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을 응원해

by 나옹

어제가 수능이었다.

입시 전문 강사였기에 20년 동안 수능은 나와 학생들의 일 년이라는 노고의 시간을 장식하는 피날레였는데

작년부터는 뉴스로 수능날을 접했다. 어제가 수능이라는 것도 2주 전에야 알았다.

누군가는 안식년을 맞아 자신의 일상과 거리를 둔다는데,

나의 투병으로 인한 공백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쉬어감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하며

강제로 인생의 쉬어감을 접한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어본다.


영화 컨텍트가 떠 오른다.

시간의 개념이 다른 외계인과의 조우.

그들의 언어를 이해한 후 주인공 또한 외계인과 같은 방식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아직은 생기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가 미래에 청소년기에 죽게 됨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말미에 아이를 만들자는 남편의 말에 밝게 웃으며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껴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당시의 나는 불행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주인공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나라면 어땠을까?'가 아니라 나라면 저런 선택은 하지 않는다고.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모두 나쁜 선택이 된다라는 좁은 식견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함께 추억을 쌓고 아리지만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갈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종국에는 아이는 떠나고 물리적으로는 없겠지만 영혼 깊숙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의 여정을 풍요롭게 해 주겠지.

내가 보내온 모든 시간들의 결과가 나를 부정하는 것 같은 처절한 좌절을 안겨줄지라도

나는 그 여정 속에서 고단 한 것만은 아니었을 거다.

나를 나이게 만들어주는 하나하나 일 테니까.


나는 주인공처럼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미래를 모른다.

재발이 높은 암이라 늘 두려움에 떨지만

결과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 시간 속에서 나의 여정을 풍요롭게 하려고 노력중이다.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이 시간들이 찡그리고만 있었던 아픔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아했던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좋아한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내 것이 아닌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며 세상의 소리에 귀 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고 말리다고 외쳤었다면,

이제는 불확실한 미래에 좋지만은 않은 결과가 기다린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를 사랑할 것이다.


글이 어제 수능을 친 학생들에게 닫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너의 지나온 시간을 응원할게!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만들어갈 수많은 시간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