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맨

#공항생활, #출국대기실, #불면증, #자아고갈

by 비루투스


공항근무는 주기마다 한 번씩 24시간 교대 근무가 돌아온다. 물론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휴식 시간이 있고, 잠시 눈 붙일 시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남들 자는 시간에 깨어있고, 남들 깨는 시간에 자야 하는 스케줄이 쉽지만은 않고, 호르몬 역전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직원 중에도 업무패턴이 몸에 익지 않아 고통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고,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스케줄에 신체패턴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심사대 앞에 많은 승객들이 서있는 모습은 우리에겐 일상적인 일이지만, 승객들이 계속 밀려오게 되면 우리도 인간인지라 체력이 고갈되고, 그럴 경우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들어올 때가 있다. 공항에 있는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업무스케줄과 강도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은 아주 필수적인 항목이다.


그래도 공항생활에 장점이 있다면 체력만 받쳐준다면 이틀의 비번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조삼모사와 다를 것이 없다. 밤샘근무를 한 것을 감안하면 잘 시간에 퇴근하는 격이고 두 번째 비번날 보충근무가 걸리면 휴일에 반나절을 직장에서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퇴근하게 되면 점심때까지 푹 쉴 수 있고, 다음날 하루를 책 읽거나 글 쓰는 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어서 나름의 장점이 있기는 하다. 어떤 경우에는 백수나 공시생 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주말과 휴일만 되면 사람이 미어터지는 핫플레이스를 나 홀로 고요히 한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교대근무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낭만이다. 단점이 있다면 다른 직업군과 스케줄이 맞아 떨어 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약속 잡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부에서 직원들끼리 커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과를 옮겨서 출국대기실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곳은 송환대상 외국인이 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으로, 이곳은 난민신청대기자가 공항에서 노숙하고 있다는 기사 때문에 핫한 곳이기도 하다. 외국인보호소와는 달리 개방형 시설이라 해당 외국인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고, 공항 밖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필요한 모든 자유가 허용된다. 우리는 대상 외국인이 대기실에서 지내는 동안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고, 난민신청이나 이의신청을 요청받는 경우 접수를 받아주고 있다. 처음 근무 할 때, 보호소와는 달리 외국인들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고, 한꺼번에 입국불허승객들이 쏟아질 때는 정신을 차리기가 벅찰 정도로 바빴다. 그들을 최대한 빨리 본국으로 보내려면 항공사와 컨택이 잘 맞아야 하는데, 합이 잘 맞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편해지고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지만 분명 특이한 장소임은 분명하다.


매스컴에서는 요즘 경제가 불황이라고 하는데 출근할 때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여행객들을 보게 되면 그런 이야기가 잘 실감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행시즌이 성수기냐, 비성수기냐에 따라 심사과와 출국기실의 운명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비행기에 탈 수 있는 좌석 수는 한정되어 있고 일단 성수기에는 티켓값이 비싸고 한국인 승객수가 많으면 그만큼 외국인들이 차지할 수할 수 있는 좌석수가 줄기 때문에 그만큼 입국불허승객수가 줄어든다. 반대로 비수기이고 한국인승객이 적다면 그 시즌에 맞춰 불법체류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시도들이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일이 많아진다. 그럴 때 쏟아지는 난민소송대기자들과 입국불허승객으로 사무실이 터져나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 업무의 강도는 한국인 관광객의 수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점심때는 한 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밥을 빨리 먹고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서 단백질보충제와 샌드위치로 대충 때우고 있다. 한창 바쁠 때는 커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었고,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지 못하면 버티기가 힘이 들었다. 수면시간은 4시간 정도 주어지는데, 2시 45분에 일어나서 다음날 9시까지 깨어있어야 한다. 새벽근무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배가 고프더라도 문을 여는데가 없어 사 먹을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먹을 것을 싸간다고 해도 오랜 시간 깨어있다 보면 금방 배가 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주린 배를 다스리고 있는데, 회사에서 인간적으로 따뜻한 국물이라도 마시게 조그만 컵라면이라도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씩은 기내식을 제공받는 외국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모두가 곤히 자고 있는 새벽, 혹시라도 생길지도 모르는 사고와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CCTV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시곗바늘 소리와 함께 흐르는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씩 첫 발령지였던 김해공항이 생각날 때가 있다.


쉴새없이 일하는 에잇맨 클락

첫 발령지로 김해공항출입국에 배정되었을 때, 동기들로부터 '헬게이트'가 열렸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당시에 김해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성 높은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직원수 대비 승객수가 너무 많아서 몇 시간씩 연달아 승객심사를 하다가 보면 식사시간을 거를 때가 잦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유체이탈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승객을 응대하고 있다가 교대조가 몇 번 흔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던 적도 있었다. 기후가 악화되거나 항공기의 결항으로 심사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다가도 비상전화를 받고 직장에 나가야만 했고, 어떤 때는 사무실부터 휴게실까지 입국규제자로 꽉 찼던 적도 있었다.


요즘엔 공무원 식사시간 가지고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신없이 바쁜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 얼굴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밖에 없다. 그리고 식사시간은 밥만 먹고 휴식만 하는 시간이 아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면서 동료들과 유대감은 키우고 업무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비공식토론의 장이기도 하다. 공무원은 국가행정의 주체이면서도 국민으로서 인권보장의 객체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인권강사는 민원이 불편한 상황을 야기하더라도 공무원은 어떠한 요구를 해서는 안되며, 그런 일이 생기면 조직에다가 말해야 한다고 강의를 했다. 사실상 공무원은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그러면서 인권행정을 해달라는 소리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업무가 누적되고 피로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자아고갈의 상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나는 그런 경우 불면증과 우울증이 나타나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신이 쇠약해지다 보면 몸이 피곤한 것 보다도 신경이 예민해져 항상 복부가 팽만했었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잠을 설치기도 했고 그런 상태에서 뜬눈으로 지새우고 출근하기가 예사였다.

불면증의 주요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는 업무로 인해 생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했고, 하루는 약을 계속 복용하면 치매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3일 동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고, 내 몸에 맞는 스트레스 완화법을 알아내어, 지금은 병원을 가지 않고도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인 불면증 노하우를 말씀드리자면 필자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뇌에 휴식을 주는 '테아닌'이라는 영양제를 복용하면서 크게 효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억지로 줄이려다 보면 오히려 탈이나 자아고갈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에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독서와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긍정적 스트레스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최소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출입국업무는 글쓰기에 아주 좋은 소재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가끔씩 직장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지식 마일리지가 몇 점인지 확인할 때, 점수가 높게 나오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재능기부차원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책 읽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글쓰기를 도와주고 있고 직장에서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직원들과 마라톤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 춘천마라톤에 이어 올해는 JTBC마라톤 10km에 도전하기 위해 저녁마다 뛰고 있다.


이 글은 올해 새로 시작된 인권교육에서 맡게 된 '자아고갈과 스트레스'라는 과목을 준비하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정리한 글이다. 강의를 내용이 어렵다는 민원이 있어서 이번에는 가급적 소프트하게 진행하려고 하는데, 생각대로 잘 진행될지 걱정되지만 직원들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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