 루틴의 반복이라. 시간의 흐름을 놓칩니다.


기획자에서 영업자로, 낯선 세계가 준 선물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획만 파고들던 제가 영업 현장으로 배치되었을 때, 처음엔 매일이 당황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낯선 세계를 통과하며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장의 언어가 무엇인지 몸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의 자리에 서서 돌이켜보면, 제가 기획만 잘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님을 압니다. 영업이라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할 수 없는 영역’을 뚫고 지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업, '나의 것을 건네주는' 삶의 기술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영업'으로 귀결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도 영업이고, 프로젝트 현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어 고객이 나를 다시 찾게 만드는 것도 영업입니다. 시부모님이나 처가댁에 점수를 따는 것조차 영업의 기술이 필요하죠.

영업(Sales)의 어원을 찾아보면 게르만어 계통의 어근 ‘sal-’ 또는 ‘sellan’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건네주다, 넘겨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내가 가진 가치를 남에게 건네주고 신뢰를 돌려받는 행위, 그것이 바로 영업의 본질입니다. 결국 타인과 부대끼며 사는 우리 삶의 모든 행위가 영업인 셈입니다.


경계에 머무는 사람만이 한 칸을 넘는다

‘할 수 없는 걸 하라’는 말은 결코 멋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못 하더라도 일단 붙들고 있어 보라는 말이고, 처음엔 엉망일지라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은 때로 잔인하게 들립니다. 실패의 두려움 앞에 선 이들에게는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성장의 순간은 늘 그 경계에서 일어납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오래 머물며 버티는 사람만이 결국 담장 너머의 한 칸을 넘어서게 됩니다. 드라마 속 여사친의 그 투박한 대사는 지금도 제 일과 삶, 그리고 매 순간의 선택 앞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경구로 남아 있습니다.

소년시대 대사 그래도 옮깁니다. “병신새끼야 할 수 없는 걸 혀.”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