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고 싶은 것들의 모양
* 열한 시 십오 분, 천안행에서
지금 시각은 열한 시 육 분. 혼자 떠나는 여행의 시작 글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의 마무리를 미리 단정 지어 놓으면 어떨까. 완벽했던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녔을 테지만 그걸 곧바로 완벽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보다 더 좋았던 날이 있었고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완벽해질 테니. 그때가 되면 비로소 완벽했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보다 더 완벽한 하루와 더 완벽한 내가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작업을 하며 Make a day를 자주 꺼내 쓰다 보니 정말 하루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시 단위로 쪼개며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 일이 드물어질 만큼,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이 금세 과거가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아낌없고 소중하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천안행 기차 안에서
주광색 빛으로 가득한 기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활짝 밝아진다. 그럴 때면 내 고개는 자연히 창 밖으로 향한다. 드넓은 들판과 다듬지 않은 작은 숲들, 아기자기한 집들과 비닐하우스들이 스쳐지나간다. 어쩐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일까. 그 작은 집 앞마당에 계신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본다. 추워서일까, 아니면 벌써 어르신들이 밭일을 마치고 점심을 드실 시간이어서일까. 열려있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 보고 싶었다. 어딘가에 있을 모든 따뜻한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해도 아는 척하고 싶을 만큼. 누군가에겐 그저 스쳐지나가는 풍경일지 몰라도 따뜻함으로 먹고 사는 나에게는 흔한 일이다.
* 아산에서 천안으로
여행을 오면 솜뭉치 강아지처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곤 한다. 서울보다 버스 배차 시간이 조금 더 긴 이곳에서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품어보았다. 온몸 사이사이에 들어오는 찬 것들을 견디며 애써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일어나신 할머니께서 하차 벨을 누르려 하셨다. 버스는 격하게 흔들렸고, 할머니가 팔을 뻗기에는 벨이 멀었다. 위험하실까 봐 재빨리 벨을 눌러드렸다. 내리기 직전까지도 누가 눌렀는지 둘러보시는 듯한 할머니와 몇 번 눈이 마주쳤지만, 괜찮으신 채로 목적지에 다다르기만을 바랐다. 긴 걸음에 끝에 얻은 건 문 닫은 두 곳의 책방이었다. 분명 영업 중이라고 나와있지만 이상하게도 더 좋은 발걸음으로 나를 이끌어준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책방주의가 그랬다. 책방지기님과 어색한 공기를 나누던 그곳에서 몇 마디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진하게 우러져나온 차 한 잔을 내어주셨다. 여행 도중 길거리 봉사자들은 내가 천안으로 여행 온 것을 의아해했지만, 책방지기님은 인자한 미소로 먼저 여행 오셨냐고 물어주셨다. 그의 따뜻한 차와 말씨가 내 몸과 마음을 함께 녹여주었다.
천안 여행의 목적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소개해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고, 함께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좋은 제목을 발견하면 맑아지는 기분이다. 언젠가 내 책에 더 깊고 좋은 제목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다. 지하철이 올 때까지 친구는 나와 함께 기다려 주었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히터 바람이 우리를 감쌌다. 문득 히터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남겼다. 정말 햇살처럼 다정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제목은 어디에서 태어나는 걸까. 좋은 사람만이 좋은 제목을 품어낼 수 있는 걸까.
친구는 내내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기숙사에서 한 학기 동안 살아낸 경험으로 혼자 학교를 다니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안에 있으면 마치 다른 서버에 있는 것과 같은데, 내가 오니 믿기지 않는다며 동네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해줬다. 그 친구의 비유와 칭찬, 다 헤아리진 못하더라도 내어주는 마음을 보며 우리는 새삼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에게 건네는 모든 말과 행동은, 어쩌면 내가 받고 싶은 것들의 모양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