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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Mar 12. 2024

괜찮아 중 3이야

2학년 2학기 겨울 방학

대입을 준비하는 가장 결정적인 시기라는 중2 겨울방학이다. 그 중요한 아들의 중2 겨울 방학이 어느새 절반이 지났다.  아들은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새벽 3-4시에 잠들고, 오후 3-4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에 돌입했다. 애미가 깨어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3끼의 식사를 채우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 혼자만의 새벽 시간 일탈을 즐기고 있다. 



이제 중3인데 학원은 안 가. 






아들의 유일한 학원 경험은 중 1 때  영, 수 과외였다. 1년여 동안 잘 다니나 싶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그마저도 접었다.  자기 공부는 자기 주도 학습으로 채워가겠다는 약속과 실천은 중2 개학과 함께 먼 산 메아리처럼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그 간의 내공으로 중2, 2학기 중간고사까지 성적은 괜찮았다. 학원도 가지 않고, 하교 후 따로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없고, 시험 기간마저 책 한 번 펼치지 않았지만 전 과목 만점에 가까운 수행과 시험 점수, 몇 장의 상장을 꾸준히 받아오며 "이게 나야~ "라며 턱을 쳐들고 다녔더랬다. 


그러나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달랐다. 2학기 중간고사 성적과 수행평가 성적으로 겨우 아슬아슬하게 'A'를 받기는 했지만 국어에서 1점이 모자라 'B'를 받고 말았다.  중학생 학부모가 아닌 누군가가 얼핏 보면 국어 하나 'B'인데 뭐가 문제인지 싶겠지만 중학교는 학급에서 최대 40%까지도 올 A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 과목에 B가 있는 경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4-5등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험 기간에도 영화와 게임만 반복하던 아들의 이런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성적에 엄마인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들은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는지 방학식 날부터 2-3일은 거의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 학기 방학식마다 받아오던 상장이 한 장도 없었으며, 본인보다 성적이 한참 아래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성적에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의 방목 교육의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검은 양 같은 마음은 숨긴 채 아들을 위로했다. 


"엄마는 괜찮은 거 같다.  매일 놀면서 상위 2-30%에 머문다면 완전 땡큐 아니니?   상위 2-3%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종일 공부만 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완전 혜자잖아? " 


아들은 멋쩍게 겨우 수긍하는 척했지만 베짱이 특 아들이 중2 겨울 방학, 드디어 자기 손으로 수학 교재를 집어 들었다.  스트레스 받지 않게 개념 교재부터 주문해서 매일매일 본인이 정한 시간에 본인이 정한 만큼 공부했다. 중간중간 머리를 뜯게 하는 문제들이 나타날 때면 슬쩍 학원을 권해 보았지만 아들은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요. 모르는 건 동영상 찾아볼게요''라고 한다. 


그렇게 방학 2주 동안 빠짐없이 수학 공부를 이어오던 아들이 "나 연산 속도가 너무 느린 거 같아... 3학년 1학기 개념을 2주 안에 다 풀고, 남은 방학 동안 연산 문제집을 한 권 풀어야겠어요"라며 은근 슬쩍 본인이 잘 알아서 잘 하고 있다는 자랑을 담은 학습계획을 알려왔다. 


"그 정도 좋은데? 그렇게 했는데도 모르는 문제는 학교에서 수학선생님께 물어서 해결하면 될 것 같은데?" 



본인 성적에 본인이 충격받고, 본인의 학습 목표를 정하고, 본인의 학습량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아들. 


내가 그리고 꿈꾸던 바로 그 궁극의 상태가 드디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베짱이처럼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영화 보고, 게임하고, 먹고, 자고, 놀기만 반복하는 중학생 아들을 만 2년 동안 지켜봐야 했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딘 엄청난 보상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훅 찾아왔다.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1등급도,  in 서울 도 아니다. 

본인이 노력한 만큼으로 얻은 결과를 인정하고

더 오래, 많이 노력해서 앞서가는 친구들의 성과를 탐내거나 깎아내리지 않으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셀프리더십을 탑재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2학년 2학기 성적표.






초등학생 때와 달리 중학생이 된 후, 성적도 점수로 표기되고 각 과목 평균 점수가 성적표에 표기되기 때문에 성적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매 학기말 성적표에는 성적과 함께 선생님의 '개별 가정통신'이라는 개별 평가가 함께 있다. 개인적으로 성적보다 이 부분을 더 눈여겨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독해 수준으로 읽고 되새기게 된다. 



아들이 말하길 성적표 개별 가정통신문을 쓰면서 선생님이 창작의 고통을 느끼셨다고 했다고 했다. 


그만큼 담임 선생님께서 학기 중 가장 내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인 나아게 전하고 싶은 교육 지침에 몰입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대부분 이 글들은  초등학생 때 나 중학생 때 나 얼핏 보면 칭찬 일색으로 도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모의 눈으로 꼼꼼하게 되짚어보면 


특히 강조한 아이의 강점과, 전혀 언급하지 않은 단점들이 보인다. 


선생님들의 표현에서 잘하는 부분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거나, 특정 과목에서 특출난 우수함을 강조하는데 아들의 이번 평가에는 특정 과목 성적의 칭찬보다 학습태도와 인성 쪽의 평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제까지 영어나 수학, 체육 쪽의 특정 과목의 칭찬이 있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평가였다. 


2학년 2학기 말 선생님의 평가를 짧게 요약하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최고는 아니며 착하지만 1등은 아니야' 정도이다. 



이렇게나 선생님들의 평가는 정확하다. 아들은 실제로 2학기 내내 수행평가는 열심히 수행했지만 '공부'라고 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2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특정 과목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2학년 2학기에는 성적이 떨어져 성적보다 태도와 인성 쪽에 초점이 맞춰진 평가를 쓰게 된 것이다. 






2학년 2학기 개별 가정통신문 


이안이는 학습능력이 뛰어나며 학문적인 지식을 빠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우수합니다.  합리적인 판단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학생입니다. 수업에 집중력이 높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토론이나 토의에서 항상 돋보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림으로써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자기 주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학업성취도가 우수합니다. 정직하게 행동하고, 언행이 바르며 문제해결력이 뛰어나 급우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이안이가 3학년이 되어서도 즐겁게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괜찮아 중 3이야 


중 3이 되는 아들은 사춘기가 끝나가는 것인지, 방학이라서 좋은 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던 1.2학년의 심리상태와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엄마인 내가 보기에 사춘기를 지난 아들은 썩 괜찮은 중 3 형아가 되었다.  밝게 크게 웃을 줄 알고,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할 줄 알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끊이질 않고,  일상 속에 유머가 가득한, 참 괜찮은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다. 

상처받은 엄마를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기도 하고, 동생이 아플 때는 어김없이 양보하고 보살필 줄 알고, 아빠의 직업과 성장에 대한 존경을 갖고, 관심이 가는 분야의 책은 찾아 읽을 줄 아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탑재한 아들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 중이다. 

아들의 성적이 지금보다 더 떨어져서 in 서울은 고사하고 4년제 대학에도 못 가도 상관없다. 

어차피 아들의 꿈은 겨울 산에서 동물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사는 삶이다. 

본인의 꿈과 미래는 본인의 노력과 바램으로 채워가는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 아직은 중 3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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