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트인사이트란...
“인생에 이벤트가 없어.”
친구가 말했다. "내일, 다음 달 뭘 할지가 다 예상 돼. 일상이 똑같아."
씁쓸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알게 된 건, 혼자 가만히 있으면 인생에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는 것.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뒤늦게 실감한 편이다.
어릴 적에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이벤트가 마구 생겨났다. 세상을 처음 알아가는 백지 같이 무구한 아이. 거기에 나를 보호하고 가르쳐 주는 어른들. 그들이 제공하는 상식과 호의와 질문.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고 가끔 토라졌다가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작은 규모지만 모험처럼 펼쳐지는 첫 대인 관계. 그때는 처음 겪는 날씨, 처음 듣는 단어, 처음 가보는 장소, 이 모든 것이 다 새로운 사건들이었다.
세상에 대한 경험치가 쌓여가면서 사건이었던 일들 역시 의미가 변해갔다. 한때 새롭고 놀랍던 것들은 으레 그렇게 진행되는 일, 익숙한 삶의 배경으로 변모했다. 어떤 일에 대한 배경이나 발생 원리를 이해하게 되니 사건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니게 된 것이다.
가끔 너무 익숙해져서 뻔하고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일들에 대해 메커니즘을 다 알아버린 함수 상자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 수학 시간에 함수를 배울 때, 함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는 상자가 있지 않은가. 위아래 지그재그로 투입구와 배출구가 뚫려있는 그 상자 그림.
단계별로 마련된 함수 상자를 돌파해나가다 보니 이제는 상자 여럿 띄워져 있던 운동장보다 더 넓은 들판에 들어온 기분이다. 과거 내 성장의 운동장에 함수 상자들이 촘촘히 줄지어져 있던 것과 달리 이곳은 상자들이 띄엄띄엄 있거나 잘 보이지 않는다. 상자와 상자 사이를 가리키던 화살표 같은 것은 더더욱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미성년자에 학생이 아닌 나는 화살표 없는 자유를 마주하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인생 자유도는 즐거운 놀라움을 몰고 오는 이벤트들을 점점 더 많이 내 손으로 기획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씨앗을 뿌려놓고 기다리는 것. 그뿐 아니라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씨앗과 아닌 씨앗을 구분 짓는 것, 내가 뿌렸던 씨앗을 적당히 잊고 있다가 꽃이 피어난 모양에 놀라는 것 또한 나의 몫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성인이 된 나는 이제 스스로 즐거울 일을 만들고, 판을 벌여야 했다.
다시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려본다. 나는 자기 생활의 회색 순간을 말하는 친구를 보며 새로운 취미를 가져 보자고 덧붙였다. 말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친구도 이걸 모르진 않을 거라고. 다만 친구는 워라밸을 챙기기 힘든 일을 하고 있었고, 숱한 야근이 그 애의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바싹 말려버렸다.
새로운 이벤트를 맞이할 가능성은 가 보지 않은 곳에 있을 테지만, 당장 알던 길을 택할 힘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갈 수 있는 길은 은연중에 정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 무력감은 나이와 상관없이 앞으로 남은 인생이 너무 길고 아득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나는 친구와는 다른 의미로 나 자신에게 베풀어 줄 여유가 없었다. 내 경우에는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나를 같은 자리에 못 박히게 했다. 인생에 이벤트는커녕 내일이 기대되지 않던 시기였다.
자취방 바닥에 앉아서 노트북 화면 앞에서 길게 고민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화면에는 16만 원 상당의 글쓰기 강의 결제창이 떠 있었다. 지금이라면 E 작가님 강의인 걸 알면 당장 결제부터 할 텐데, 그때는 그 작가님이 어떤 글을 쓰시는 분인지도 몰랐던 데다 나 자신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경제적인 이유가 없던 건 아니지만,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나는 '내가 감히 이 돈을 나한테 써도 되는지'를 걱정했다. 필수적인 의식주도 아니고 이렇게 취미에 돈을 써도 되나? 내가 뭐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 모습들이 미련하고 아프고 안쓰럽다. 그때 너한테 그 정도는 당연히 써도 된다며 등 떠밀어 준 지인에게 매우 고맙다. 겉으로 보기엔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지만 내면으로는 불안과 자기 비하라는 산을 넘는 우여곡절 끝에 강의를 결제했다.
수업에서 다른 수강생들이 발표하는 과제 글을 들으며 나는 글쓰기 모임이 일종의 자조 모임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상처를 글로 정제하여 진주처럼 내보내는 분들이 많았다. 진주는 아름답지만 실상 진주를 품었던 조개에게는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결국은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글이든, 노래든 자기 몸에 잘 붙는 표현 수단을 찾아서. 결핍이나 고민, 고통 속에서 빚어진 글들은 그 솔직함만으로도 빛났는데, 각자의 관점과 경험을 거쳐 다 다른 빛을 냈다.
나는 거기서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과는 다른, 내 고통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연민의 눈동자를 처음 보았다. 그 시선은 아직도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 눈빛 덕에 나도 내 진주를 내보낼 준비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N을 만날 수 있었다.
N은 이미 달필가로 글에 막힘이 없어 보였고, 자기 얘기를 할 때의 가감 없는 솔직함이 그의 글 낭독을 듣는 이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무엇보다 자기를 소개할 때 나와 비슷한 전공을 하고 있다는 말에 관심이 샘솟았다.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다 책상에 앉는 것 자체가 두려워질 지경이 되었는데도 나는 결국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졌을 거라 여겨지는 사람에게 끌렸다.
나는 첫 수업이 끝나고 N에게 말을 걸었고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향적인지라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친해지고 싶었다. N은 내게 궁금증을 일으키는 사람이었고 계속 말을 걸어 보고픈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무엇을 주로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그의 글 뒤에는 또 어떤 역사가 있을까. 알고 싶었다.
N과는 마지막 수업일에 따로 카페에서 담소를 나눴다. 다행히 만남이 지속되었고 나는 N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가 글을 쓰고 있다는 브런치(지금은 브런치스토리)와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N의 문화생활과 글쓰기 생활에 대해 물었더니 자연히 나온 이름들이었다. N을 따라 뒤라스 극본의 연극과 <지하철 1호선>이라는 뮤지컬을 같이 보기도 했다. 두 공연 모두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 작품에 해당했다. N이 쓴 후기를 읽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트인사이트에의 첫 발걸음이었다.
N은 내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지원해 볼 것을 권유했는데, 나는 그로부터 못해도 반년은 더 지난 뒤에야 지원했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지워짐 없는 온라인 공간에 글을 올리기가 두려웠던 탓이다. 대신 다른 플랫폼에 필명으로 글을 연재하면서 '내 손에 붙고 다음에 대한 의욕이 생기는 표현 수단'이 다름 아닌 글쓰기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덧 글쓰기 친구가 된 N과 서로의 글을 피드백해 주며 글 한 편 한 편을 발전시켰다. 남에게 얘기하기 부끄러울 수 있는 경험도 N에게 보여줄 글에 쓸 때는 부끄럽지 않았다. N 또한 자기 경험을 직면하는 글들을 썼으니까.
N이 공사다망해지며 우리의 글쓰기 교류도 왕래가 줄어들게 되었다. N은 이제 전처럼 내 글을 읽어 주기 힘들다고 했다. 그 뒤로는 글쓰기 친구가 점점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N이 바빠진 시점은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한 이후의 일이었지만, 글을 통한 N, 그리고 독자들과의 교감은 나로 하여금 보다 다양한 경험을 원하게 만들었다. 내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 주기에 인색했던 나는 드디어 변화했다. 이제 나는 예측하기 힘든 새로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먼저 나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원래 있던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탓도 있지만, 누군가의 평에 따르면 나는 소속감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서에도 썼지만, 20세기 프랑스의 유명 여성 작가의 실화를 다룬 영화 <콜레트>에서 그려낸 예술가들의 살롱 장면은 나를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들었다. 글 쓰고 노래 부르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자기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고 그에 대해 대화 나누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에 나도 들어가고 싶었다. 나 역시 나만의 이야기를 가지고서. 그것이 아트인사이트에 지원한 가장 큰 동기였다.
지원서를 쓸 당시만 해도 ‘형식을 잘 지켜야 하는 글’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이 다 사라지지 않았을 때라 글을 쓰면서 질질 울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것보다 더 크고 절박했다.
그래서 아트인사이트에 글, 그림을 기고하는 분들이 모인 인사이트 데이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에디터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만큼이나 기뻤다. 내가 설마설마하며 과거에 뿌려 둔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내가 바라던 종류의 꽃을 피워서 돌아온 것 같았다. 물론 꽃잎의 크기나 세밀한 모양새는 상상 너머의 것으로, 인사이트 데이 당일에 확인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그 꽃은 나 혼자 피울 수 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할 글을 완성하기 위해 각자의 책상에서 노력하는 필진들을 ‘글벗’이라 따듯하게 불러주던 동료 에디터 님. 아트인사이트를 생생히 살아 있게 만들어 주는 모든 글, 그림 기고자 님들. 문화초대 협력업체 종사자이신 분들과 작품을 만들어가시는 예술가 여러분들. 그리고 늘 아트인사이트 운영뿐만 아니라 필진들의 성장에 진심이신 아트인사이트 대표님.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아트인사이트라 생각한다.(아트인사이트 구성원들을 읊조리고 있으니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마감도 정말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잔뜩 쪼그라들어 있던 나는 부족한 자기 확신 속에서도 내 존재감의 부피를 다시 키우기 위한 선택을 했고, 그건 바로 거주지 근처에서 열리는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그때는 글이 나라는 존재에 미칠 영향을 알고 의도한 행동이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니 당시 내가 살 길을 찾아가려 낸 본능적인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수업에서 친구가 될 N을 만났고, N의 권유 덕에 나는 더 많은 글벗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혼자서는 접하기 힘들었을 작품들, 그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멋도 참 많다.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오는 문화소식이나 다른 필진의 오피니언 글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작품이 한두 편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취향, 장소를 따라 예술을 향유하기 쉬워지는데 이곳에는 늘 새로운 예술적 자극들이 많아 내 취향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지는 듯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강점인 내게는 사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늘어나니 기쁜 일이다. 예컨대 연극보다 영화에 친숙했던 나는 이제 소극장의 맛을 알아버리기도 했다.
‘Project 당신’(지인 혹은 아트인사이트 필진 인터뷰 후 글을 기고함)이나 공통 주제 글쓰기, 그리고 여러 형태를 시도하는 아트인사이트 내부 인원들의 교류 모임 등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깜짝 이벤트들이다. 얼마 전에는 ‘Project 당신’의 문화초대를 통해 첫 에디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어느새 2023년이 몇십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내년에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음.. 우선, 마감에 대한 뒷심을 키워 아트인사이트 프레스에 지원해 보고 싶다.
내년에도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나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트인사이트는 이제 내 인생의 소중한 함수 상자 중 하나구나. 그것도 무엇을 얼마만큼 넣었을 때 어떤 결괏값이 나와서 이제 그 안의 수식을 다 파악한 과거의 이벤트들이 아니라, 계속해서 미지의 수식들이 생겨나고 있는 함수 상자. 시간에 대한 무력감이 아닌, 삶에 대한 기대감을 구성해 나가는 요소 중의 하나. 글쓰기를 통해 찾아낸 살아 있는 장소.
최근 나는 독립서점의 운영 워크숍을 들었는데,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상력이 필요한지. 서점을 꾸려가기 위해 요구되는 다양한 경험은 안전한 선택지인 A와 결과를 알 수 없는 선택지인 B 사이에서 B를 계속 택하다 보면 자연히 쌓이게 된다는 것. 완벽주의가 있던 나는 B를 자주 피했다.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 두렵기도 했고.
앞으로의 시간들에는 선택지 B가 끌리면 외면하지 않고 B를 선택할 수 있는 내가 되어 보고 싶다. 그렇게 쌓은 경험들로 나 역시 살아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일상의 티끌에 흐려져 있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반짝이는 거울처럼 닦아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만들고 운영하는 공간, 혹은 그곳에서 만들어 낸 콘텐츠를 통해서.
상상을 다듬고 다듬어 계획을 세우고 현실로 만들어보자.
그 마음으로 2024년을 맞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