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보트 세계일주]2023년 1월 30일 보트 검수와 시험항해 이탈리아
이탈리아 마리나 스베바
이탈리아 시각 오전 10시 40분. 보트 서베이(검수)의 날이다. 판매자, 구매자, 검사원, 브로커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배를 검사한다. 안내 메일에 오전 10시 30분에 검사 시작, 오후 4시에 마친다고 되어 있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한 4~5시간 하는 거네’ 라고 지레짐작하고 미리 오전 9시 30분에 18개월 된 내따 리나와 함께 이탈리아 몰리세주 산살보에 있는 아드리아해에 접한 마리나 스베바에 도착했다. ‘나 여기 있소’ 하고 딜러에게 문자를 넣었다. 주차장 차 안에서 드론으로 마리나를 촬영하며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깔끔하고 아담한 멋진 마리나다. 기온은 약 7도. 쌀쌀한 아침이다.
딜러에게 판매자가 오전 9시 30분에 도착한다고 문자가 왔다. 오호, 제법인걸? 하고 약속보다 빠르게 오는 것에 놀라고 있었는데, 오전 10시가 다 되어 딜러에게 7번 부두로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영상을 찍으며 걸어가 보니 판매자와 딜러 모두 배에서 기다리고 있다. 딜러 파브리치오, 판매자 까를로, 까를로의 아버지 파파로코와 인사하고 배를 둘러보았다. 컸다.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베네토 오세아니스 393은 약 12미터, 지금 이 배는 바바리아 50. 약 15미터다. 실내도 훨씬 넓고 쾌적하다. 티크 처리된 갑판과 콕핏(배 후미 운전석)도 넓고 안락했다. 배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고개를 흔든다. 이러면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고무보트용 선외기 엔진 시동 걸기에 성공한 파브리치오가 열심히 전화한다. 마리나 크레인이 고장이라 관계자들이 열심히 고치고 있단다. 역시 이탈리아야. 오늘 제대로 검사가 될까? 검사원 루카는 10시 30분에 맞추어 왔고, 때마침 크레인도 고쳐졌단다. 까를로와 그의 부친은 이 동네 사람. 이들을 제외한 모두가 로마에서 왔다. 나도 어제 로마에서 도착했다. 이전에 강릉에서 KTX, 공항철도,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은 물론이다.
“루카, 오늘 검사 잘 부탁해요.”, “아니, 아니 오늘은 이 아기를 위해 검사할 겁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루카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전문 장비 캐리어를 놓고 이것저것 장비를 꺼낸다. 보트 외부를 꼼꼼하게 살핀다. 엔진을 켜자 부드러운 운전음이 들리고 냉각 배출수도 일정하다. 엔진 사용시간 1,200H. 잠시 후 보트에 묶인 계류줄을 풀고 크레인으로 이동한다. 한국과 달리 바우(선수)에 계류줄을 묶는 방식은 혼자 입출항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넓지 않은 마리나 내부를 바우 트러스터(선수 스크류)를 이용해 휙휙 방향을 전환한다.
배 안에서 즐겁게 뛰노는 마리스텔라(18개월)를 싣고 배는 순식간에 크레인에 닿았다. 크레인에 다다르자, 마리나 관계자들이 우르르 나와 크레인에 진입한 보트를 잡아준다. 일행이 보트에서 내리고 보트는 천천히 들어 올려진다. 배 바닥에는 진흙 찌꺼기 같은 것이 엷게 묻어 있다. 조그만 따개비 몇 개 외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다. 강릉은 몇 달만 둬도 홍합과 미역 양식장이 되곤 하는데 의외다. 마리나 관계자들이 올려진 보트의 바닥을 대형 스크래퍼와 고압 펌프로 열심히 청소한다. 나는 열심히 촬영 중이다.
루카는 배 검사를 시작한다. 전문 청진기 같은 것으로 배 바닥을 꼼꼼히 검사하더니, 갑자기 배 바닥 여기저기를 긁어낸다.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초음파 진단기 같은 것으로 배 바닥을 검사하고 나중에 다시 칠하고 바다에 진수한단다. 초음파 검사가 끝나자 조그만 망치를 들고 여기저기 두드린다. 귀로도 듣지만 망치 끝에는 전선으로 전문 계기가 붙어 있다. 세밀하고 정성스러운 검사다. 시간은 이미 오후 12시 30분. 점심은 언제 먹지?
아이가 걱정 되어 슬그머니 점심에 대해 파브리치오에게 물어보니, 점심은 알 수 없다며 슬그머니 웃기만 한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틀린 모양이다. 누가 이탈리아 사람들이 대강 일한다고 했나? 이들도 일할 땐 점심을 굶어가며 한다.
고무보트(텐더보트)를 배에 올리고 마리나 스베바를 빠져나온다. 탁 트인 아드리아해. 직진하면 크로아티아다. 의외로 마리나 입구가 좁다. 수심은 3.5미터. 조수간만을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마리나 입구의 바다색이 황토색이다. 인근에 강이 있냐고 하니 그렇단다. 나중에 찾아보니 트리뇨(Trigno) 강이 가깝다. 며칠 전 눈이 와서 눈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든 거다. 강릉에도 남대천이 있어 비슷한 상황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뚜렷한 경계를 만들고 강물 밖의 바다는 에메랄드색으로 빛난다. 우리 가족은 드디어 아드리아 해를 항해 중이다. 물론 시험 항해 중이긴 하지만!
엔진은 부드럽고 규칙적인 소리를 낸다. 루카는 최대 RPM으로 밀어보랜다. 2,700RPM. 더는 올라가지 않는다. 힐끗 보니 8.99.1노트다. 다시 2,000RPM으로 낮추니 7.58.0노트 속도가 나온다. 루카는 이 배는 출력이 최고 RPM의 80%로 제한되어 있고, 2,000RPM이 순항 속도란다. 빠르다. 빠른 배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배어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엔진 출력만으로 항해 할 수 없다. 기름을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씩만 엔진을 켜서 배터리 충전을 하며 항해할 거다. 그리고 바람 좋은 날엔, 엔진 끄고 바람으로만 항해한다. 파브리치오가 기어를 중립에 놓고 루카와 메인 세일을 편다.
“메인 세일은 새것이네.” 루카가 슬며시 말해준다. 푸른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바람을 잘 받은 메인 세일이 아름답다. 크로스홀드 방향으로 집세일을 편다. 전동 윈치가 슬슬 힘들이지 않고 세일을 편다. 집세일과 메인세일 모두 풀 세일로 펴고 범주를 시작한다. 집세일은 교체한 것이지만 상태가 좋다. 루카가 또 말해준다. 너울은 50~70센티, 방향은 북서 크로아티아 쪽이다. 차가운 이탈리아의 바닷바람은 7노트로 약한데, 웬걸 4노트의 선속이 나온다. 나는 다시 감탄한다. 빠른 배다. 파브리치오가 내게 묻는다. 이 배가 마음에 드냐? 나는 바닷바람을 뚫고 파브리치오에게 답한다. “No! No! I love this boat!” 한국과 이탈리아의 세일러가 마주보고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세일을 접을 때도 전동 윈치 덕에 별로 힘들이지 않는다. 마리나로 돌아올 때 접안을 자세히 관찰했다. 앞으로 나도 이렇게 접안해야 하고, 그것도 혼자 해야 한다. 접안은 바우 트러스터를 쓰면서도 쉽지가 않다. 마리나 직원 둘이 나와 뒷 계류줄을 잡아준다. 바람이 세지 않아도 어렵게 접안한다. 혼자서 이 방식은 불가능하겠네, 라고 단언하다가 속으로 다시 독백한다.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처음 요트를 사서 일본에서 건너올 때부터 내겐 불가능이 일상이었지만, 공부하고 연구하고 시간이 지나며 차츰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접안 불가도 언젠가 접안 가능이 되고 나만의 비법이 될 거다. 적어도 매 순간의 내 인생은 그랬다.
접안하니 시간은 오후 3시 30분. 배를 접안하고 루카는 다시 망치를 들고 갑판을 두드리고 다닌다. 앵커 작동도 확인하고 선실로 들어간다. 배 내부를 샅샅이 살피며 문제와 해결책을 같이 확인해 나간다. 몇 가지 자잘한 수리 부분이 나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지만 시간이 문제다. 선내 발전기는 2월 13~14일에 엔지니어가 수리할 거다. 나는 그 이후에 출항 가능하다. 이탈리아 산살보에 20일 가까이 살게 됐다. 2월 6일 이후엔 지금 숙소에서 나와 배에서 살 거다. 선주 까를로는 당장 입주해도 된다고 하지만 이미 지불한 숙소를 미리 나올 필요는 없다. 차트 테이블 벽 쪽에 작은 스위치가 있다. 저게 뭐냐고 하니 ‘무시동 히터’란다. 배의 디젤을 써서 난방이 된다. 가족이 거주하기에 꼭 필요한 장비다. 예상 밖의 득템이다.
오후 4시 40분, 배에서 잠시 회의를 한다. 이탈리아어의 홍수. 그리고 배에 필요한 장비를 보관한 마리나 사무실로 간다. 마리나 사무실에서 선주와 최종 회의를 한다. 위성전화가 없다. 그들은 체크리스트의 오류라고 한발 물러선다. 나는 먼 바다에서 가장 필요한 장비인데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무조건 해결하라고 강하게 밀어본다. 까를로는 잠시 생각한 뒤 2~3일 안에 새 위성전화기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다만 위성 SIM 카드는 네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하지.
까를로는 공구박스와 몇 가지 식료품, 음료수도 준다고 한다. 나는 요리용 가스통 4개를 더 주문해 달라고 하고, 20리터 디젤 통 7개도 더 주문한다. 나는 먼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 요리용 가스통 총 5개와 경유 10통 총 200리터를 더 준비하고 항해할 거다. 이미 실은 고무보트의 바닥을 못 찾겠다며 조금 더 큰 고무보트로 바꾸어 준다고 한다. 모두가 고무보트를 들고 배까지 간다. 신기하다. 이렇게 이탈리아 바닷가로 와서 이탈리아인들과 고무보트를 나르고 있다니. 세상살이는 참 짐작도 못하겠다.
현재 이탈리아 시간 오전 3시 40분. 시차 따위를 아예 무시하는 마리스텔라(18개월) 덕에 몸은 젖은 휴지처럼 늘어지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겠지?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