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면
인간에게 주어진 선험적인 많은 것 중에는 경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험하는 어떤 것. 그 대상은 경험적인 것이지만 경험기능 자체는 선험적인 것이죠. 이 경험 기능과 같이 선험적인 것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그런 것일수록 더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경험 원리 역시 신성한 것이며 인간이 모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험을 반복하면 익숙해 지죠. 경험에도 종류가 있죠. 일반적, 체험적, 고등감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몸소 해보는 체험적인 것이 있고 듣고 보아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죠. 예를 들면 축구를 몸소 해보는 것은 체험하는 것이고 보기만 하는 것은 경험이죠. 또 보지도 않지만 책에 실린 소개글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고등감각적인 경험이라 하는 것이죠.
인간이 실제로 체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죠. 공간은 이 무한한 우주에서 지구 표면의 일부이죠. 그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은 육안으로 보는 우주이고 더 큰 것은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고 더 큰 것은 이론으로 설명하는 글을 통한 것이죠. 수치로 되어 있는 우주의 크기나 가설적인 다중우주 같은 것들이죠.
시간도 인간의 몸이 직접 체험하는 것은 100년 안팎이죠. 그러나 인간이 이론적으로 들어서 인식하는 것은 천문학적 수치인 것입니다. 공간의 크기도 시간단위로 나타내죠. 100만 광년 떨어진 거리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은 시공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자, 쿼크, 뉴트리노 등등의 소립자와 블랙홀, 암흑물질, 중력자나 광자 등등 그 방면에 관심이 있어 관련 내용을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개념들이 되는 것이 많이 있죠.
진화론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자꾸 보면 익숙해지죠. 생각이나 감정, 행동 등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몸이 그것을 외워 무의식화 되는 효과가 있죠.
의식의 심오한 원리에 따라 사람이, 인격이, 정체성이 그렇게 굳어지는 것이죠. 매스컴에서 반복적으로 보는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뉴스들, 교회나 절에 가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접하는 찬송가나 설교, 설법 등도 사람을 특정하게 틀 잡는데 기여를 하죠.
그런데 그 경험들을 인간은 취사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경험은 모두 합해 원칙 하나만 못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하는 다양한 경험들은 대부분 그 본질이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경험해 보려는 것 자체가 진리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론들도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죠. 아는 사람은 주장하는 태도로 말하지도 않습니다.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은 겸손하게 전달할 뿐이죠.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은 세상 즉 악과 거짓의 근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자신의 의식, 인격을 틀 잡는 사람들은 실제로 극히 한정된 체험만을 하고 인생을 마치게 될 뿐입니다.
인간은 참과 선을 선택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진리를 배우고 창조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체험할 필요가 있죠. (시 34:8)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체득되어 힘들이지 않게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인격의 소유자가 되며 또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원히 살면서 무한한 것들을 체험하게 될 수 있죠. 인간에게 창조주에 의해 원래 설계된 삶의 목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