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러닝맨> 리뷰-디스토피아와 영웅 서사의 간극

분노한 아버지와 사라진 혁명

by 슈퍼T

예고편이 남긴 기대감

영화 <더 러닝맨>의 예고편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내 마음은 본능적으로 들떴다. 어둠 속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도시는 가까운 미래의 미국. 스모그가 하늘을 덮고, 네온사인이 밤을 찌르듯 빛나며, 끝없이 뻗은 도로 위를 사람들이 질주한다. 그들을 추격하는 정체불명의 헌터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쫓고 쫓기는 장면, 그리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인물들.

무엇보다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화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감시의 눈’이었다.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 거대한 네트워크, 방송국, 그리고 무자비한 시청자들의 시선은 단숨에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했다. 빅 브라더가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 그 안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은 얼마나 허약하게 흔들리는가. 예고편은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메시지를 암시하고 있었다.

시각적 요소는 더욱 강렬했다. 도심 추격 장면에서는 차량과 사람, 드론과 네온 불빛이 뒤엉켜, 도심 전체가 거대한 추격 게임의 장이 되는 듯했다. 폭발과 격투, 미스터리한 음향 효과는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영화가 액션 이상의 것을 담고 있음을 시사했다. 단순한 속도감과 폭발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와 비판 의식을 담은 디스토피아적 서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바로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이라는 사실이었다. 원작은 이미 그 문학적 가치와 긴장감을 입증한 바 있었다. 날카로운 사회 풍자, 인간 심리의 복합성, 체제와 개인의 충돌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작품. 나는 스크린 속에서, 원작이 담고 있는 이 메시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화적 시도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치 눈앞에 펼쳐진 예고편은 나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곳에는 단순한 액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추격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공포, 그리고 사회적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네온 불빛 아래 숨겨진 디스토피아적 진실을 볼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그 속삭임을 듣고, 스크린 너머로 펼쳐질 모험과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하며, 자리에서 일어설 듯한 설렘을 느꼈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나는 그 간극이 어디서 드러날지, 영화가 원작의 깊이를 얼마나 살려낼지 궁금증을 안고 스크린 속으로 들어갔다.


스토리

가까운 미래 미국. 극심한 빈부격차와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폭력적 리얼리티쇼에 중독돼 있었다. 그중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은 “더 러닝맨”. 출연자는 30일 동안 전문 킬러들의 추격을 피하며 살아남아야 하고, 전국의 시청자들은 이를 오락과 공포로 소비한다.

벤 리처드는 병든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게임에 참가한다. 게임이 시작되자 그는 도시 곳곳을 도망 다니며 헌터들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반정부 underground 인물들의 도움을 받는다. 함께 도망치며 벤은 방송국이 참가자를 악당처럼 만들고, 영상과 음성을 조작해 시청률을 높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망치는 동안 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그는 시스템의 잔혹함과 게임의 조작을 직접 체감한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방송국의 조작을 증명할 수 있는 편집되지 않은 원본 기록을 손에 넣는다. 이 기록은 네트워크의 독재적 운영을 폭로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였다.

마지막 대결에서 벤은 모든 헌터를 물리치고, 쇼의 총책임자인 프로듀서 킬리언과 직접 마주한다. 킬리언은 벤에게 “쇼의 새 스타가 되라”며 명예와 안전을 보장하는 듯한 제안을 하지만, 이는 벤을 체제의 홍보 얼굴로 이용하려는 함정이었다. 벤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생방송에 난입해 진실을 공개한다. 조작 영상, 왜곡된 편집, 헌터들과의 계약 구조 등 모든 부패가 폭로되면서 국민들은 처음으로 쇼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 벤은 비행기를 탈취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네트워크 측에서 제어권을 장악하고 미사일로 비행기를 격추했다는 발표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믿지만, 실제로 벤은 자동 탈출 기능을 이용해 살아남는다. 나중에 회수된 블랙박스(비행기 기록기) 안의 녹음과 영상이 공개되면서 네트워크의 조작이 드러나고, 벤은 가족과 재회한다.

다음 시즌의 쇼 무대에서 관중들은 벤이 살아있음을 믿고 저항을 시작한다. 호스트 보비 T는 관중의 흐름을 보고 도망치고, 킬리언은 무대를 지키려 하지만 혼란 속에서 당황한다. 관중이 보안 장벽을 뚫고 몰려들자, 벤 리차즈가 군중 속에서 나타나 총으로 킬리언을 처형한다. 이 장면은 방송 중에 그대로 중계된다.

결국 벤은 억압적인 미디어 체제에 균열을 내는 저항의 상징으로 남는다. 그의 생존과 행동은 단순한 개인적 승리를 넘어, 조작과 폭력에 맞서는 가능성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주인공 벤 리처드, 캐릭터와 동기의 간극

영화가 시작되자,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스티븐 킹의 원작을 떠올리며, 나는 영화 속 주인공 벤 리처드가 단순한 액션 히어로나 아버지 캐릭터를 넘어, 체제와 맞서는 전략가적 면모를 보여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스크린 속 벤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영화 속 벤은 다혈질적이고 충돌적이며, 계획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추격과 충돌 속에서 순간적 감정에 따라 움직일 뿐, 상황을 분석하거나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략적 사고,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인간과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통찰력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스크린 속 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히 가난과 억압에 대한 개인적 분노,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본능에만 몰입한 인물로만 묘사된다.

반면, 원작 소설 속 벤은 훨씬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달리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 체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폭로하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냉철하고 계획적인 그의 행동은 단순한 탈출이나 생존을 넘어,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혁명적 행위로 이어진다. 그는 상황을 분석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선택을 내리며, 그 과정 속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관객과 독자에게 전달한다. 전략과 분석, 그리고 체제 비판이 결합된 그의 선택은 원작이 지닌 디스토피아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핵심 장치였다.

영화 속 벤이 가진 한계는 단순히 캐릭터의 성격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의 감정적 몰입은 영화의 긴장감을 일정 부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원작의 사회적 메시지와 정치적 풍자를 흐리게 만든다. 분노와 공포, 아버지로서의 본능은 관객에게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전략적 사고와 혁명적 통찰력이 빠진 탓에, 벤은 한 명의 개인적 감정으로만 움직이는 존재로 축소된다. 결국 그는 사회적 모순과 체제 문제에 맞서는 혁명가가 아닌, 단지 생존을 위해 분노하는 아버지로만 남게 된다.

이 간극은 단순히 캐릭터 설정의 문제를 넘어, 영화 전체가 놓친 메시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벤의 행동과 선택은 체제 비판과 디스토피아적 풍자를 드러내는 도구였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행동이 대부분 개인적 감정과 액션 서사에만 종속된다. 즉, 영화는 벤을 인간적 공감과 아버지 서사 중심으로만 구성함으로써, 원작이 의도한 사회적 메시지를 희석해버린 것이다.

결국 이 간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벤에게서 원작이 가진 전략적, 정치적, 사회적 깊이를 발견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벤은 단순히 순간의 감정과 폭력적 대응으로 움직이는 캐릭터일 뿐, 디스토피아적 사회와 맞서는 혁명가적 인물상은 사라져 버린 셈이다. 원작과 영화 속 벤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영화가 원작의 메시지를 얼마나 희석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중과 관중, 그리고 설득력의 문제

영화 <더 러닝맨> 중반부까지 벤 리처드는 단순히 추격 게임의 참가자를 넘어, 사회적 악역으로 묘사된다. 그의 행동과 선택은 거칠고 충동적이며, 체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나 사회적 비판보다는 개인적 감정과 분노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대중과 주변 인물들은 벤을 적대하며, 관객 역시 그를 의심하거나 분노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스크린 속 벤은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불편함과 긴장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갈등적 존재로 기능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그동안 악역으로 간주되던 그는 갑작스럽게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고, 관중들은 벤을 영웅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변화는 극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소 비약적이다. 관객의 정서와 극중 대중의 심리가 거의 한 순간에 뒤바뀌는 장면은 설득력보다는 극적 긴장감에 의존한 장치로 느껴진다.

원작 소설에서의 결말은 훨씬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벤과 킬리언이 함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 결말은, 단순한 영웅서사 대신 체제의 냉혹함과 사회 구조의 견고함을 강조한다. 독자는 벤의 죽음을 통해, 사회와 권력 구조가 쉽게 흔들리지 않음을 체감하며 오래도록 여운을 느낀다. 체제와 개인의 충돌, 혁명적 시도와 그 한계,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겪는 고독과 절망을 온전히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영화에서는 벤이 살아남아 킬리언을 처형하고, 대중 앞에서 권력의 상징을 무너뜨린다. 영화적 관점에서 이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관객 친화적 영웅서사로 기능한다. 대중은 벤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고, 극적 쾌감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작이 품고 있던 디스토피아적 경고와 사회비판은 상당히 희석된다. 벤의 행동은 더 이상 체제에 대한 전략적 저항이나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개인적 정의와 감정적 승리로 환원되어버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간극이 현대 영화 산업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관객 친화성과 상업적 재미를 위해, 영화는 원작의 메시지를 압축하거나 단순화한다. 그 결과, 원작에서 섬세하게 구축된 사회적 긴장과 인간 심리의 복합성은 사라지고, 단순한 영웅서사와 쾌감 중심의 서사로 대체된다. 결국 벤의 승리는 영화적 만족을 제공하지만, 디스토피아적 메시지를 깊이 음미하고 싶었던 관객에게는 상징적 공허함을 남긴다.

즉, 영화 <더 러닝맨>에서 대중과 관중의 극적 변화는 시각적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만, 현실적 설득력과 사회적 메시지 측면에서는 부족하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와 플롯의 문제를 넘어, 원작이 담고 있던 체제와 개인의 충돌,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전달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결론. 메시지의 희석과 기대와 현실의 간극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이 가진 힘은 단순히 추격과 폭력의 긴장감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개인과 체제, 인간 심리와 사회적 구조 사이의 미묘하고 복합적인 긴장감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데 있었다. 벤 리처드라는 주인공의 선택과 행동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사회와 권력, 그리고 인간 내부의 도덕적 갈등을 관통하며, 독자로 하여금 체제와 개인 사이의 균형과 불균형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 <더 러닝맨>에서는 이러한 핵심적 힘이 크게 희석된다. 화면 속 벤은 분노한 감정적 아버지일 뿐, 체제와 맞서 전략을 세우거나 게임 구조의 모순을 분석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의 행동은 사회적 풍자와 결합되지 않고, 개인적 정의와 분노에 국한된다. 관중과 대중의 심리적 변화를 통한 체제 비판적 장치 역시 희미하다. 대신 영화는 상업적 재미와 영웅 서사, 즉 ‘벤이 살아남아 승리하는 액션 영화적 쾌감’에 집중하며, 원작이 품고 있던 디스토피아적 경고와 사회적 메시지는 후퇴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상업 영화가 한정된 러닝타임과 관객층을 고려할 때, 모든 메시지를 깊이 담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액션과 서스펜스를 강조하고, 관객에게 명확한 영웅서사와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은 상업적 성공을 위한 필수적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하다. 관객은 원작이 의도한 사회적·심리적·정치적 긴장감을 충분히 체험할 수 없다. 벤 의 행동이 체제와 맞서는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감정적 대응으로 환원되면서, 원작이 던지는 질문—“개인은 사회와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체제의 억압과 미디어 조작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저항하고 판단하는가?”—는 영화 속에서는 크게 희미해진다.

영화는 분명 시각적 화려함과 속도감 있는 화면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도심 추격, 폭발, 긴박한 액션 시퀀스는 순간적 흥분과 몰입을 제공하며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펙터클 뒤에 숨겨진 메시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벤 리처드는 더 이상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며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는 전략적 인물이 아니다. 단지 생존과 개인적 정의, 아버지로서의 감정적 분노만이 화면을 채운다.

결국 영화 <더 러닝맨>은 관객에게 순수한 오락적 체험만을 제공할 뿐, 원작이 전달하고자 했던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성찰은 구현하지 못한다. 예고편에서 느꼈던 묵직한 기대감과 스크린에서 마주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영화가 원작의 힘을 재현하지 못했음을 선명히 보여준다. 관객은 눈앞의 추격과 폭발에 몰입할 수는 있지만, 원작이 의도한 인간과 체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근본적 긴장을 곱씹고 성찰할 기회를 상실한다.

한마디로, <더 러닝맨>은 상업적 재미와 화려함은 일부 갖췄지만,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보하지 못한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 속에서, 우리는 영화가 놓친 메시지를 상상하며 원작이 보여주었던 디스토피아적 경고와 인간 심리의 복합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속도와 스펙터클 속에 가려진 빈자리에서, 원작의 묵직한 인간적·사회적 통찰을 상상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그 간극의 깊이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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