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by 팔뚝투쟁

나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단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체제에 내재한 본질적인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체제는 최소한 5천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전 세계의 모든 ‘위대한 문명들’과 문화들을 관통하며 조직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되지 않으며(Waring 1988),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남성도 이제까지는 여성이 주로 감수해왔던 노동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관계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노동조합도 없고, 단체 협상도 없고, 제대로 된 계약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는 것, 잘 보이지 않는, ‘지하 경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노동관계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강제, 즉 순전히 필요성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이 체제의 비밀이다. 폭력은 비단 여성의 노동과 몸을 착취할 때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가사와 여성구타에 대한 담론에서 분명해졌다. 폭력은 유럽의 초기 자본가가 외국 영토를 정복하고 복속시키고 식민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런 식민화가 없었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아메리카의 영토와 사람에 대한 약탈과 강탈이 없었다면, 근대의 노예제가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순조롭게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식민지’의 다른 많은 여성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정주부화의 국제성은 여성의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여성을 국제적인 싸구려 노동력으로 ‘조립’하려는 이론적 수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