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옷 대신 향수를 입어요

나의 취향 3

by Blair

'나는 잠옷 대신 No.5를 입어요' 마릴린 먼로가 한 유명한 말이다. 덕분에 No.5라는 향수는 꽤 유명해졌다.



가을이 되면 향수가 생각난다. 향수가 어울리지 않는 계절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여름엔 도저히 뿌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여름엔 그냥 내추럴한 냄새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달라진다. 좋은 향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만으로도 가을이 왔음을 안다.



향수를 이렇게 꾸준히, 오랫동안 사용해본 적이 있던가?



이전부터 쭈욱 향수를 꾸준히 써왔다. 다양한 향수를 쓰지 않아서 그렇지 성인이 된 이후로는 꼭 하나씩 구비해놓고 썼다. 특히 향수를 한 개 사면 꽤 오랫동안 쓴 것 같다. 끝까지 모두 사용해보기는 커녕 결국 유통기한이 다 되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유명한, 유행하는 브랜드의 향수를 하나씩 사서 썼었는데 좋아하는 향이 비슷해서 늘 그러한 종류의 향을 쓴 것 같다.



그러나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아이가 어리던 시절에는 향수를 절대 쓸 수 없었다. 그때는 캔들 쓰는 것도 조심하고 바디 샤워, 로션에도 민감했을 때였다. 한참 그렇게 무향으로 살다 보니 유독 향수의 냄새가 강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아침마다 아이를 맞이해주던 어린이집 선생님에게서 향수 냄새가 더 잘 느껴졌는지, 때론 너무 향이 강해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었던 기억도 있다. 아무튼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한참을 향수 대신 바디크림으로 향을 대신했다. 처음엔 바디크림의 향도 강하게 느껴졌으나 조금씩 점점 옅어져 갔다.



아이가 조금 크자 향수가 그리워졌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사용하면 더 좋겠지만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향수를 검색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여러 가지 향을 맡아봤다.



옛날엔 그렇게 지독하고 강하게 느껴지던 향수가 이제는 내 나이에 딱 어울리는 것도 있었고, 향수 자체로도 젊음을 뿜는 향이 있었다. 향수가 이렇게 나이와 연관이 있었던가. 그래서 그런지 검색해보니 20대에 어울리는 향수, 30대에 어울리는 향수가 있었다. 어릴 때는 그런 것을 모르고(그때는 지금보다 뻔한 브랜드의 향수만 팔았던 듯) 예쁜 용기에 담기거나 아니면, 브랜드의 향수, 혹은 다른 사람이 맡았을 때 좋다는(?) 그런 향수를 사용했던 것 같다.












내 기억의 첫 향수는 더 바디샵의 화이트 머스크 향이었다. 아마도 친구에게 받은 선물에 들어있던 향수였던 것 같은데... 향수라는 느낌보다 바디 미스트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머스크의 향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매번 뿌릴 때마다 몸에서 열이 오르고, 때때로 머리가 아프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다 쓰지 못하고 화장실 방향제로 쓰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이런저런 유행하는 향수를 사용했던 것 같다. 그때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향수는 가짜 향수라는 유언비어가 있었는데, 보통 인터넷으로 향수를 구매하곤 했으니(저렴해서) 나는 아마 오래도록 가짜 향수를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인터넷에서 향수를 구입하던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향수를 구입하기도 하고, 선물을 받기도 했다. 비로소 향수를 구입하는데 자유로운 어른이 되었다.





향수는 어른의 소유인가










2년 전 가을 몇 년 만에 드디어 향수를 새로 사러 갔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고르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향수가 있었다. 그래서 50ml 정도의 크기로 사려고 갔는데 두 가지 향수를 사 왔다. 두 가지 향이 다 마음에 들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다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이즈였다. 30ml, 50ml가 아닌 100ml, 125ml의 대용량으로 산 것이었다. 아마도 얼마 이상 사면 준다는 파우치에 혹했던 것 같다.



향수를 50ml 한 개 사도 2년 동안 다 못쓸 것 같은데... 100ml. 125ml 두 가지라서 50ml 4개와 25ml 한 개를 산 기분이다. 그러면 50ml를 2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최소 8년? 9년 치 향수를 사 온 것이다. 그러나 향수에도 당연히 유통기한이 있고, 내 몸은 한 개이고, 아무리 빨리 쓴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할 양이다.



게다가 그때 나는 향수 샘플도 여러 개 받아왔다. 꽤 비싼 금액이어서 샘플도 넉넉하게 주셨다. 그 샘플 한 개는 겨우 1ml인데 그것도 잘 쓰면 보름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는 것 같다. 2년 후 지금 그 향수는 거의 대부분 남아있다. 그래도 한 달의 스무날은 향수를 뿌린 것 같은데... 대체 언제 다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가을이 되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핑계로 새로운 향수가 끌린다. 요즘 유행이라는 향수의 향도 궁금해지고, 가끔은 새로운 향기가 뿌려보고 싶은 것이다.




지난여름만 해도 여름에 어울리는 향수 리스트를 보고 궁금해진 향수가 있었다. 지난번 면세점에 갔을 때, 그리고 쇼핑몰에 갔을 때 그 향이 진열되어 있어서 맡아봤는데(마스크 위로 맡아야 한다ㅜㅜ) 듣던 대로 향이 정말 좋았다. 특히 여름에 딱 어울리는 향수였는데... 아쉬웠던 것은 집에 있는 두 개의 향수가 여전히 가득 남아있어서 도저히 새로운 향수를 살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존에 가진 것에 여름 향수까지 추가된다면 아마 향수 지옥에 시달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가진 향수는 봄과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하나는 은은한 바닐라 향이 나고 하나는 이국적인 꽃향기가 난다. 가을보다는 봄에 더 어울리는 향수이긴 하지만 사실 여름만 아니면 무난히 어울릴 듯싶다.



무엇보다 10년 전이라면 생각도 하지 않을 향이라서 의아하긴 하다. 기본적으로 조금 진하고 세다. 대신 잔향이 오래가고 유지력이 좋아서 마음에 든다. 자주 뿌리거나, 여러 번 뿌리지 않아도 향이 은은하게 오래간다. 매일 아침 향수를 뿌릴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것은 덤이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도록 남아있는 향수의 잔향을 맡을 때면 나에게 이런 향이 나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향으로 기억되는 사람까진 되고 싶지 않지만, 향기를 머금은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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