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버림받은 존재들을 위한 포옹

by 에스겔

인간은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우리의 세상에 태어남 자체가 버려짐이다. 그 자체가 고통이다. 생경한 세상에 아무것도 모른 체 태어남 자체가 버림받음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쟁이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공포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기고 살아가야 할 우리는 참으로 힘겨운 생을 사는 존재다. 버림받은 세상에서 우리는 한 없이 외로운 존재다. 우리를 이해하고 안아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렇게 버려진 세상에서 우리를 안아주어야 할 부모도 완전하지 못하다. 부모지만 부모의 역할을 못한다. 태초에 완전한 인간은 그렇지 않았지만 타락하여 그 기능이 망가진 인간은 부모라도 자식에게 온전한 부모일 수 없다. 인생의 가장 따뜻해야 할 순간에 우리를 품어줄 존재는 없다. 부모도 그들 스스로 버려진 존재들이다. 그 버려져 결핍된 존재들이 어떻게 다른 존재를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존재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사랑과 우정의 관계에 있는 친구들이다. 누군가는 신에게 한 고백의 시가에서 내 부모도 나를 버렸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팠다고 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자기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해야 할 다른 이들의 속마음을 보는 순간 우리는 칼에 베이듯 심장에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를 입고 자신도 방어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원래 그런 세상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킨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인해 다른 이의 마음을 죽인다. 자신의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입힌다. 어떤 이는 자신의 상처를 인해 소년을 죽이고 자신의 상함을 인해 아이를 죽이고 그것을 자랑하는 시를 읊었다. 세상은 그런 자들이 꼭대기로 올라가며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우리에겐 양심과 사랑이 존재하지만 극단적 이게도 우리는 동시에 악마의 새끼다.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포악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공멸의 길을 간다. 비루하고 처참한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완전한 존재를 만나 완전한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돌아와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에베소에서 가르쳤다. 그의 유일한 가르침의 말은 목수의 아들 나사렛 사람 그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였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감싸는 그의 포옹을 받고 우리도 다른 이의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주는 포옹을 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품어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가시나무새'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 안에는 온갖 어둠이 있어 그것이 가시가 되어 상대를 찌른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 찌른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 같은 처지라는 것을 느끼고 공감하며 서로 병든 육신과 마음을 안아주는 것이다. 서로서로의 가시를 보며 상처 입지 않고 그냥 "너도 너의 가시를 어쩔 수 없었어. 괜찮아. 나도 가시투성이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시투성이인 우리가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서로를 안아가는 방법을 배워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런 포옹의 책이다. 뭔가 대단한 지식이나 치료의 기법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버림받고 상처 입은 자들을 위한 포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