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야구장은 의정부 종합운동장 왼쪽 끝자락에 있었다. 은회색 혼다 스쿠터 PCX 125를 야구장 뒤편 주차장에 세워 두고 올라갔다. 야구장 입구에는 컨테이너 건물 한 채가 있었다. 심판, 기록원이 대기하는 곳인 듯했다. 야구장은 좌우에 커다란 학의 날개처럼 그물 보호 망이 펼쳐져 있었다. 3루쪽 뒤편에 교회 야구팀인 ‘지저스’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보였다. 5~6명이 모여서 가벼운 동작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창우가 보이지 않아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혹시 민준혁씨 아니세요?” ‘지저스’ 유니폼을 입은 30대 중반의 남자가 다가 왔는데 감독이라고 했다. 감독이 선수들 모여 있는 데로 가서 준혁을 인사시켜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늦게 도착한 창우를 끝으로 경기 참가 예정 선수들이 다 모였다. 12명이었는데 2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50살 넘은 나이에도 야구를 하다니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캐치볼이 시작되었고 준혁은 창우와 짝이 되었다. 창우는 힘을 빼고 던지는 것 같은데도 볼이 강하게 들어왔다. 공 끝이 꿈틀거리듯 날아 오는 바람에 움찔하기도 했다. 반면 준혁은 창우 글러브에 공을 제대로 보내는 것 조차도 힘들었다. 공이 옆으로 빠지고 위로 솟구치고 들쑥날쑥 했다. 어쩌다 가운데로 정확하게 들어가는 공은 힘이 없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니까 강하게 들어갈 리가 없었다. 한번은 의식적으로 힘을 주고 던졌는데 공이 강하게 날아가는 듯했다. 창우 글러브에 꽂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창우가 “오, 공 좋아!” 라며 외쳤다.
상대팀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고 지저스팀 선수들은 수비 위치로 들어갔다. 준혁은 덕아웃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지저스팀 투수의 공이 엄청 빨랐다. 첫 타자는 삼진 아웃, 다음 타자 3루수 송구실책으로 주자 1루가 되었다. 갑자기 투수가 흔들리면서 볼넷, 도루, 안타로 2실점 했다. 이후 야수들의 호수비로 추가 실점없이 1회 수비를 끝냈다.
1회말 공격에서 창우의 큼지막한 2루타를 비롯해 볼넷, 도루, 안타 등으로 5대2로 역전시켰다. 2회부터 타격전 양상이 이루지면서 12대9로 리드한 채 마지막 5회 지저스팀 수비에 들어갔다. 투수는 50대로 보이는 선수로 바뀌었다.
다른 선수로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온 김성진이라는 선수가 준혁의 옆 자리로 와서 앉았다.
“수고했습니다. 수비 좋으시던데요.” 준혁이 먼저 말을 붙였다. 김성진은 유격수로 어려운 타구를 2번이나 잘 잡아 아웃시켰다.
“아이 별거 아닙니다. 다음 경기부터는 같이 뛰셔야죠.”
“아직 초보라 잘할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지금 던지는 투수 말입니다. 그 전 투수보다 공이 안 빨라 보이는데 잘 막아내겠죠?”
“아, 흥준 형님요. 나이가 있어 스피드는 잘 안 나오지만 볼 끝이 좋고 제구가 좋아요. 변화구도 잘 들어가고 타자 앞에서 공의 변화가 심해서 땅볼 타구가 많은 편입니다.”
박흥준이 유격수 앞 땅볼, 투수 앞 땅볼, 마지막 타자는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지저스팀 선수들은 악수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눠 가졌다. 경기 후 준혁은 창우와 함께 주차장으로 걸어 가는데 감독이 따라붙었다.
“준혁씨. 오늘 경기 보니까 어때요?”
“다들 너무 잘 하시던데요. 전 언제 그리 되나 싶습니다.”
“하려는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금방 따라 올 겁니다. 체격도 좋고 운동신경도 있는 것 같으니까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저희 팀 경기 2주 뒤에 있는데 그때 데뷔한다고 생각하세요.”
창우와 주말에 연습을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서울로 가는 혼다 스쿠터의 핸들을 쥐는 준혁의 손은 가벼웠다. 야구를 하게 된다는 뿌듯함에 차가운 맞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는 것이 준혁을 들뜨게 했다. 몇 년 동안 숨죽여 왔던 승부욕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은광고는 운동장이 일반 고등학교보다 훨씬 컸다. 교내 야구동아리가 있어서 그런지 주말엔 야구연습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준혁과 창우는 운동장 구석 등나무 벤치에 짐을 풀고 스트레칭 후 캐치볼을 시작했다. 준혁이 던지는 공은 역시 제구가 되지 않았다. 공을 던질 때 미리 놓거나 늦게 놓아서 가운데로 오지 않는 거라고 창우가 지적했다. 공을 던질 때 눈 앞에서 공을 놓으라고 했다. 창우 말 대로 계속 하다 보니 처음보다 많이 좋아진 듯했다. 30분 정도 캐치볼 후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두 명이 합류했다. 저번 경기에서 얘기 나눴던 김성진과 투수를 봤던 박흥준이었다.
내야 펑고 연습이 시작되었다. 성진이 배트로 땅볼을 쳐주면 차례대로 준혁, 창우가 받아서 흥준한테 송구했다. 준혁은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은 쉽게 잡아서 정확하게 송구했다. 점차 공이 옆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면서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 창우는 부드럽게 공을 캐치하고는 리듬감 있게 송구를 했다. 옆으로 가는 공도 빠른 스탭으로 놓치질 않았다.
멀리 공중으로 뜬 공을 쳐주면 외야에 위치한 선수가 잡아내는 외야 펑고가 이어졌다. 외야 펑고는 공이 떨어지는 낙구 지점 포착이 어려웠다. 앞으로 떨어지는 거 같아서 달려 나가면 공이 머리 위로 지나쳐버렸다. 짧게 뜬 공도 잡으러 뛰어가면 공이 좌우로 흔들려서 잡기 힘들었다. 결국 준혁은 하나도 잡지 못했다. 땀을 많이 흘렸지만 자책 때문에 갈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준혁씨 신입 치고는 잘하던데? 외야에서 송구할 때 공이 빨랫줄처럼 날아오는 게 투수해도 되겠어요." 흥준이 조그만 희망을 주었다.
다시 지저스팀 경기가 열렸고, 준혁은 집결 시간인 2시 좀 넘어서 야구장에 도착했다.
그동안 틈틈이 인터넷으로 투구 폼, 수비 자세, 타격방법 등에 대한 글이나 동영상을 보며 공부했다. 방이나 집 앞 놀이터에서 동작을 따라 했고 공을 들고 다니며 감각을 익혔다. 자기 전에 머릿속에서 동작을 그려보는 이미지 트레이닝도 반복했다. 한마디로 과외 시간 빼고는 일주일 내내 야구만 생각했다. 은광고 연습때보다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한편으로 실전 훈련을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도 동시에 다가왔다.
야구장으로 들어서자 선수들이 야구장안에서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직전 경기가 콜드게임으로 끝나는 바람에 야구장이 일찍 비었던 것이었다. 준혁은 얼른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야구장안으로 들어갔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꾸벅 하고 캐치볼을 시작했다. 전보다는 공이 정확하고 힘있게 들어가는 것 같았다. 캐치볼 후 내야 펑고 연습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흙 운동장이 아니고 잔디라서 그런지 펑고를 거의 다 잡아냈다. 느낌이 좋았다.
준혁은 대기 선수로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는 타격전으로 흘러 2회가 끝났는데 1시간이나 지났다. 지저스팀이 14대11로 이기고 있는 3회말 수비를 앞두고 감독이 준혁을 불렀다.
“이번 수비에 2루수로 나갑시다. 2루는 수비에 부담이 덜한 자리니까. 가능하겠죠?”
준혁의 답을 듣지도 않고 감독은 심판에게 선수 교체를 통보했다. 준혁은 2루 수비 위치로 들어 갔고 상대팀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 타자는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이 되었고 두 번째 타자는 볼 넷을 얻었다.
다음 타자 초구에서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다. 준혁은 포수가 던져 주는 견제구를 받아 주자를 잡으려고 2루 베이스로 쇄도했다. 공이 원 바운드로 와서 겨우 잡았지만 주자 터치에 실패해서 주자는 세이프 되었다. 준혁은 자신의 터치가 늦어 주자를 살려준 거 같아 아쉬워했다.
다음 타자가 친 공이 땅볼로 빠르게 바운드되면서 준혁 쪽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급정지한 것처럼 공이 멈췄다가 다시 훅 다가왔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며 몸이 굳기 시작했다. 땅볼에 글러브를 갖다 댔으나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글러브에 닿는 느낌도 없었다.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던 것이었다. 실책이었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홈까지 달려 1점을 주고 말았다. 14대 12.
다시 1루 주자는 도루를 성공했고 다음 타자 볼 넷, 2루타로 1실점해서 14대 13. 상대팀은 기세를 몰아 역전을 할 분위기였다. 주자는 2루와 3루. 다음 타자가 친 공이 땅볼로 힘없이 2루쪽으로 굴러왔다. 준혁은 앞으로 달려나가 재빨리 공을 잡고는 1루에 던졌다.
아차! 던진 순간 공이 빗나간 것을 알았다. 공은 1루수 옆으로 멀리 비껴갔고 타자는 세이프 되었다. 빠진 공이 외야까지 굴러가는 바람에 2,3루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왔다. 준혁의 송구 실책으로 2실점하며 14대15로 역전되었다. 이어진 4회 지저스팀 공격에서 타선이 터져 20대 17로 지저스팀이 승리를 거뒀다.
준혁의 첫 번째 경기 결과물은 실책 2개였다. 마지막 회에 팀 타선이 안 터졌으면 역전패 주역으로 몰릴 뻔했다. 팀원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자책을 넘어 그런 플레이를 한 자신에 대해 분노까지 일었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팀원들 사이를 도망 치듯이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