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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영난, 영화관의 현재

마케팅 공부

by 원갱

우리 엄마는 젊은 시절 공연 보는 것도 좋았지만, 영화관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문화생활을 통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어릴 적의 나에게 공유하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이 공연생활과 영화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그 해의 가장 인기 있는 영화들을 두어 개 관람했던 것 같다. 그 흐름이 멈추게 된 것은 역시 코로나 팬데믹 시기일 것이다. 팬데믹 시대가 시작되며 활성화된 것이 바로 OTT 문화다. OTT가 온갖 드라마와 영화를 들여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팬데믹 시기가 끝나도 OTT가 영화관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생각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준비하고, 적당한 분위기만 설치해 준다면 어디서든 영화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이후로 극장보다 OTT를 더욱 자주 본다고 반응했다.


실제로, 팬데믹 시기 이후 영화관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3월 12일 SBS 뉴스에 따르면 영화관 업계 1위 CGV는 근속 7년 이상의 대리급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 회사는 팬데믹 시기부터 주가가 대폭 하락했고, 현재도 매우 낮은 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퇴직자에게는 연차에 따라 위로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CGV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도 희망 퇴직을 단행했는데, 4년 만에 인력 감축이 또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관들은 현재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으나, 살아남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다. 영화관들이 주로 겨냥하는 대상은 하비슈머들이다. 하비슈머는(hobby+consumer) 취미와 소비자를 합친 신조어로, 이들은 자신의 취미 (덕질생활)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이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주로 교류하는 플랫폼은 X(옛 트위터)다. 내 지인들도 그렇고, 나도 이들의 범주에 속한다. 그간 봐 온 바에 따르면, 극단적인 사례로 이들은 자신의 생활비며 밥값이며 악착같이 안 쓰고 꼬깃꼬깃 모으다가 취미생활을 할 때 지갑을 탈탈 털어 쓴다. 나도 한때 그랬어서 여기서는 침묵하겠다. 온라인에서 주로 교류하는 하비슈머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만남을 가지고, 서로 좋아하는 요소를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하길 추구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추구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이러한 하비슈머, 다른 말로 덕후들의 성향을 잘 캐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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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상영은 관객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극중 소속을 응원하면서 영화를 즐기는 상영 방식이다. 2023년 1월,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전국을 휩쓸었을 때 영화관을 향한 열기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슬램덩크의 오랜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 N회차를 돌면서 영화를 감상하고 인증을 올렸다(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 영화관에서의 응원 상영은 무척 열광적인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관은 집중을 위해 암묵적으로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 그러나, 응원상영의 경우 이미 1회 이상 관람하고 난 후 오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개인적 경험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 영화 중 등장하는 대사를 반절 이상 외워 버린 팬들은 이제 자신이 영화 속 관중에 이입해서 좋아하는 캐릭터를 응원하기 위해 영화관에 왔다. 이는 당시 해당 영화에 사람들이 더욱 열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최근에는 스포츠 애니메이션인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에서 활용하고 있다. 배구를 소재로 다룬 애니메이션 하이큐!!가 인기를 가장 많이 끌었던 건 2018년~2019년 사이로 기억하는데, 그때 형성된 팬들은 이번 극장판 개봉에 캐릭터 소속의 유니폼과 응원도구, 슬로건을 들고 오고 있다. 몇몇 팬들은 비공식 응원상영회에 직접 팬아트를 그려 함께 영화를 즐길 팬들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각 영화사에서는 응원 상영을 하는 관객들을 위해 영화 중 등장하는 스포츠 팀들의 슬로건을 제공하고 있다.



메가박스 강남점에서는 3월 17일부터 3월 21일까지 점심시간마다 리클라이너 좌석을 이용할 수 있다. 리클라이너 좌석에서는 힐링 음악이 흘러나오며, 편안하게 낮잠을 자거나 자신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게 된다. 이용료는 1,000원이다. 주변에 회사가 많은 강남점의 지리적 요건을 고려해 보았을 때, 직장인들에게는 잠깐의 꿀 같은 휴식처가 되어줄 수 있을 테다. 다만 근처에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쉼스토리'와 '쉼라운지'에서도 더욱 긴 시간과 OTT 감상, 보드게임, 음료수를 제공하는데 굳이 갈까는 의문이다. 영화관에서의 특별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1회성 방문으로 그치지 않을까? 그래도 좌석을 리클라이너로 전환하고 이렇게 이벤트를 진행하는 메가박스의 행보가 센세이션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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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들은 이전 상영작들을 다시 올리고 있다. <위플래쉬>, <양들의 침묵> 등 과거 높은 관객수를 기록한 명작들을 상영해 주는데, 이를 계기로 과거 영화들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당장 내 지인만 해도 해당 영화들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데 감격하고 있다. 아무리 OTT가 발전했다고 한들 걸작은 영화관에서 봐야 맛이 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더 폴>의 경우, 포스터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인터넷 유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보러 가라고 소문이 나고 있다.



돌아와서, 영화관의 경영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일단 표가 너무 비싸다. 영화배우 최민식 씨도 '이렇게 급격하게 가격을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팬데믹 시작 시기만 해도 영화값은 8천원 언저리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가격이 1만 5천원으로 올라버린 상태다. 평일 가격으로 따져도 단기간에 너무 가파르게 올라, 거의 40%가 올라버렸다. 물론 영화관들에게도 사정이 있다. 티켓값을 만원으로 쳤을 때 10% 가량의 부가세, 영화기금이 빠지고 나머지를 영화관과 배급사와 제작사가 나눠가진다. 정작 극장이 받는 수입은 약 4,500원 정도 되는 것이다. 오히려 팝콘을 사 먹는 게 더 이득이다. (단가가 싸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절에는 사람끼리 가까이 앉기도, 취식도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오래도록 경영난이 이어졌다. 영화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티켓값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극장 측의 주장이다. 한국만 이렇게 올린 것은 아니고, 외국 역시 티켓 가격을 가파르게 올렸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지불한 가격에 맞는 서비스를 기대하곤 하지만, 영화관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그에 한참 모자르다는 점이다. 경영난으로 가격을 올리게 된 것은 이해하지만, 그만큼 심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천원~2천원 정도 오른다면 물가 인상을 반영했다고 막연히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레 크게 오른 것이 문제다. '극장에서 스크린 하나 틀어주는데 1만 5천원이나 줘야 하느냐' 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이다. 여기에 곁들일 팝콘 세트를 사면 역시 만원대가 훌쩍 넘어간다. 영화 한 편에 거의 30,000원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3사에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격이 드높다 보니 괘씸하다는 반응도 종종 존재한다. 가격이 이오르면 당연히 품질이나 서비스가 좋아져야 한다고 느끼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격은 올랐는데 변한 게 없다.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말은 가격 대비 상대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1만 2천원이면 '뭐 이 정도면 볼 만하다' 라는 것도 1만 4천원으로 다가오니 '이 가격에 봐야 하는가?'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팬데믹 시기도 끝나고, 사람들은 오프라인 활동을 즐기고 있다. 당장 대표적인 오프라인 공간인 야구장만 해도 티켓팅에 치열한 모습을 보이는 등 열광적이다.


아무리 경영난이라고 하지만 영화관은 오히려 직원 수를 줄이면서 매력을 잃고 있다고 본다. 수를 줄인 알바생에게 여러 가지 일이 맡겨진다. 대부분의 시스템은 셀프로 대체되고 있다. 당장 팝업스토어만 해도 직원들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고, 안내하면서 영화 볼 기분을 고조하게 했다. 포스터를 한 장씩 뽑아가며 기대하던 설렘, 손에 꼬옥 쥐고 들어가던 티켓. 그런 추억이 없어진 지금, 영화관에 방문하면 사람들이 없어 매우 을씨년스럽다. 이런 인식이 박혀있는 상태에서 영화값은 주욱 올랐다. 그렇기에, 차라리 집중이 덜 되더라도 OTT를 보게 된다. 소비자들이 1만 5천원이라는 가격에 익숙해져야 보러 오든 말든 할 것이나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영화관도 충분히 문화생활의 장으로서 여전히 가치가 높다고 본다. 집은 사적 공간으로,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곳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만나도 상대의 기분을 신경쓰는 것은 은근한 스트레스다. 직장과 학교는 어째 되었건 공적 공간이기에, 자신만의 고독을 즐기기에는 어렵다. 영화관과 비슷한 추구미의 공간은 도서관과 북카페, 책과 함께하는 술집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콘텐츠를 감상하는 순간만큼은 오롯이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영화관은 혼자 올 때 그러한 매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라고 생각되지만, 같은 취향을 즐기는 친구와 함께했을 때 그만큼 조용히 몰입하고 감상을 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 또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지표를 집계하기엔 어렵지만, 검색하다 보면 게시물 등의 반응을 올리지 않을 뿐 여전히 영화관의 매력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연인이나 친구 모임에서야 오프라인 데이트의 수많은 후보지 중 하나겠으나. 구태여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하는 이들, 흔한 영화보다 수작인 영화를 찾는 이들. 본래부터 영화를 좋아하던 이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보고 싶어 하는 이들. 영화관의 미래는 이런 유형의 관객들, 즉 '팬들'에게 달려있다고 본다. '팬덤' 관객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고, 그들의 소망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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