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닫는 속도

마음이 다음 계절로 건너가기 전에

by 온마음실험실








마음을 과학의 시선으로

다정히 바라보며

공감과 위로의 글을

이어갑니다.






연말이 되면 마음이 먼저 느려진다. 달력은 끝을 향해 가는데, 마음은 아직 몇 장을 더 넘기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느낌에 가깝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지나오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마음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처럼 느껴진다.





이맘때면 괜히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게 된다. 놓친 것은 없었는지, 너무 흘려보낸 것은 아니었는지. 꼭 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마음이 스스로에게 확인을 구하는 과정에 가깝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 있다는 신호처럼 말이다.





몸은 시간을 비교적 정확하게 통과한다. 그러나 마음은 늘 조금 늦다. 마음은 일정이나 숫자보다, 그 시간을 어떤 감정으로 건너왔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날보다, 조용히 애썼던 시간들이 연말에 더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지난해 이맘때를 떠올리면, 마음의 속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때의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고, 열흘 가까이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루의 기준은 회복과 검사, 그리고 기도하며 견디던 기다림이었다. 연말이라는 감각조차 흐릿했고,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 전부인 시간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마음의 속도를 살피고, 문장을 고르고 있다.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지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변화에 가깝다.





올해를 돌아보면, 마음에 남은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열심히 도전하며 성취한 멋진 결과들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조금 더 믿게 된 시간들도 함께 따라왔다.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풀어지던 좋은 분들을 만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도 여러 번 이어졌다. 그 장면들은 겉으로 보기엔 크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은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이 한 해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마음까지 함께 남아 있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연말의 정리는 꼭 평가일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지나왔고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가만히 살펴보는 일에 더 가깝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드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애써 만들어낸 다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감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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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대단한 깨달음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프지 않은 오늘,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간, 다시 일상의 리듬 안에 서 있다는 사실 같은 것들에서 차분히 자라난다. 병실에서 하루를 건너던 시간 속에서 붙잡았던 마음이, 이제는 일상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말에 마음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멈춤은 끝이라기보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의 속도 조절에 가깝다. 마음은 충분히 돌아보아야 다음 계절로 건너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듯하다.





모든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도 괜찮다. 다 설명하지 못한 시간과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남아 있는 여백까지 포함해서 지금의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시간을 통과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곧 새로운 해가 온다. 완벽하게 준비된 마음이 아니라, 조금은 덜 정리된 마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기도하며 견디던 시간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 있는 지금까지 이어진 이 흐름 위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다음 계절을 향해 방향을 튼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변화이고, 회복이며, 깊은 감사이다.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하루가 만나, 변화와 회복을 지나 깊은 감사에 닿는다. - 온마음실험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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