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한뼘소설(의경1기 동기들과)
그제는 대한민국 의무경찰 1기 동기 다섯과 차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등 60대 중후반의 중늙은이들이 서의경네 전원주택에 모였어요. 우리는 43년 전, 의경 때 있었던 일들과 10년 후 미래에 대해 가볍게 대화를 했지요. 그런데 나는 자꾸 개울에 눈이 갑디다. 왜냐구요?
정선생님, 그냥 가볍게 읽어 주세요!
휴우~!
내가 살고 있던 시골마을 이웃집에 길수 형이 있었는데, 가난한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어요.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형편이 어려워 한 해 늦게 국민학교에 들어갔지요. 그때 길수형은 소꼴도 베고, 나무도 해서 집안 일을 도왔어요. 길수 형 이름은 형의 할아버지인 옥동 양반이 지어주셨다고 했어요. 옥동양반은 마을어른들의 노름방에서 개평을 뜯고, 술심부름도 하는.. 아무튼 아이들 죽음이 흔했던 그 시절에 오래 살라고, 길수라고 지었대요.
그 때는 그런 이름이 아주 흔했어요.
"죽지 말고 붙들어라"고 "붙들이"..
"목숨을 붙잡아"라고 붙잡이..
"개똥이", "바우", "금동", "만석", "끝자"..
물론 호적에 이름을 올릴 때는 부돌, 부자, 길수, 판돌이, 대암, 말자...
그런데도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이들은 너드렁에서 애장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정선생님도 같은 시대를 걸어 오셨으니 이해가 되시죠?
아무튼 내가 열 살 먹었을 그 때쯤..
지금처럼 봄이 막 시작되고 있었어요.
산에는 진달래가 핏빛을 토하고, 보릿고개를 견디느라 칡과 쑥을 캐먹을 즈음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은 가을걷이한 곡식이 이른 봄에 똑 떨어지면, 장리쌀(봄에 부잣집에서 한 섬을 빌리면 가을에 두 섬을 갚아야 해요.)로 목숨을 부지하는데.. 쑥이 나면 사람들은 굶어 죽는 것을 면할 수 있어요. 아무튼 그래서 영양실조로 배만 톡 튀어 나왔지요.
그런데 길수 형이 자꾸만 힘들어하는 거에요.
"수야, 내 몸이 쫌 이상하다."
길수형은 가끔 열이 나고, 숨이 차면서 자주 앉아서 쉬었어요. 나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봄이면 으레 몸살을 앓기도 했으니까요.
"길수 성가! 괴안나? 오데 아푼 거는 아이제?"
나는 걱정스럽게 형을 바라보았어요.
그 즈음부터 형은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뱀굴을 파서 겨울잠을 자던 뱀을 잡고, 돌을 뒤져서 개구리도 잡았어요.
"당골네(우리동네 무당)가 이거 묵어야 낫는다 카더라."
경칩이 지나고 나서는 형은 더 많은 개구리와 뱀을 잡아 먹었어요. 처음에는 기력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때 형은 겨우 열 두살이었어요!
그날은 진달래 꽃을 한입 가득 따서 먹어서 붉은 입술이 더 처연한 길수 형과 너드랑에 앉았어요. 옆에는 애장무더기가 줄을 지어서 있는데, 더러 무너진 것도 보였죠.
"말수야, 나는 죽기 싫다. 애장에 들어가기 싫다. 나는 우짜모 좋노?"
"성가! 아재한테 부산에 있는 병원에 데려가 달라 캐라."
"우리집에 병원 갈 돈이 오데 있노?"
그날 이후 형은 더 힘들어 했어요. 걸음이 느려지고, 숨이 가빠지고, 말수가 줄었지요. 그러다가 길수 형은 자리에 눕고 말았어요.
귀동양반(길수형 아부지)은 옥수 어르신한테 빚을 얻어 결국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기로 했대요.
아침밥을 먹고, 버스가 들어오는 읍내까지,
나는 리어카에 형을 태우고 끌었어요. 봄비가 내린 길은 질척거렸고, 리어카 바퀴는 자꾸 빠졌어요. 원래는 지게를 지고 다닐 정도의 오솔길이었는데, 새마을운동으로 리어카길이 된 거에요.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리어카를 끌면서 길수형에게 소리쳤어요.
"성가, 부산 병원만 갔다 오면 괜찮을 끼다. 의사 선생님이 다 낫게 해 주신다꼬 하신다 카더라."
형은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지요.
"알아 묵었나? 성가는 살 수 있다. 알겄나?"
내가 잠시 리어카를 세우고 길수형을 바라보자, 형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어요.
"말수야… 아이다. 옆집 숙이도 죽었고, 바우도 죽었다 아이가. 죽는 기… 조금 무섭기는 한데…"
형은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 봤어요.
"그래도 괴안다. 사람은 다 죽는 기다. 나는… 조금 빨리 가는 거 뿐인기라."
옆에 있던 귀동아지매(길수형 엄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돌아서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구요.
읍내에서 버스에 겨우 태워 보내고 집으로 오는데, 빈 리어카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 병원에서는 고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나 봐요. 병원에서 돌아온 길수형은 방에 누워만 있었어요. 몸은 부지깽이처럼 야위었고, 몸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어요. 나는 개구리를 잡아서 푹 고아서 형에게 갖다 주었는데, 한모금 삼키다가 토하고 말았지요. 그래도 나는 자꾸만 그 국물만이 형을 살릴 거라고 생각해서 개구리 국물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게 내가 형에게 할 수 있는 전부였거든요.
봄이 깊어졌어요. 그날은 봄꽃이 사방에 더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어요.
그날, 길수 형은 떠났는 걸요.
귀동양반(길수 형 아버지)는 가마니 거적에 형을 감싸고, 지게에 얹었어요.
"성가, 오데 가노?"
내가 지게를 붙잡는데, 아재는 나를 떼어 놓고 지게를 지고 너드랑으로 갔어요. 너드랑에 작은 무덤을 만들었는데, 아재가 손재주가 좋아서 아주 예쁘게 잘 만들었어요. 자그마한 것이 꼭 길수형을 닮았어요!
그 뒤로 나는 친구들과 소를 먹이러 갈 때마다 그곳에 갔지요. 그리고 애장 옆 돌무더기에 오도마니 앉아 한참을 있다 오곤 했어요.
"길수 성가, 잘 있나?"
내가 소리를 지르면, 바람이 "그래!" 대답했구요.
때맞춰 꽃잎도 떨어졌어요.
차를 좋아하는 정선생님!
나는 가끔 생각하고 있어요. 자연에서 났으니, 자연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구요. 어떤 차는 그냥 그대로인 길수형 같은 백차가 되기도 하구요. 우리같이 햇볕과 바람에 조금씩 익어가는 녹차, 청차가 되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가끔 이름나서 향기가 가득한 홍차나 흑차같은 사람들도 있구요.
차에 대해 문외한이니, 모른다고 타박하지는 마세요. 지금도 그냥 나는 가끔 하늘을 보며 물어요.
"길수 성가, 오데 갔노? 나도 쪼매이 있으모 갈 낀데, 그때 우리 다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자!"
정선생님!
다음에 만나면 차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제 만나서 반가웠고, 참 즐거웠어요!
ㅎㅎ..
(2026. 3. 마지막날,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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