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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Sep 10. 2024

나비처럼 날아서 -7

7.

“7번 1루수 오기남, 8번 2루수 민준혁…”

지저스팀 감독이 경기 전 라인업을 발표했다. 준혁은 드디어 선발 출장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경기 좌절 이후 2개월 동안 시합은 빠지고 레슨장 훈련에 매진했었다. 오랜만에 하는 경기라 긴장은 되었지만 설레기도 했다. 열심히 훈련한 결과를 다른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경기는 지저스팀 수비로 시작되었다. 상대팀 첫 번째 타자가 친 공이 2루수 쪽으로 강하게 바운드되어 굴러왔다. 준혁은 가벼운 스텝으로 양 다리를 벌리고 무게중심을 낮춰 기마자세를 만들고는 안정적으로 포구했다. 상체를 세움과 동시에 글러브에서 공을 빼서 정확하고 강하게 1루로 송구했다. “아웃!” 1루수 뒤에 서 있던 심판이 외쳤다. 

준혁은 다른 선수들의 “나이스!” 소리를 들으며 글러브를 가다듬었다. 이후 볼넷, 도루, 안타로 주자 2루, 3루에 상대팀 4번 타자가 들어섰다. 초구에 “깡” 소리와 함께 공이 2루수 옆 빈 공간을 빠르게 헤집고 날아왔다. 공이 내야를 지나 외야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준혁의 상반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쭉 뻗은 글러브에 공이 빨려 들어갔다. 흡사 사자가 힘껏 도약해서 온몸을 쭉 펴 앞발로 아프리카 영양을 덮치는 것 같았다. 

공을 잡자마자 벌떡 일어나 2루 베이스로 들어오는 유격수에게 공을 던졌다. 유격수는 공을 잡고 2루 베이스를 찍으며 이미 3루로 스타트를 끊은 주자를 아웃시켰다. 순식간에 타자와 주자 두 명이 동시에 아웃 되는 더블 플레이가 완성되었다. 운동장은 지저스팀 선수들의 “와!” 하는 함성 소리가 뒤덮였다. 심판도, 상대팀 선수도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줬다. 준혁은 프로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수비를 해냈던 것이었다.

2회말 지저스팀 공격에서 기회가 왔다. 안타, 볼넷, 실책으로 주자가 가득 찬 만루 상황이었다. 타석에 들어서면서 수없이 익혔던 타격자세를 되뇄다. 처음 공은 옆으로 빠지는 볼이었고, 두번째는 정 가운데로 들어왔는데 긴장했는지 배트를 내밀지 못했다. 세번째 공도 가운데로 들어와 배트를 휘둘렀지만 포수 뒤로 넘어가는 파울이었다. 

레슨장에서 코치가 던져 주는 공은 일정하게 날아왔지만 시합은 달랐다. 날아오다가 약간씩 떨어지고 휘어지고 해서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 경험이 많지 않아 더 힘든 것 같았다. 

타이밍을 맞추려고 집중해서 투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네번째 공이 날아왔다. 약간 낮게 들어오는 스트라이크였다. 상체를 뒤로 약간 빼는 것과 동시에 왼쪽 발을 조금 들었다가 착지했다. 뒷다리에 무게중심을 둔 채 배트와 공이 왼쪽 발 근처에서 만나도록 타이밍을 맞췄다. 

“까앙!” 튼튼한 하체의 힘과 회전력이 뒷받침된 배트는 공을 멀리 내보냈다. 공은 운동장 가운데로 솟아올라 높고 긴 포물선을 그렸다. 멀리 중견수를 넘어 펜스까지 날아갔다. 주자들은 모두 홈으로 들어왔고 준혁은 여유롭게 2루 베이스를 밟았다. 함성으로 가득 찬 지저스팀 덕아웃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뻐했다. 

이후 수비에서 깔끔하게 땅볼과 플라이볼을 잡아냈고 타석에서도 안타 3개를 추가했다. 4안타, 7타점이었다. 준혁의 맹활약으로 지저스팀은 대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의 칭찬에 준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 

혼다 스쿠터에 앉은 준혁은 몸에 부딪히는 바람이 너무 달콤했다. 야구에 모든 걸 바쳤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했다. 비록 조그만 성취였지만 너무 기뻐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배트에 맞은 공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줄이 끊어진 방패연보다 더 빠르고 높이 하늘로 달아났다. 아름다웠다. 이제 손 맛을 알게 되었다. 공이 맞는 순간 공과 배트가 쫙 달라붙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수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이빙하여 공을 잡는 마치 글러브가 공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길가에 스쿠터를 정차한 후 홍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치를 레슨장에서 만나 근처 횟집으로 이동했다. 코치는 자리에 앉자마자 경기결과를 물었고, 준혁은 담담하게 활약을 이야기했다. 

“대단했네. 타석에서 긴장은 안됐어?”

“당연 긴장됐죠. 몸이 빨리 반응을 못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첫 번째 타석에서 운 좋게 안타가 나오는 바람에 절 풀린 거죠. 배트가 조금 늦게 나온 듯했는데 안타가 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긴장은커녕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던데요.”

“타이밍이 늦어도 하체 중심이동만 잘 되면 안타가 어렵지 않게 나와. 그 동안 하체 근력 운동과 중심이동 훈련을 많이 한 결과인 거지.”

코치와 처음 갖는 술자리였지만 어색함 없이 기분 좋게 술이 들어갔다. 커다란 둥근 접시에 옅은 회색 사선무늬의 두툼한 도다리 회가 나왔다. 회와 함께 잔을 비우고 있는데 코치 핸드폰이 울렸다. 상대방에게 횟집 약도를 알려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동생인데 레슨장으로 온다 길래 여기로 오라고 했어. 합석해도 괜찮지?”

“저야 상관없습니다. 동생이 있는 줄 몰랐네요.”

“여동생인데 대학 졸업하고 보험회사 다녀. 레슨장에 가끔 왔었는데 못 봤구나. 나 보다 두 살 어리니까 준혁이와 동갑이네. 친구 하면 되겠다.”

코치가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횟집 문을 열리며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시선이 그리로 가는 순간 준혁의 심장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횟집 안 모든 사물들은 정지되었고 오로지 그 여자만 또렷이 크게 보였다. 레슨장 앞에서 마주쳤던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때 실내 화장실 문을 닫고 코치가 나왔다. “오빠.” 코치는 고개를 돌려 웃고는 동생을 데리고 자리로 왔다. 머리칼은 여전히 밤하늘처럼 까맸으며 걸음걸이도 사뿐사뿐 아름다웠다. 촘촘한 체크 무늬 셔츠 위에 얇은 트렌치코트, 옅은 파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준혁이는 우리 레슨장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친군데 고등학교 후배야. 내 여동생 예쁘지?”

“예쁘긴 뭐가 예뻐 사람 무안하게. 홍미나라고 합니다. 이야기 나누는데 방해가 된 것 같네요.”

미나는 주량이 세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를 잘 맞춰주었다. 점점 술이 들어가자 준혁은 긴장이 풀어지며 본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법시험 실패와 과외생활, 야구를 통해 활력소를 찾게 된 과정을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한 번 떨어졌다고 포기하면 어떡해. 국내 최고대학까지 나왔다면서. 지금이라도 과외 관두고 다시 해보는 건 어떠냐?” 코치가 자기 일 마냥 안타까워했다. 

“말씀은 고마운데 아직은 생각할 겨를이 없네요. 근데 코치님은 어떤 계기로 레슨장을 하게 되신 거예요?” 어물쩍 화제를 돌렸다. 

“흔한 말로 어쩌다 보니 하게 된 거야. 야구만 하다 보니 다른 직업은 생각도 못했어. 대학 때 일찍 선수생활 관두고 입대했어. 전역하고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생활 잠시 했지. 인연이 안됐는지 학교 코치도 얼마 못하고 관두게 됐고, 그 뒤에 레슨장 시작한 거야.”

“오빠 예전에 야구 정말 잘했어. 동일고 주전으로 뛰다가 K대 야구부로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2학년 때 팔꿈치 부상만 안 당했어도 지금쯤 프로선수가 됐을 텐데 너무 안타까워. 야구부에서 나오자 홧김에 대학도 중퇴해버리고 말이야.”

“뭐가 안타까우냐? 지금 레슨장 사장도 하잖아. 그게 다 인생이지 뭐. 부상만 없었으면 프로에 진출해서 선수생활 더 오래할 수도 있었지만 후회는 안 해.”

“선수생활 관뒀을 때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저도 사법시험 실패했을 때 참담했는데, 무엇보다도 외로움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방안에 방치된 느낌이랄까?”

“맞아.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되었다는 것이 참기 힘들었던 것 같아. 같이 야구했던 친구들이 프로에서 좋은 성적 올리는 것 볼 때마다 더 했지. 안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초월했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참,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짝사랑했다는 여자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 대학교에 가서도 한동안 만났다고 했잖아.”

“아, 그 친구. 그냥 고등학교 동창이지 사랑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지금 그 얘기는 왜 꺼내냐?”

코치는 당황스러운 듯 얼굴이 빨개졌고 어색함을 감추려 담배 피우러 나갔다. 준혁은 미나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어색해졌다. 괜히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했다. 

“준혁아 우리 핸드폰 번호 교환할까?” 갑작스런 제안에 준혁은 놀라 미나를 쳐다보았다.



준혁과 미나는 카톡을 주고받으며 시나브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공감하는 부분도 비슷했고 서로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많아 가까워지는 데 막힘은 없었다. 첫번째 데이트 장소는 잠실 야구장이었다. 5월 마지막날 목요일 저녁 6시, 준혁은 1루쪽 매표소 앞에서 미나와 만나 치킨, 김밥, 캔맥주를 사 들고 들어갔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힘들게 좌석을 찾아 앉았다. 둘은 캔맥주부터 한 모금 들이켰다. 미나가 건너편 3루쪽 덕아웃을 가리켰다.

“아침부터 뉴스에서 난리 났던 데가 저기 맞지?”

“난리라니? 뭔 일 있었어? 오전부터 수업이 연이어 있어서 뉴스 볼 틈도 없었어.”

“새벽에 여기 잠실야구장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대. 바로 저기 3루 덕아웃에서 젊은 여자가 목을 매달았다는 거야. 충격적이지 않아?”

“진짜? 소름 돋는다. 어떻게 잠실야구장에서 목을 매달아 죽을 수 있어? 자살이야?”

“아직 모르는데, 자살에 가능성을 더 두는 것 같았어.” 

“사람이 죽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야구시합을 해도 되나?”

“현장 조사가 다 끝나서 그랬겠지. 나도 찜찜해서 내키지 않았는데 이미 약속한 거라 온 거야. 덕아웃에 앉아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안 무서울까?”

“무서워도 직업이니까 어쩌겠어. 근데 무슨 원한관계가 있어서 야구장에서 자살을 했을까?” 

“내가 괜히 말했나 봐. 그냥 야구나 집중해서 보자”

다시 맥주에 김밥과 치킨을 안주 삼아 야구 경기에 빠져 들었다. 안타 쳤을 때는 하이파이브를, 홈런이 터졌을 때는 부둥켜안으며 좋아했다. 남녀가 가까워지는데 야구장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았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었다.

둘은 거의 매일 소통하며 좋은 감정을 이어갔다. 자주는 못 만났지만 서로에게 좋은 이성친구로 자리를 잡았다. 6월말 수요일 오후. 준혁은 을지로입구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미나를 만났다. 미나 회사 부근이었다. 

“오늘은 좀 진지한 얘기할까 해.” 미나는 커피 잔을 돌려 놓고는 말을 이었다. “로스쿨에 관한 건데, 어제 우연히 로스쿨 관련 기사를 보게 됐어.”

“요즘 과외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나중에 애기하면 안 돼?” 어떤 말이 나올지 아는 듯 짜증을 냈다. 

“애기 좀 들어봐. 과외 그거 말이야 언제까지 계속 할 생각이야? 한 평생 직업으로 할 순 없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수입도 괜찮아서 당분간은 할 생각이야. 근데 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당분간이 아니라 평생 직업을 얘기하는 거야. 너 예전에 검사가 꿈이라고 하지 않았어? 대학도 법과대학 나왔고, 사법시험 준비도 열심히 해서 1차까지는 합격 했잖아.”

준혁은 양팔을 겨드랑에 끼워 넣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과외선생 보다 검사가 되어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너한테 더 어울려. 너 정도면 충분히 로스쿨에 들어 갈수 있어. 예전 오대산 암자에서 힘들게 공부했다며? 그 노력 반만이라도 하면 합격하는데 아무런 문제없지.”

“사실 검사의 꿈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야. 시험에 떨어진 후 복학, 졸업이 정신없이 이어지다 보니,”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 전역 후 잠시 과외하고 만다는 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뿐이야.”

“다시 도전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네. 로스쿨 가서 성적 좋으면 검사도 될 수 있다면서?”

“1년에 몇 명 안 뽑아서 경쟁이 치열하지만 안될 거야 없지.”

“바로 그거야. 로스쿨 가서 목표로 하는 검사, 꼭 도전해봐. 8월말, 그러니까 2개월 뒤에 법학적성시험, LEET 인가? 그거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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