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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실남 Feb 05. 2019

비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스텝 - 물건 비우기



문득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둘러보면 너저분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매일 깔끔한 집안을 위해 집안일을 하지만 금세 너저분해지는 집을 보며 허무함을 느낀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티 안 나는 집안일에 벌써 질려버렸다.


"아 진짜 하기 싫다."



집안일 하기가 정말, 정말, 정말 싫지만 불행하게도 집안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 않으면 사용할 그릇이 없고, 하지 않으면 내일 입을 새 속옷이 없고, 하지 않으면 발 디딜 틈이 없어 까치발을 하고 집안을 걸어 다녀야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테니 말이다. 집이 있고,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집안일과는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데(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할 재력이 생기던가,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이 보편화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는 집안일을 어떻게 하면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집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집을 보며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물건이 줄어든다면 해야 할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고심 끝에 행동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집안에 기웃거리고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거야!"라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다짐한다 한들, 당장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인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이 시점에서 짐을 비우며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어디서부터 비워볼까?'라고 생각만 했는데도 몸 안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 본 투 비 미니멀리스트?


평소에도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짐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타입) 그래서인지 짐 많기로 유명한 조소 전공자인 내가 꼬박 4년을 다닌 뒤 졸업할 때 소박한 짐을 챙겨 나온 것도, 2년 가까이 다녔던 회사에서 쇼핑백 하나에 담길 만큼의 짐만 챙겨 나온 것도 비슷한 이유일 거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짐을 늘렸다. 그 편이 편했으니까.


하지만 남편과 함께 사는 신혼집은 달랐다. 두 명 분의 짐이었고, 살림을 하며 살아가야 해야 해서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살림에 무지했던 우리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고 "이게 좋대."라며 어디서 들은 것을 믿고 이것저것 잔뜩 사들이고, 누군가 쓰던 물건을 주기라도 하면 냉큼 받아오다 보니 어느덧 작은 집에 짐이 꽉 들어찼다. 이미 꽉 찼으니 짐이 늘어나지 않을 거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한 계절이 지나면 또 어느새 짐이 늘어나 있으니까.
 

자 이제는 그 짐들을 비워볼 차례다. 상대적으로 쉬운 옷장부터 부엌에 있는 작은 서랍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쓸모없는 것들을 비워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쓸모없는 물건들이 많았고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서 잊혔던 물건들이 끊임없이 나왔다.(참고로 쓸모없다는 것의 기준은 온전히 나와 남편의 마음이다.)


비우고 비우다 보니 어느새 옷장에도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고, 제대로 닫히지 않던 서랍장들도 숭덩숭덩 열고 닫음이 자유로워졌다. 정리 안 되는 옷들은 빈틈 많은 옷장에 입고 바로 걸어두니 집안이 너저분해지지 않았고 부엌 싱크대 주변의 짐이나, 요리대 위에 자리만 차지하던 것들을 버리거나 수납을 해두니 전과 달리 볼 때마다 마음에 안정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한바탕 집을 비웠더니 채우고 싶은 생각보다 더, 더, 더 비우고 싶어 졌다. 계속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집안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 기적을 느꼈다. 정리할 게 줄어드니 살짝만 부지런을 떨어도 금세 깨끗해졌다. 고작 첫 번째 단계를 했을 뿐인데, 자꾸 손이 가고 마음이 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저 비우기만 했을 뿐인데! 아니면 나 갑자기 살림의 여왕이라도 된 것은 아닐까?(아님)


그렇게 몇 차례  비우고 버리는 걸 반복하니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정리해 보기로 했다.(물론, 지금의 마음을 잊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첫 번째. 남이 쓰던 물건은 우리 집에 와도 내 것이 아니다.  

나의 필요로 구입한 물건이 아닌, 누군가 좋은 마음으로 건넨다고 해서 무작정 받아온  물건들. 개 중 열에 아홉은 나에게 쓸모없는 것이더라. 집에 가져와서 언젠가 쓰겠지 하고 처박아두지만 결국 쓰지 않는다. 누군가 쓰던 물건을 성의로 준다고 하면 받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그 물건이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에게 필요했다면 진작에 샀을 거다.


두 번째. 저렴한 물건이 득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티 한 장을 사더라도 튼튼하고 가격대가 있는 옷을 구입해서 입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입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 4년 전에 구입한 검은색 긴팔 티를 아직도 입고 있고, 5년 전에 샀던 울코트를 아직도 잘 입고 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참 많다. 게다가 걸핏하면 반값 세일을 하는데, 알록달록 화려하고 트렌디한 패스트 패션에 홀랑 마음이 뺏겨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 손에 옷이 한가득 들려있다. 싸게 샀더라도, 잘 입으면 그야말로 득템이겠지만, 그 옷들 대부분  한두 번도 안 입게 된다. 어쩌면 나는 싼 맛에 일회용 옷을 산 셈이다. 한두 번 입는다면 일회용 치고는 비싼 옷을 사게 된 것이다.(속이 쓰리다.) 그렇게 사들인 뒤 입지 않아 산더미를 이룬 옷부터 액세서리, 그 외 생활용품까지 사두고 쓰지 않은 것들이 꽤나 많았다. 안 입게 될 옷은 기부하면 된다지만, 그런 쓸모까지 없는 물건들은 눈앞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세 번째 추억은 남겨두고, 미련은 버리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서랍장 하나씩을 열어본다. 남편이 본가에서 가져온 정체불명의 박스들도 피할 수 없었다.(남편도 비우는 것에 동의했음을 알립니다.) 하나씩 열어보며 추억여행에 빠진다. 친구나 가족 지인에게 받은 카드나 편지들, 학창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비워둔 박스에 새롭게 채웠다. 추억은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쓰고 싶지는 않지만 단지 아깝다는 이유에서 남겨 둔 것들도 꽤 있었다. 추억도 아니고, 쓸모도 없다면 버리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건 미련일 뿐이니까. 추억과 미련을 구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짐이라고 생각되다면 미련이다.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물건을 비워내자 마음과 생각도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었다. 물건을 비우지 않고 마음이나 생각을 먼저 비우려고 했다면 오히려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과정이었을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다. 하긴, 집안일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었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싫어하지 않는 정도가 됐지만.


앞으로도 채우는 삶보다는 비우는 삶을 살기로 했다. 비워내는 것이 복잡한 인생을 해결해주는  최선의 정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글/그림 은실남


은실남 소속 직업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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