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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Feb 20. 2022

나는 나만이 아니다 -<밝은 밤>을 읽고-

나는 나만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아주아주 오래된 딸이고 손녀이고 핏줄이다

그들의 시간 속에 머물던 웃음과 눈물과 두려움과 설렘과 사랑과 고난이다

아이의 재잘거림과 눈치와 체념이고, 타인으로부터 받은 인정이며 자랑이다

초경을 시작할 무렵 소녀의 당황과 불안이고, 풀리지 않는 숙제, 멈출 수 없는 동경과 그리움이다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 사이의 갈등이고, 놓친 손과 잡을 수 없는 손을 두고 뒤늦게 전하는  인사이다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여자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자의 싸움이며 화해이고 회한이다

영원히 갚지 못할 부채이고 또다시 살게 하는 힘이다

크고 작은 선택과 강요와 자유와 의지와 시선과 의도와 기회와 시대의 결과물이며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찰나의 노래와 꽃잎과 파도와 공놀이와 편지와 사진과 체온과 다짐이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고 지우고 싶은 상처이며 서로에게 들이댄 칼날이고 웅크리고 잠든 밤 덮어주는 이불이고 돌아갈 수 없는 봄이고 불어오는 바람이다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이며 별의 먼지이고 초신성의 파편이며 작고 커다란 우주이바다이며 세계이다

나는 나만이 아니다

당신 또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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