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전생에 무수리
<사진 : 고은별 촬영> 그림 같은 저녁노을
방금 붓자국을 끝낸 것처럼 선명한 구름
석양이 아름다움으로만 간직될 수 있는 건
변함없이 찾아올 일출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찍었는지 바탕화면에 파일로 저장되어 있어 올렸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 먹고 싶어요?"
"글쎄."
"중국 식당 갈까?"
딸과 초등 손님과 집을 나섰다.
인테리어 가게의 멋진 장식장
디자이너가 누굴까?
작품 완성까지 숙고의 흔적이 절절하다.
딸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중국식당
입구에 세워진 압도적인 석상
중국 특징을 잘 살린 식당 내부
딸이 메뉴판을 건네며 뭐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얼큰한 짬뽕!"
"엄마 여긴 한국이 아니야. 짬뽕 짜장면은 없어!"
"그럼 네가 알아서 시켜. 낯선 음식 먹어보는 것도 좋아."
요리 이름은 까먹었지만 아주 맛있었다.
딸과 초등 손님은 집으로 가고 나는 다시 북 공원 쪽 마트로 휘파람 소리가 나도록 걸어갔다. 마트에서 물건 사지 못한 이야기를 했더니 딸이 선뜻 50유로짜리 지폐를 건네서였다.
원하던 장바구니를 샀다. 딸이 이를 데 없이 고맙고 여러모로 쪼잔하게 군 것이 또 미안했다.
딸이 운전해서 플라타너스 길을 달렸다.
딸은 나와 초등 손님을 특산물 마트로 데리고 가 초콜릿, 과자, 소시지, 각종 치즈, 트러플소금을 한아름씩 선물했다.
전생에 무수리인 줄 았았는데
저런 딸이 있는 걸 보니
어느 결에 나라도 구한 모양이었다.
아로를 데리고 가까운 호숫가로 나왔다.
무심한 왜가리
아로 역시 왜가리한테는 무심했다.
9월 20일
자연을 빚은 신마저 감탄할
교회 포인트 4의 석양
점점 스러지는 황혼
강아지만 나타났다 하면 친구 하자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아로.
그런 아로와 실랑이하며 오랫동안 노을을 감상하다 발길을 돌렸다.
안녕, 아름다운 석양. 안녕!
딸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스칠 때마다 울면서 가지 말라고 했다.
결혼하자마자 근 20년 해외에서 산 딸. 딸은 몇 번 안 되는 방문 후의 이별에 언제나 힘겨워했다. 딸이 가지 말라고 하며 울면 융통성 없는 나는 언제나 이 말만 되풀이했다.
"안 갈 수 없잖아. 명절 얼마 안 남았어. 귀국하면 그때 만나자. 응?"
이번엔 달랐다. 지키지 못할 약속도 서슴없이 할 줄 아는 배짱만 남은 늙은이가 되었으니까. 나는 딸 손을 잡고 울면서 힘 있게 말했다.
"아가, 엄마 가지 않을게."
"엄마, 엉엉!"
"설령 간다 하더라도 마음은 여기 네 옆에 있을게. 아무 걱정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