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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20회 월악산 종주(차갓재-저수령)

06년 5월 27 - 28일

5/27   22:00       신도림

5/28   03:10       안생달

         03:30        차갓재 (-헬기장-작은 차갓재)                  2.4km

         04:30        묏등바위        

         05:00        황장산 (10분 휴식)                                2.6km

                        감투봉-잘루목

         05:40        황장재 (-헬기장-암릉 )                          0.92km

         06:40        치마바위

                         폐백이재

         07:10        928봉

         07:40        벌재 위 헬기장 공터(30분간 아침식사-08:10 출발) 

         08:20        벌재                                                    4.56km

         09:00        문봉재(월악농장/호박골 )   

         09;30        1020봉                                

         10:00        문복대(1074)-옥녀봉(1077)

         10:30        관광목장 갈림길

         11:10        저수령 (850)                                         6.06km

                                                  8시간                16.54km   

안생달 마을 불두화

 5월 27일_토_22:00

 4월 말 이후 4주 연속 속리, 월악의 대간산행 이후 한 주 쉬는 것이 몸살 날 기분이다. 이렇게 서서히 대간병에 젖어들어가는 내가 스스로도 느껴지니.. 곁에서 지켜보는 물푸레의 한숨이 점차 길어진다. 벌써 9개월.. 지난여름 속초 영금정 바닷가에서 다짐한 나의 결단을 다시금 확신하며 내 스스로의 자유를 찾아 나서는 이 대간의 작은 맺음도 이젠 6개월 남은 채 절반의 새로운 시작이다. 주말 토요일 낮에 쏟아지는 봄비와 천둥 번개가 한바탕 소란을 이루더니 밤늦은 출발 길엔 보슬비로 힘이 빠지니 한결 맘이 놓인다. 

 초급장교로서 2주간의 유격훈련 중 1주를 마친 배소위의 전화 목소리가 무척 빡센 훈련을 입증하듯 목이 쉬어 제대로 발음은 들리질 않지만, 궂은 날씨에 산행 길 나서는 애비의 건강이 염려스럽다는 걱정을 전한다. 많이 컸구나.. 고된 훈련 중에도 이젠 거꾸로 날 염려하다니.. 보람을 느낀다. 대간길 절반의 첫 시작인 오늘.. 지난해 황장산-작성계곡 산행 시에 대간 중간점 표지석을 보며 강한 충동을 일으켰던 그곳.. 내게 백두대간의 의미 있는 새로운 출발점을 향하는 오늘 밤은 유난히 설레고 안생달 마을이 기다려진다. 26산케의 두 친구가 함께하니 더욱 즐겁다.   

 주말을 적시는 빗소리에 놀란 탓인지 대원들의 갑작스러운 결행이 많아 유감스럽지만, 새롭게 진부령까지의 절반에 합류하는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 보태지니 반갑고 다행이다. 그중엔 조령산 이후 계속 함께하는 내 친구 장포드의 진부령까지 합류 선언이 용인 휴게소 광장의 한잔 막걸리를 더욱 의미 있는 브라보로 장식한다. 축축이 적셔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안생달 마을에 조용히 닻을 내리니 쏟아지던 비마저 그치고 차갓재 산마루의 그믐밤 하늘엔 희미하나 별빛마저 언뜻 비추이니 혹시나 하고 새벽 일출마저도 기대해 본다. 배낭 속의 우의들을 꺼집어내고 무게를 줄인다.     

묏등바위-황장산 트레바스; 작년(05년) 여름사진

5월 28일_일_03:10

 걱정되던 빗줄기가 그친 생달마을의 맑은 공기가 반가운지, 2주 전 대미산에서 내려와 산나물에 싸서 먹던 이슬이 안주가 그리웠던지 산행버스가 느릿하게 마을로 들어서서 정차하자마자 대원들이 배낭을 준비하며 산행을 서두른다. 마을의 정적을 깨우지 않으려 조용히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친 후 차갓재를 향해 어두운 밤길을 오른다. 벌써 세 번째 걷는 길인데도 그믐밤길은 칠흑으로 새롭게 느껴지고, 선두를 뒤쫓다 보니 어느새 왼쪽 송전탑 길을 들어서서 대간 마루금으로 올라선다.(03:30) 

 간간히 뿌리는 보슬비로 여겨지던 빗방울이 제법 후두둑거리니, 버스에 두고 온 우의가 아쉽다. 혹시나 다시금 비가 시작되면 오늘은 제대로 수중훈련을 치루야 될 판이다. 몇 걸음 능선을 밟은 후에 차갓재 표지석 장승 앞에 멈춰 서서 비옷들을 입고 배낭커버를 씌운다. 이 고개를 넘어 왼쪽 벌내 마을로 피난 가던 공민왕의 피난 수레도 오늘처럼 을씨년스런 비를 만나 갓을 씌우고 있었을까..  안생달 마을에서 잠시 본 별빛을 믿으며 좋은 날씨를 확신하면서 작은 차갓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니, 얇은 셔츠에 후둑 거리는 빗방울이 시원스럽다. 이른 아침으로 밝아오는 여름 새벽의 투명한 녹엽(綠葉)을 기대하며 제발 오동엽(梧桐葉)의 대우성호(大雨聲豪)가 바람에 실려 그러하듯 잠잠해 지기를.. 

 풀섶으로 뒤덮인 공터 헬기장에서 비 그침을 확인하니 한결 맘이 놓인다. 작은 차갓재를 지나 묏등바위로 향하는 멋진 암릉 길 위에서 지나온 생달 마을 쪽 밤풍경을 조망하려 하나 짙은 운무에 가려진 채 불빛마저 동행을 꺼려하니 새벽 일출은 커녕 비를 피함으로 만족해야겠다. 1시간 여 조심스런 칼날 잔등 밟기를 계속한 후 묏등바위 로프 밑에서 대열이 멈춰 선다. 선두대장의 숨 가쁜 무전과 안전확보 지시가 들려오니 비에 젖은 직벽 암릉 줄잡이가 많이 미끄러운 모양이다. 작년 여름 반바지 차림에 무릎을 까지던 일행들의 광경이 떠오른다. 어두운 밤길 암릉밟기는 항상 집중력을 요하며 매우 조심스럽다.(04:30)

황장산 정상 *아래쪽 작년여름(05년)

5월 28일_일_05:00

 비록 7-8m의 짧은 줄잡이지만 비에 젖은 묏등바위의 오름은 매우 위험하다. 단체 산행객들이 시간을 절약하려고 굵은 로우프를 3개나 설치해 놓았지만, 오히려 좁은 날등에 불필요하게 발 슬립을 유도할까 봐 낡은 것은 제거함이 바람직하겠다. 밝은 낮엔 좌우가 좁은 직벽 낭떠러지에 황홀한 월악의 숲들이 시선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곳이리라... 한 명씩 조심스레 올라서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시금 이어지는 직벽 끊어진 슬랩을 트래바스 하기 위하여 가로줄에 매달린다. 작년에 있던 얇은 매듭줄이 가장 안전하게 붙어 있고 새로 쳐놓은 2개의 굵은 줄은 늘어져 오히려 위험하다. 안전시설을 위한 국립공원 관리소 측의 장비를 동원한 확실하고 빠른 조처가 요망된다. 

 희미하나마 새벽의 여명을 느끼며 황장산 정상을 향하며 한 걸음씩 발아래 느껴지는 암릉 날등이, 운무 속에 가려진 채 느껴지는 주변의 풍광을 떠올리게 하며 일출의 아쉬움이 더해간다. 아, 월악이여!! 盛夏의 新綠보다 더 상큼한, 비 온 뒤의 맑은 숲길을 기대하며 30여분의 암릉 구간을 거쳐 황장산(黃腸山,1077) 정상에 도달하여 숨을 고른다.(05:00) 역시 험한 암릉으로 둘러싸인 황장산 정상이라 하나 긴 풀섶과 소나무, 잡목에 가려진 정상에서 새벽의 운무에 둘러 쌓인 채 骨氣를 갖춘 肉山의 느낌 속에서 흐린 기념사진을 남긴다.    

 큰 산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점점 밝아오는 동녘을 향해 마주하나 소백산은커녕 守理峰(1019)마저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동북으로 겹겹이 다가올 투구봉, 도락산, 황정산을 지도 속에서 어깨동무하며 잠시 눈을 감을 수밖에... 날 맑은 가을날에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면서.. 까만 오석 정상비 옆면에 새겨진 일명 鵲城山의 전설을 되새기며 작년 여름 문안계곡(작성계곡)에서의 거풍을 떠올리고, 쓰러질 듯 역사를 이고 있던 鵲城門을 기억해 낸다. 변방(갓성)이란 뜻에서 音韻이 흘러내려 까치로 변하는 말의 역사와, 까치를 실재시켜 함께 인물을 만들어내는 변방설화의 전설 속에서 역시 인간의 줄거리가 더 매력적이다.  

 죽어서도 속 노란 黃腸木으로 칠성판을 베고 눕고 관을 만들던 영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封山으로 지정했다던(숙종, 1680년) 시봉표지목을 찾으려 둘러봤으나 잘 보이질 않는다. 잘려진 굵은 한 그루 소나무 그루터기에서 사라져 가는 名品木들을 위한 잔영을 어루만져 본다. 

감투봉 지나온 길

5월 28일_일_05:10

 황장산 정상에서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감투봉 쪽으로 내려선다. 칼날능선을 왼쪽으로 비켜 내려선 후 급경사 내리막에서 10여 m 로프에 매달리면서 조심스레 밟아 내린 후 감투봉(985)에 금세 올라서니 제법 날이 개이는듯하다가 어느새 운무에 휩싸인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동서남북으로 셧터를 눌러댄다. 마치 오늘의 보물 찾기에 성공한 기분으로.. 배경은 어차피 하늘뿐이니 그야 파란색이면 어떻고 흰색이면 어떠랴.. 황장산에서 보기 드문 고사목 검은 흑백을 배경으로 젊은(?) 산케 3명은 디카에 포즈를 잡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30여분 조심스레 급경사 내리막을 밟아 황장재(잘루목, 문안골/산태골)에 다다른다.(05:40) 지나온 감투봉을 올려다보니 꽤 험난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음을 유혹한다. 지난여름 이곳에서 왼쪽 문안골로 떨어지며 참 즐겁고 우아한 산행을 즐겼는데... 아직도 5시간 이상 남은 대간 길에서 부디 안개가 걷히고 밝은 햇빛을 보고 싶은데.. 준비한 물병은 한 모금 마시고는 그대로이다. 차라리 8월의 청옥, 두타 먼 길에서 이런 날씨 만났으면... 985봉(헬기장)을 단숨에 올라선다. 이어지는 고갯길에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암봉 위 대간 고개를 예쁘게 장식하고 서 있다.(05:50) 앞서 나간 선두조를 따라 두 친구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나 보다. 1004봉까지의 연속되는 암릉길을 홀로 기우뚱거린다. 


폴리토젤 집단농장에서 농업기능직으로 일하고 있는 고려인 아버지와 어머님을 모시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난 3형제 중 맏딸이라는 고려인 처녀는 고향이 진주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의 고향일 뿐 사실은 그의 아버지나 그 가족들은 진주가 한반도의 어디쯤 인지도 잘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발음처럼 함경도 어디쯤에서 살던 할아버지의 성씨가 진주를 본관으로 한 것인지도 잘 모른다. 아무튼 유난히 성씨에 지역적 본관을 밝히는 우리네 전통이 오늘날 그 근본을 유지하며 이 땅의 민족적 결집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단지 씨족사회의 한 가계를 대표하여 또 다른 집단의 구획을 만들어내는 반 자유적인 제도는 아닐까...
“사람이 지나온 삶의 기억들을 잊을 수 없는 한에는... 그 비참한 기억들이 가져다주는 고통으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지... 잊어야지... 그래.. 잊을 수 있어... 이렇게 술 한잔 하면서 내가 늘어놓는 이런 얘기들은... 자네가 생각하기엔.. 다시 떠올리고 뭔가 잊을 수 없기에 되새기는 것 같지만.. 인간이란 때로는 평생 간직하며 단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기억들을, 누구에겐가, 어디에선가 시원히 털어놓으면서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할 수도 있지... 지나온 삶들이 다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회상과 함께... 아니.. 비참한 기억들을 멋지게 합리화시키고서는 다시 포장하여 가슴속 깊이 묻어둘지도 모르겠지만... “
K노인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내 곁에서, 서빙하는 두 처녀는 가까이 서 있으면서도 자기네들의 대화로 분주하게 즐겁다. 네 명의 우리 구성원들 중에서 서로 무관심의 두 사람씩이 과연 우리라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까.. 참 공허하고 비정적인 만남 속에서, 언젠가는 타쉬겐트의 추억 속에 함께 할 두 여인의 존재가 새삼, 일상에서 무수히 만나고 함께 해야 하는 타인들의 군상들만큼이나 그 의미가 퇴색된다.
“내게 닥쳐오고 흘러간 그 많은 사건들이.. 내겐 부자유스러웠고.. 고통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내게 도움이라곤..‘자유’라는 것을 갈망하는 작은 느낌을 간직하게 해 준 것이었지.. 그러나, 그게.. 나를 남들과 함께 하기 싫어하고 권력을 피하고.. 소극적인 자유라는 걸 알기에는.. 한참 뒤의 일이지.. 그것도 부끄럽게도 내 똑똑한 자식을 통해서... 나를 남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느꼈을 땐.. 이미... “
K노인의 눈가엔 이미 먼 산 훔치기로는 지울 수 없는 눈물 방울이 흘렀다. 
과연 ‘인간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 속에서, 고상한 언어들로 치장해 가며 철학의 언저리를 맴돌던 나에게, 예정에 없던 여행 일정을 만들어가며 그와 나누는, 아니 노인의 일방적인 푸념들을 흥미롭게 엮어가는 머릿속에서, 갑자기 다가오는 명제가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며 어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내 나이가 벌써 50을 넘긴....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던가...  
감투봉 고사목


5월 28일_일_06:30

 황장재 이후로 꽤 긴 구간을, 작은 칼날 암릉밟기로 지루하지 않게 지나오며 간간이 걷혀지는 안갯속에서 월악의 깊은 계곡 속으로 때 묻은 잡념들을 날려 보낸다. 숱한 아집과 욕심과, 남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민주를 위한 허허로운 외침들.. 남들의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던 나의 부끄러움들.. 죽어서도 간직하고 싶었던 작은 명예들.. 나를 잃어버린 채 나의 현실의 자유를 잊은 채... 이젠 나의 눈으로 나를 보고 남들도 바라볼 수 있기를... 

 1004봉을 지나 치마바위에 올라서니 이어지는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쪽 급경사를 따라 10여분 대간길을 수정한다. 작은 고갯마루를 지나는 것이 아마도 폐백이재(산밭구이골/갈밭골)를 지나는 모양이다.(06:40) 다소 시장기를 느끼지만 벌재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 쉬지 않고 올라선  928봉에서 왼쪽 황장약수터 쪽으로 진행하던 일부 선두그룹을 큰 소리로 후퇴시켜 오른쪽 내리막으로 길을 잡으니 잡목 우거진 푸근한 낙엽길을 우아하게 걸어 내린다. (07:10) 이후 비교적 평탄한 내림을 맛보며 30여분 안개 낀 잡목 숲 속을 걸은 후, 벌재가 바라보이는 안부 헬기장에서 아침식사를 펼친다.(07:40) 

 두세 번의 동참으로 자유인 대간팀들과 제법 낯익은 두 친구가 이젠 자연스레 막걸리 한잔을 주고받는다. 어떤 인연으로 만났든 9개월간의 같은 발걸음이 맺어주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다. 같은 생각은 아닐지라도 이 땅의 가장 가운데 머리를 밟아나가며 내 삶의 터전을 사랑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잉태한 수많은 영혼들의 이야기들을 공감해 나간다면 먼 훗날까지도 이 땅 두루두루를 함께 밟아 나가는 동지가 되어갈 수 있겠지. 단지 긴 구간의 행렬 속에서 식사 시간만큼은 늘 보여야 할 곳에 보이지 않는 몇몇 대원들로 마음이 아프다. 여의치 않는 생활 속의 여건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각지 못한 불운들을 헤치고 다가올 내일에도 또 밀려올 숱한 사건들을 감당해 낼 힘과 용기를 가졌으리라 대간꾼으로 확신하고 기도한다.  

치마바위 쪽을 바라보며

5월 28일_일_08:10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이번 구간의 가장 낮은 고도인 벌재(625)로 내려서는 절개지 내리막이 무척 가파르다. 10여 분간 급경사를 내려서니 잘 포장된 벌재 59번(단양/문경) 도로를 건넌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이어주는 이 고갯길로 월악과 소백을 오가는 많은 산꾼들의 편리함은 더할 나위가 없다. 다만 1970년대 초반 대학 1학년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1달여의 농촌 봉사 활동을 끝내고 단양역을 거쳐 36번 충주 국도변 북하리에서 걸어 올라오던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계곡길이 2차선 포장길로 바뀌었으니, 30여 년 전 내 추억의 캠핑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도락산을 올려다보며 나누었던 3일간의 아름다운 추억들도 많이 늙어 가고 있겠지... 

 문복대를 향한 느린 걸음을 평탄한 오름길에 실어 놓은 채 823봉을 지나고, 작은 내림으로 문봉재(방곡면/호박골)를 지난다.(09:00)  30여분의 1020봉을 향한 지루한 오름길을 오르면서 함께한 산케 친구의 인생 설계에서 새로운 각오를 접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50 평생 동안 결코 짧지만은 않을 나이에 그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통들을 이 깊고 큰 산중에 훌훌 털어버리고, 버리지 못할 세속의 인연들을 마주할 때는 가벼운 맘으로 스스로를 믿고 뜻한 바를 일구어 내리라 믿는다. 

 1020봉을 올라선 후(09:30) 식사 후 익숙지 않은 오름길에 다소 벌어지는 행렬 속에서 문복대까지의 작은 오르내림이 30여분 더해진다. 앞뒤가 끊어진 안갯속에서 홀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사위가 감싸주는 포근함을 느끼며 편한 발걸음을 걸어간다. 이상하리만큼 발바닥이 편한 게 기분이 좋다. 이런 기분 대간 길 이후 처음이다. 며칠 전 발바닥이 점점 붉어지며 핏기가 돌아오고 부드러움은 느꼈다. 산행 선배의 말씀이 떠오른다."신발이 발전하면 발이 퇴화된다.."라고... 나도 맨발 산행을 시도해 볼거나.. 인간이 시도할 수 있는 그 자유를 위한 몸부림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결국 자유란 그것이 마지막 찾아낼 목표가 아니라 , 내가 걸어가는 이 발걸음의 실천 과정에 불과할지도.... 

문복대 정상

5월 28일_일_10:00

 계획된 시간대로 문복대 정상에 올라서니 선두조가 기다리며 휴식을 인계한다. 이제 남은 시간 1시간 정도 20번의 대간 길 구간 중에서 가장 편하고 짧은 구간답게, 자꾸만 안갯속에 묻혀 지나온 황장산 쪽을 되돌아본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바나나 껍질을 벗겨 지루함을 달랜다. 조금씩 벗겨지는 안갯속에서 멀리 소백산 쪽 시루봉이 슬쩍슬쩍 봉우리를 보여준다. 정상 이름치고는 참 서민적인 느낌이다.. 운수봉이라는 이름보다는 쉽게 다가오는 이곳에서 어느 영혼이 남겨 놓은 복덩이라도 하나 챙겨갈 수 있기를... 

 10분 정도 휴식 후 옥녀봉(1077) 언저리를 돌아 꽤 비탈진 내림길을 밟아 내린다. 30분 남짓 지루한 내림길을 밟아 내리니 관광 목장을 통해서 저수령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만난다. (저수재, 10:30) 오른쪽 능선을 다시 올라서서 마지막 작은 구릉 같은 봉우리를 지나니 온통 주변이 푸르다 못해 검어질 지경으로 침엽수 계획 조림을 앞세우며 비 온 뒤의 신록으로 다가온다. 지나온 길이 더더욱 아쉬어지며 문경 쪽 석황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걸음을 늦춘다. 남은 6개월의 장정을 이처럼 맑게 이어가라고 빌며...  


“형님, 민족통일을 도모하고, 전체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순간적인 시대적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앉아서 기다린다고 인민들의 자유를 누가 가져다준답니까? 투쟁하고 뺏어야죠. 그러려면 모질게 다잡은 맘으로 수령님을 중심으로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
 K노인은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흘러나오는 사상적 정치적 언변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공산혁명의 전쟁 속에서 사라진 첫 아내와 인고의 삶을 살다 간 어머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또한 그들이 잠시 접어야 한다는 자유와, 내가 원하는 자유와 내가 디뎌야 할 자유로움은 이렇게 다른 것인가.. 그러한 자유들의 대립이 불러온 전쟁이란 말인가.. 그런 자유를 위해.. 젊다 못해 어린 학생들의 목숨으로 바꾼 올봄의 자유란 또 어떤 것인가.. 그가 내뱉는 광신적인 수령님에 의존하여 민족의 현실을 뒤바꿀 혁명을 위하여 과연 이 땅의 어떤 계급적인 일부가 희생되고 그들의 자유는 유린되고 반자유의 이념 속으로 묻혀 가야만 하는 것일까.. 소위 이성적인 자기를 발견하며 사회적 평등에의 신념으로 잘 살아 보자고 외쳐온, 압제에 대한 저항의 결과는 내가 바라는 자유를 실현시키기엔 요원한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혁명을 위한 전쟁도 실패한 마당에...
 “돌아가시게.. 온통 힘든 일 밖에 없었던 지난날이네.. 나나.. 저 사람이나...”
 숨죽인 듯이 조용한 가게 쪽 작은 미닫이를 향하며 K노인이 내뱉을 수 있는 한마디였다. 
 “어차피..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인 줄은.. 잘 아시겠지.. 나는 혁명도 모르고.. 인민도 모르고.. 더구나, 이젠 정치를 떠나려 하네... 어디 시골로 가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면서 농사를 짓고 싶은 심정이라네.. 그래.. 도피라 해도 좋고.. 아무튼 지치고 피곤하다네.. 지난여름에 떠나야 했는데.. 저 사람이 왜 그리 떠나길 싫어하는지... “
그랬다. K노인으로서는 그가 원하는 자유가 목표도 아니고, 아무런 제약 없는 가운데 스스로의 삶이 자유스러워 지길 원했던 것뿐이다. 그에겐 전체니 민족이니 그렇게 뚜렷한 목표로서의 자유가 심어질 수 없는 소박한 바램이었다. 단지  다가온 운명적인 아내와의 만남도 느닷없이 나타난 그녀의 첫 남편으로 인하여 상처받을 수는 없다고 매우 조심스런 다짐을 해가며, 결연한 의지로 원치 않는 방문객의 자취가 말끔히 사라져야 한다고 내비쳤다.
저수령에서

5월 28일_일_11:10

 문복대 정상에서 1시간 남짓의 편한 걸음으로 저수령 신작로에 내려서니 아직도 따사로운 햇볕은 구름 속에 머물고, 단양골 죽령천에서의 거풍이 꽤 추울 것 같다. 잘 정비된 신작로와 휴게소 시설이 꽤 높은 고갯길(850)을 편리하게 이루고 있고 멋스런 치장들로 화려하다. 다만 , 고개 표지석이 너무 크고 경북 도명이 너무 촌스럽게 큰 것이 흠이다. 분명 이고개는 충북 단양과 경북예천을 이어주는 경계인데.. 함께 두 도명을 써넣었으면 예산을 쪼개기가 힘들 것인가...

 한심스런 이 땅의 좁쌀 행정을 보는 느낌이다. 

 부디 내가 밟아 나갈 수많은 경계 금들이 물가르는 분수령으로만 남아 훌훌 넘나드는 영혼들의 넋을 아프게 하는 앞날은 없어지기를.. 모든 벽들을 허물고 가름을 없애고.. 오늘따라 지방 선거용 확성기가 밝은 노래만 흘려보내기를.. 

 가파른 고갯길을 돌아내려 단양 땅 대강면을 흐르는 죽령천에서 땀을 씻고 닭죽으로 보신한다.. 다음 구간의 촛대봉과 시루봉을 쳐다보면서 마음은 벌써 죽령으로 훨훨 나른다... 


2006.5.29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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