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날에는 나를 위한 요리를 하자

요리-몰입-자신감 업그레이드의 선순환

by 윤영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요리는 내게 연중행사였는데 기억도 가물가물한 몇 해 전, 계란찜을 해서 동생과 사촌 동생에게 한 입씩 먹어보라고 했을 때 돌아왔던 말은 자기들이 실험 대상이 된 것 같다나 뭐라나. 큰 맘먹고 한 요리가 씁쓸한 평가를 받게 되자 더 요리로부터 멀어지게 된 경험이었다.


결혼 전에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너무 없는데, 이 상태로 결혼을 해도 될까?' 이런 마음을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하시는 말씀, "때가 되면 다 하게 돼. 너는 엄마 닮아서 잘할 거야."


결혼 후 두 해가 지났다. 엄마의 말에는 무슨 힘이 있었는지 어느새 나는 시켜 먹는 음식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하기 위해 가지나 버섯, 시금치, 콩나물 등 전에는 손질해 보지 않았던 식재료를 산다. 요리는커녕 먹는 것도 싫어하던 음식이었다. 이런 변화가 나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분명 원 가족도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사랑하는 존재들인데, 왜 결혼 후에 나는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내 공간(부엌)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내가 직접 재료를 사고 날짜가 지나거나 상하면 누구에게 묻지 않고 처분할 수 있는 재량. 요리에 따라서 쓰기 편한 도구를 선택할 수 있는 내 취향의 부엌은 요리를 하고 싶게 하는 요인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재료를 씻고, 다듬고, 삶고 굽는 모든 과정에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남편을 위해서 음식을 시작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는 일이다.'라고 한 것처럼.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부터 날씨가 좋지 않았다. 꿀꿀한 날씨처럼 마음도 가라앉아서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아서 뭔가 맛있는 것을 사 먹으면 괜찮아질까 하다가 토마토소스를 사서 집에 있는 재료로 라자냐를 만들었다. 라자냐는 넓은 면을 삶아 그 위에 라구 소스와 치즈를 겹겹이 쌓아서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다. 다진 고기, 양파, 마늘, 당근에 토마토까지 썰어 넣어 소스를 만든다. 넉넉하게 만들면 라자냐 한 번은 더 해 먹을 수 있고, 한 그릇 요리 중에서는 꽤 영양식이기도 하다.


남편도 늦게 오는 날이라서 굳이 번거롭게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라자냐가 먹고 싶은 마음에 오직 나를 위한 요리를 했다. 내가 이런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다니! 라자냐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밖에서 사 먹으면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싸다. 직접 해 먹으면 요리하는 과정에서 위생에 신경을 쓰기도 하고, 간도 내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식을 건강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이로운 일이다.


즐거울 일이 없었던 하루가 직접 요리함으로 인해서 특별해졌다. 좋아하는 요리를 건강하고 배불리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하루는 의미가 있었다. 요리는 몰입의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기 효능감도 올려준다. 그러니 기분이 우울할 때는 간단한 요리라도 직접 해 보자. 나를 제일 먼저 아낄 수 있는 사람은 나다.


라자냐, 이게 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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