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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Sep 08. 2024

나비처럼 날아서 -5

5.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준혁은 며칠 동안 자책과 분노로 잠을 설쳤다. 잠자리에 들어도 실책 장면이 아른거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볼을 빠뜨리고 송구가 빗나가 당황했던 장면들이 반복 동영상처럼 재생되었다. 연습할 때는 글러브에 공이 잘 들어왔는데 왜 그랬을까? 집중력이 부족했나? 아니면 자세가 잘못되었나?

심지어 목사님 설교하는 중에도 그 장면이 맴돌았다.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 집착하는 지 되돌아봤다. 경기하다 보면 잘할 때도 실수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실책이 반복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실수하지 않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부족이 근원적인 이유였던 것이었다. 

검사의 꿈을 접은 것도 다음 시험에는 합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였다. 오대산 암자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도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졌고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두려웠다. 야구를 통해 패배의 아픔을 다시 겪을 까봐 불안했다. 실패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지 않았기에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게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은광고에서 같이 훈련했던 김성진에게 전화를 했다. 김성진은 처음엔 다 그렇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위로를 했다. 계속 준혁이 난감해하자 박흥준과 같이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약속장소인 수유리 프랜차이즈 치킨 집은 깔끔한 외양의 2층 단독 건물이었다. 맥주는 시원하게 목을 적셨고 치킨은 적당히 매콤하고 맛있었다. 자리가 편하다 보니 빠른 속도로 술잔이 비워졌다. 마음이 열리는 속도보다 더 빨리 얼굴이 빨개졌다. 

“흥준 형님은 어쩌다 야구를 하게 됐어요? 그 나이 되시면 다들 골프 하지 않나요?” 준혁이 먹태구이를 찢어서 입에 넣으면서 물었다. 

“골프도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야구만큼 열심히 하진 않지. 땀 흘리기엔 야구가 훨씬 나아. 야구는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했었지. 프로 야구도 되게 좋아했고. 실제로 한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몇 년 전 친한 후배가 재미있다고 꼬시더라고. 야구 시합 장면을 설명해주는데 거기에 훅 가버렸지. 

생애 첫 안타 쳤을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해. 안타 치고 나가 도루로 2루 베이스 밟는데 진짜 짜릿하더라. 2루 베이스는 운동장의 중심부에 있잖아. 그 위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 다리도 후들거리고, 가슴은 또 왜 그렇게 꿍꽝대던지. 2002년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바로 그 느낌이었어.” 흥준은 기분이 좋은 지 동작을 곁들어가며 말을 했다. 

“저도 처음으로 2루타 쳤을 때 그랬습니다. 배트 중심에 제대로 맞았는데 배트와 공이 하나가 되는 그 느낌. 공이 배트에 붙었다가 하늘로 날아가는데 미사일 같다고 해야 되나.” 성진이 말을 끝내고는 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번 경기 너무 자책하지마. 실수할 때도 있는 거지. 데뷔전 치고는 선방한 거야.” 

“운동신경은 있다 생각했는데 야구할 때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것 같습니다. 1루수에게 정확히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공이 옆으로 빠져버리고.”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어도 연습을 안 하면 소용없어. 무조건 연습이지. 사회생활과 달리 운동은 정직해.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잖아.” 흥준이 말을 받았고 성진의 말이 뒤따랐다.  

“흥준 형님은 주말에 은광고에서 두 시간씩 연습해. 거기다 따로 코치한테 레슨도 받고.”

“레슨요? 야구도 골프처럼 레슨을 한다고요?” 준혁은 깜짝 놀라며 그게 뭔가 싶었다.

“그럼. 야구도 골프와 비슷해. 보통 선수출신 코치가 운영을 하는데,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알려 주기 때문에 도움 많이 돼. 던지는 동작에서부터 수비할 때 자세, 타격 방법 등 다 가르쳐줘. 집 근처 레슨장 있나 알아보고 빨리 시작해.”

준혁은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맬 때 멀리서 인기척이 들리는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희망의 끈을 잡은 것 같았다. 레슨장에서 열심히 땀을 흘려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습해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화려하게 부활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려졌다.

과외생활을 하면서 현실에 안주해버린 자신을 돌아봤다. 편한 일상과 달콤한 돈의 유혹, 적당한 성취감을 떨쳐버릴 만한 동력이나 자극이 없었다. 그렇다고 과외를 평생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외로 먹고 사는 현재의 처지가 중년 때까지 계속될까 두려웠다. 그토록 원했던 검사라는 목표는 아무런 실행력 없이 막연한 꿈으로만 잔존했다. 

준혁에게는 새로운 길로 뛰어들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야구가 딱 맞아 떨어졌다. 거룩한 목표도 아닌 운동에 불과하지만 야구라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고 싶었다. 깊은 계곡을 벗어나 가파른 도약의 능선을 타리라 다짐했다. 

집에 가자마자 야구 레슨장을 검색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쌍문동 ‘M베이스볼’이 적당해 보였다. 홈페이지를 보니 코치가 준혁의 고등학교 2년 선배 야구부 출신이었다. 야구 명문대를 중퇴했고 고등학교 코치 경험도 있는 홍인기라는 사람이었다. 



목요일 저녁 7시 5분전, 레슨 첫 날이었다. 레슨장은 사무실 오른쪽에 짧은 철제 계단이, 아래에 50평 정도의 인조 잔디가 깔려 있었다. 벽 전면에 보호 그물이 쳐져 있었고 쇼핑용 카트에 공이 수북이 담겨있었다. 같이 레슨 받을 회원 5명이 먼저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잠시 후 홍인기 코치가 와서 강도 높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준혁은 운동신경이 좋고 유연해서 쉽게 따라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했다. 

스트레칭이 끝난 후 캐치볼 연습을 했다. 캐치볼 파트너는 야구 경험이 꽤 있는 것 같았다. 공이 가운데로 날아와 준혁의 글러브로 힘있게 들어왔다. 공 던지는 자세도 부드러웠다. 코치가 준혁 옆으로 와서 동작을 잠시 멈추라고 하였다. 

“민준혁 회원님은 공을 던질 때 어깨로만 던지고 팔꿈치나 손목을 사용하지 않으세요. 어깨로만 던지면 부상도 쉽게 당하거니와 공의 위력도 없습니다. 어깨로 덮듯이 밀어 던지지 말고 팔꿈치부터 먼저 나오면서 공을 뿌려야 돼요. 던질 때 손에 힘을 빼 보세요. 자연스럽게 팔꿈치가 먼저 나가고 손은 뒤에 나올 겁니다. 잘 보세요.” 코치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코치가 지적한 대로 의식적으로 팔꿈치를 먼저 앞으로 보낸다 생각하고 공을 던졌다. 신기하게도 공이 힘있게 날아가서는 상대 글러브에 세게 박혔다.

“그겁니다. 아까보다 훨씬 공이 빨라졌잖아요.”

손에 힘을 빼고 팔꿈치를 먼저 뻗는다는 생각을 하고 던졌다. 뇌에서 시키는 명령과 달리 간혹 예전처럼 어깨로만 공을 밀어 던지기도 했다. 몸이 알아서 그런 동작을 할 수 있도록 반복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공이 조금 빨라진 듯했지만 여전히 제구는 잘되지 않았다. 공이 상대 가슴 쪽으로 가지 않고 머리 위로, 허리 아래로, 옆으로 빠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상대는 공이 일정하게 내 가슴 쪽으로 오는데, 차이가 뭐지?’ 

캐치볼을 계속 하면서 자신과 상대의 투구 동작 차이를 찾기 시작했다. ‘눈’ 이었다. 상대는 공을 잡는 순간부터 마지막 던질 때까지 준혁에 대해 시선을 놓지 않았다. 눈의 방향에 따라 몸이 따라가는 신체의 메커니즘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탄착점, 즉 상대의 가슴에 시선을 고정시켜놓고 던지니까 정확하게 공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팔꿈치부터 나오는 동작이 되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동작들이 몸에서 익숙해지도록 수많은 반복 연습만이 길인 것 같았다. 

캐치볼이 끝난 후 코치가 치는 땅볼을 글러브로 받는, 내야 펑고 훈련이 이어졌다. 준혁은 좌, 우로 오는 땅볼을 청소기로 흡입하듯 글러브에 쏙쏙 집어넣었다. 캐치볼 할 때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나이스!”라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체력도 자신 있었기에 별로 지친 기색도 없이 마지막 타격훈련에 들어갔다. 코치가 가까이 앉아서 공을 띄워주면 배팅을 하는 토스 배팅이 시작되었다. 준혁은 토스해주는 공을 비교적 쉽게 배트 중심에 맞춰 냈다. 평소 동영상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것이 주효한 듯했다. 이번에도 코치는 타격 시 하체 이동이 덜 된다고 지적을 했다. 

“타격은 팔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체를 충분히 회전시켜주면서 상체는 따라 나오듯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이 멀리 나갑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임팩트 시점에 하체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해요.”

타격 훈련의 마지막은 라이브 배팅이었다. 코치가 5미터 앞에서 투수처럼 공을 던져주면 타격을 하는 훈련이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타격박스에 들어가서 타격을 했다. 하체 이동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코치 위쪽으로 뻗어가는 안타성 타구가 몇 개 나왔다. 첫 레슨을 기분 좋게 끝낸 후 가벼운 마음으로 레슨장을 나섰다. 골목길로 걸어 나가는데 앞쪽에서 한 여자가 다가왔다. 

“혹시 레슨 다 끝나신 거죠?”

준혁과 비슷한 또래의 화사한 여자였는데 밝은 미소가 보기 좋았다. 키는 커서 170 가까이 되는 것 같았고 인상이 선해 보였다. 매력적이었다.

“아 네. 방금 끝났는데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며 옆을 지나쳤다. 준혁은 고개를 돌려 여자의 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향기로운 꽃 향기 몇 개가 긴 여운을 남겼다.

준혁은 아무리 바빠도 주2회 하는 야구 레슨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투구, 수비, 타격 메커니즘의 실전화를 위해 주말엔 은광고에서 땀 흘리며 반복 연습을 했다. 평상시에도 틈만 나면 동영상을 통해 이론을 배워 나갔다. 과외나 레슨이 없는 날 밤에는 어김없이 우이천으로 나갔다. 우이천길을 따라 1시간씩 달리기를 통해 하체 근력을 다졌다. 그렇게 2개월이 흘렀다. 과외 말고는 오로지 야구만이 전부였던 2개월이었다. 

레슨장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자는 더 이상 마주치지 않았다. 단 한마디 나눴을 뿐이었는데 그녀의 향기는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았다. 향기를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까만 머리칼의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밤 하늘만 보면 그녀가 떠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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