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행동하다.
제주도 4.3 사건..
3.1절 기념식 도중 인파가 많은곳에서
어린아이가 말에 치인 것이 시작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를 친 경찰은
사람들이 불러도 반응 없이 경찰서로 도망쳤다.
현장사고의 수습이 필요했고
사고를 낸 경찰을 찾아간 것뿐이었다.
...
총을 쐈다..
사과가 아니라 발포를 했다.
도민들을 폭도로 규정했고 국가는 합법적으로 살인을 했다.
6명이 등에 총을 맞고 죽임을 당했다.
정면이 아니고 등이란 말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쏜 것이다.
그중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애기엄마와
초등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폭도로써의 죽음이었기에 국가의 사과는 없었다.
그것이 경찰 측의 무언의 대답이었다.
나라가 독립되고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경찰조직은 일본순사들과 행동의 차이가 없었다..
도민들은 억울하고 원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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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건 틀린 거라 외치는 민중들 이모였다.
95%에 달하는 민, 관, 경이 합동파업하며
도민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경찰 66명도 이 파업에 동참했다.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은 이 파업의 선동세력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부수립이 되지 않아 공산당이 같이 존재했고 정부는 미군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미군정은 파업에 참여한 모두를 남로당의 선동을 근거로
좌파이거나 좌파단체 동조자로 매도했고
인구의 70% 가까이 파업에 참여한 제주도는 좌파분자의 거점이 되었다.
미군정은 파업에 동참한 경찰병력 66명을 경찰조직에서 제명하고
치안을 보완할 병력을 육지에 요청하여 배치했다.
그 병력이 경찰, 군 병력과 그 악명 높은 "서북청년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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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사과받고자 모였던 이들을
잡아들었고 47년 3월 1일 발포사건부터 48년 4월 3일까지
약 2500명의 제주도민이 좌파라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다.
인구가 많지 않았던 제주에는 감옥도 많지 않았다.
3평 감옥에 35명까지 수용을 시켰다.
그 안에서 자행된 인권유린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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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4월 3일..
이에 분노한 도민과 남로당은 350명의 무장병력을 이끌고
제주도내 12개 경찰서를 동시 습격하여
경찰과 경찰가족을 살상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는
완전히 "적화"되었다고 미 군정은 판단하였고...
5월 10일 남한단독선거에서
제주도 투표소 3국 소중 2개국 소에서
선거가 진행되지 않자
그 판단에 '확신'을 갖게 된다.
선거불참사유는 김구선생이 그토록 외친
"남한단독정부수립의 반대"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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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서 5km를 벗어나는 지역에 있는 주민은
좌파로 판단하여 사살하겠다는 표고문을 내걸었고..
참으로 말도 안 되지만..
정말로 그렇게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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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km 밖에 한라산 인근 거주하던 제주도민은
낮에는 경찰, 군에 죽임을 당하고 밤에는 남로당에 죽임을 당했다.
결과적으로 제주도민 3만 명 가까이 학살하였고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불법매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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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부, 군, 경찰은 수십 년.. 긴 시간 동안..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이는 없었다.
혼란스러운 시기 국가권력을 기반한 국민학살이었다.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이다.
2003년 10월 노무현대통령이 사건 55년 만에 최초로 국가원수로서 사과하고
2005년 국가차원에서 4.3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재판이 다시 열리고 불법군사재판에서 유죄였던 사람들이
무죄로 바뀌게 되었고 피해자파악 및 진상조사, 배상금등이 결정, 지급되었다.
한 재판은 유죄 피의자가 300여 명이었으나
무죄확정판결에 살아있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그 두 명만 진상조사와 배상금등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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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문재인대통령이 4.3 추념식에 다시 참석 사과하였고
뒤이어 긴 시간을 돌고 돌아 국방부와 경찰청도 제주양민학살에 대해 사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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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모 든 것이 역사로서 기록됨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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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추념식 이틀 전인 4월 1일..
윤석열대통령은 대구 삼성구장 프로야구 시구행사와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을 방문했다.
4.3 사건 추념식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대통령실이 밝힌 사유는
'해외순방일정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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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추념식 3일 전인 3월 30일..
이재명대통령은 '제주의 마음을 듣다'라는 주재로
취임 후 마지막 12번째로 제주도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다.
시작 전 대통령 모두발언 시
"프랑스대통령과의 방한과 정상회담으로 4월 3일 추념식에 참석을 못해
좀 일찍 내려왔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라는 양해를 직접 구했다.
그리고 방명록에
'국가폭력 재발 방지를 위해 민, 형사상 시효제도를 폐기하겠다'라는
의지를 남겼다.
사람의 몸은 하나이기에 모든 행사를 참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배려'라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어떤 것이 배려인지 쉽게 판단이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