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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n 05. 2024

무료한 하루는 무료한 하루일 뿐이라고


어제는 머리까지 꽉 꽉 눌러 차 있던 의욕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투두리스트를 확인하며 오늘 마쳐야 할 일을 복기하면서도 심드렁하기만 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의 상태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도 있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자주 겪었다. 아침마다 강탈당한 기분을 느꼈고, 불만에 찬 하루들이 늘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불만은 과거의 기세를 따라가지도, 흉내 내지도 못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또 저 난리가 났나 보다, 남의 일처럼 힐금거리고 건성으로 떠넘긴다. 심각해지지 않는 자기혐오는 반겨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자기기만으로 넘어가기 전에 잽싸게 발을 빼야 하는 주의점이 있긴 하지만.


침대에 잠깐 누워 있는다는 게 오후 시간을 거의 다 보냈다. 차라리 잠을 잘걸. 후회는 반복되지만, 개선되지 않는다. 그냥 잠들면 시간을 허비한 인간이 될 것 같아서 불안해 눈을 못 감는데, 자지 않고 버티면 수면 부족 상태에 빠져서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같다. 의욕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침대 옆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을까, 꼬투리란 꼬투리는 다 잡으려 드는데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이다.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변명을 찾기 위해 뇌가 기어가듯 움직인다.


듣고자 하는 말은 너무 멀리 있다. 귀를 기울일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끝내 닿지 못할 곳에.


무료한 하루는 무료한 하루일 뿐이라고. 어느 하루는 그런 방식으로도 무탈했다고 기록되는 법이라고. 답답해하며 가슴을 치는 소리를 나만 빼고 모두가 듣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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