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미터 달리기, 그 마지막 100미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번아웃은 시작되었다.

by Gen

400미터 달리기를 해보았나요?


평소에 달리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감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뛰는 것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나에게 400미터 달리기는 몹시 생소한 종목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육상부에 짝남이 있던 친구가 같이 육상부에 들어가자고 나를 꼬셨다. 나 역시 대학입시 때 올라운더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교과 외 활동을 해야 할 참이었다. 게다가 당시 비인기 종목이었던 방과 후 육상부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입부가 쉬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나는 육상부 일원이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특별히 빠르지도, 민첩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았던 나는, 100미터 달리기, 멀리 뛰기, 투포환 던지기도 아닌, 400미터 달리기에 배정되었다. 참으로 생소하고 모호한 종목이었다. 100미터 달리기나 오래 달리기는 체육 시간에도 많이 해봤지만, 400미터라는 거리를 뛰어본 적은 없었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달렸다가 마지막에는 기어가다시피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200미터 이상을 달리면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400미터는 전속력으로 달리기엔 꽤 긴 거리였고, 나름의 체력 분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아무리 야망 없이 육상부에 들어갔다지만, 너무 부끄러운 결과를 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매일 아침 개인 연습을 시작했다. 몇 주동안 운동장을 돌고 또 돌아 연습하면서 겨우 1분 중후반대를 찍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하고 체력을 아끼고 또 아껴도, 코너를 돌고 뛰는 마지막 100미터는 항상 고비였다. 숨이 차오르고 얼굴이 터질 것만 같은데, 다리는 계속 움직여야 했다. 이때 승패가 갈리니 속도는 오히려 더 올려야 했다. 다리가 더 이상 내 다리 같지 않고 저려왔다. 발바닥에서부터 열이 올라오고 온몸이 빨갛게 익는 것만 같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저히 마지막엔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코치에게 볼멘소리로 말하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팔을 휘둘러.”


코치는 팔을 휘둘러야 한다고 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팔을 열심히 휘둘러야 몸이 나아간다고. 마지막 100미터는 팔로 뛰라고.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고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도, 팔을 열심히 휘둘러대니 어떻게든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서 어떻게든 달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내 대학 생활이 꼭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쳐있는데, 몸은 이미 내 말을 안 듣는데, 뭘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저 결승선은 어떻게 찍어야 하니까 팔을 휘둘러서라도 힘껏 달리는,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는 마지막 100미터. 그렇게 매일 달리는 기분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부분이 그렇듯, 입시에 필사적이었다. 그대신 대학은 꼭 서울 2호선 위에 있는 대학에 가고, 공부보다는 불나방처럼 향락을 즐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몹시 달랐다. 우선, 나의 대학교는 2호선은커녕 서울에 위치하지도 않았다. 당시엔 주변에 놀거리도 없었고, 대학은 그저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았다.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아니, 최소 수업을 따라가려면 계속 공부해야 했다. 그 와중에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각종 멘토링 활동도 해야 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남들 하는 것은 다 해야 했고, 또 잘해야 했다. 숨이 턱 막혔다.


막연하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나의 행복은 영영 유예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