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출장 일상기록
가로로 내리는 눈
점심시간이 끝나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가니 모두가 창밖을 보고 서있었어요. 벌써 퇴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려니 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문득 옆옆자리의 창 밖이 보였습니다.
'눈이 가로로 내리네.. 어? 내일 출장인데!?'
'비행기가 눈바람에 사고가 나면 어쩌지!?' '요즘 사고가 많은데.. ' '반찬은 안 부족하려나? ' 비행기 결항이 됐나 안 됐나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새벽 내내 뒤척이느라 잠을 못 잤어요. 포기하고 새벽 4시 인천으로 미리 출발합니다.
출발 직전까지 눈이 내렸어요. 얼마 전 주말 아침에 가족들과 [투모로우] 영화를 보았는데 딱 그 영화 속 장면들 같았어요. 갑자기 남극처럼 변해버린 인천공항 활주로. 비행기에 걸어 들어가면서도 영화 속 장면들 생각이 멈추지 않습니다.
비건이 아니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비건도 아니지만 출장을 가면 기내식을 생야채식으로 변경합니다. 미동도 없이 비행기에서 앉아있고 내리자마자 또 먹을 테니 제 몸에겐 가장 좋을 것은 소량의 식이섬유와 비타민, 미네랄일 거라 생각했어요. 공복이 가장 좋겠지만 그건 어려워 차선으로 선택했죠.
새벽의 공항에서 아침조식을 먹고 비행기에서 삼시세끼, 내려서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 혹은 바로 아침식사 후 일정시작. 5 끼니를 먹거나 잠은 안 잔 채 6 끼니를 먹고 30시간 넘게 깨어있거나요. 내 위는 정말 힘들겠어요.
출장을 가면 모든 일과시간이 뒤바뀌고 활동량과 수면시간, 루틴을 지키기 어려워져요. 바뀐 상황에서 조금 더 나은 대안으로 나 스스로 지키려고 세운 습관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매일은 모두 다르고 완벽히 통제된 규칙이 없는 삶이니 늘 노력도 바뀌어요.
비행기에서 2시간 정도씩 쪽잠을 자긴 하지만 흔들림과 소음, 자세의 불편함 속에서 잠드는 수면의 질은 정말 좋지 않아요. 비행거리가 10시간, 16시간이 훌쩍 넘는 출장은 더욱 그래요. 건강에 있어 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장기 출장이 어려운 이유는 이 부분일 거예요.
이번 출장은 앱에서 손쉽게 변경 신청할 수 있는 항공사가 아니다 보니 생야채식으로 기내식을 바꾸지 못했어요.
김치와 생야채가 가득한 맛있는 불고기쌈밥이 나왔습니다. 밥은 빼고 상추와 쑥갓, 고추, 불고기, 김치까지 쌈을 싸서 먹었어요. 생야채식보다 2배 맛있는 식사를 했습니다. 김치와 불고기의 힘.
무려 11도나 더 따뜻한 독일
5일 동안 독일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독일은 +1도. 서울은 -10니까.. 11도 차이. "다행히 따뜻하겠구나. "
따뜻한 걸 확인했지만 작년에 갔을 때 너무 추웠다 보니 혹시나 모를 추위를 대비해서 짐이 늘어나 결국 28인치 캐리어가 가득 찼습니다. 조금 더 도톰한 기모가 있는 양말로 바꾸고, 속에 껴입을 내복, 목폴라들, 생각보다 안 추우면 입을 가볍고 얇은 패딩, 생각보다 너무 추우면 입을 조금 무거워도 강력 바람차단이 되는 무적 롱패딩. 그리고 목도리.
결과적으로 올 해는 작년과 달리 으슬하게 춥긴 했어도 무섭게 시린 찬 바람이 불진 않았어요.
그래서 감기는 걸리지 않았고 더워서 볼과 발이 계속 빨개져서 열병에 걸린 것처럼 돌아다녔어요.
'추워서 감기 걸린 것보단 나아!' 아 안 춥다.
영상 1도라는 기온이 사실 따뜻한 건 아닌데 투모로우의 뉴욕처럼 변해버린 서울에 있다 가보니, 감사한 독일 날씨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연이 주는 감사함.
독일에서는 감자
독일음식인 슈니첼, 언뜻 남산돈가스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겉이 바삭하고 느끼하거나 기름지지 않으며 튀김옷이 더 얇아요. 베리잼, 감자와 같이 먹어요.
집에서도 곧잘 감자를 잘 쪄먹고 구워 먹고 삶아 먹는데, 독일에서 먹은 감자라면 매일도 먹을 것 같아요. 더 촉촉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독일 감자.
출장 중 전시회장에서는 감자와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고기스튜를 먹었어요. 따뜻하고 기운이 나는 맛이라 집에서도 겨울에 끓여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차, 요구르트, 채소볶음, 계란
그리고 꿀과 사과
이걸 다 먹는다고?
늘 출장을 가서 아침 조식을 먹을 때마다 듣는 소리입니다. 그저 라테 대신 뜨거운 베리차, 스크램블 대신 삶은 계란, 베이컨 대신 연어와 채소볶음, 빵대신 치즈와 그래놀라를 뿌린 요거트를 먹을 뿐이에요. 아침은 왕처럼 가장 좋은 걸 골라서 많이 잘 차려 먹습니다. 물론 저녁도 잘 먹지만요.
담을 때도 이쁘게 담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브런치 카페에서 먹는 것 같잖아요. 별 것 아닌 저만의 소소한 즐거움인데 저의 기분은 저만 아니까요.
채소볶음과 연어, 요거트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리고 사과와 치즈, 반숙의 촉촉한 삶은 달걀을 먹을 땐 땅콩버터를 같이 먹어보세요. 입 안 가득 풍미와 부드러움, 고소함이 퍼집니다. 영양가도 높고요.
요거트는 퍽퍽하지만 단백질이 풍부한 무가당 그릭요거트에 과일, 그래놀라, 견과류를 넣고 마지막으로 꿀을 듬뿍 넣어서 잘 섞은 후 먹으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멋진 요거트가 돼요.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소세지를 추가했어요. 독일은 소세지, 감자, 맥주의 나라. 정말 맛있는 소세지였어요.
출장 때는 2만 보 가까이를 매일 걷습니다. 날도 춥고요. 아침을 든든히 잘 차려 먹고 나니 기운이 납니다.
집으로
가득 찼던 캐리어를 다시 열어 반은 그대로 옷장에 정리했습니다. 입지도 않고 여행 다녀온 내 따뜻한 옷들. 한 달에 한번, 두 번은 늘 가는 출장이지만 늘 두려움과 설렘과 안도감이 함께입니다.
출장을 다녀오면 늘 아이들은 엄마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내내 앞에서 춤을 추고 그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쏟아내고 그간 만들었던 종이접기, 게임실적, 인형을 가져다 보여주느라 바쁩니다.
그다음은 캐리어를 열어 자기들 과자, 사탕, 선물을 찾는 게 일상이 된 출장. 저의 일상 속의 한 부분이 된 듯 해요. 오늘도 무사히 일상을 잘 마무리 지어서 참 다행입니다.
조용한 작가생활
따뜻한 봄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