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날
7월이라지만 그리 덥지 않았던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한껏 긴장한 채 그를 기다리던 나는, 문이 열리며 들어온 바람결에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문앞에 서 있는 그는 사진보다 더 큰 눈을 가지고, 한여름임에도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입고 살짝 땀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뭐야, 사진보다 훨씬 귀엽잖아?’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자리에 앉은 그의 턱에는 다급히 준비한 흔적인지, 데일밴드가 붙어 있었다.
만나기 전, 그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데려와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강아지를 데리고 나타날 줄이야! 살짝 놀랐지만, 강아지는 정말 귀여웠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미국에 온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주로 영어 시험에서나 듣거나 전화 영어를 통해 배려받는 영어에 익숙했던 나에게,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나는 점점 당황스러워졌다. 내가 그동안 배웠던 영어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들어왔던 억양과 전혀 다른 그의 말투에 잘 알아듣지 못할 때면 그저 웃기만 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동자가 원래 이렇게 밝은 갈색이야?”
써클 렌즈를 착용했다는 걸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할까? 렌즈는 영어로 그냥 ‘lenses’라고 하면 될까? ‘착용하다’라는 말은 ‘wear’로 쓰면 맞는 걸까?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단어가 스쳐 지나가면서, 세상에 난 그동안 뭘 배운 거지? 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영어로 이렇게 누군가와 일상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아니?”
그는 내 짧은 대답마저도 마음에 든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카페에 있는 동안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관심 어린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간신히 단답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속으로는 '망했다...'를 되뇌고 있었다. 그도 이 대화가 힘들었을 텐데, 어쩌면 예의상일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하던 찰나, 그는 강아지를 집에 두고 올 테니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중간에 집에 다녀오자는 말이 이상하다 생각해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걸까 싶어 몇 번이나 되물었다.
왠지 좋지 않은 사인인 것 같아서, 그가 다시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알았어”라는 말만 남기고 우버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영어 실력에 대한 부끄러움과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문자가 도착했다.
"K-bbq 먹을까, 아니면 아메리칸 음식 먹고 싶어?"
나는 편안한 음식인 한국식 고깃집을 선택했다. 편안한 옷을 입고 오라는 그의 말에 그레이 컬러의 트레이닝 복을 꺼내서 세트로 입고 나갔다.
"편안한 옷이라며..."
그는 트로피컬 프린트의 셔츠와 검은색 진을 입고 왔다.
"너무 예쁜데? 정말 보기 좋아!"
그리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을 때,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회사 사장님과 마주쳤다. 그 시간에 그 날에 옆 테이블에서 사장님을 만날 줄이야, 믿을 수 없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소주를 시켜 짠을 하고 우리 테이블 계산까지 해주고 가셨다.
술이 살짝 올라온 나는 방언을 하듯 영어가 더 술술 나왔고, 우리는 그 길로 바에 가서 서로의 관심사를 더욱 깊이 나누었다. 함께한 시간 내내 그의 빛나는 눈길이, 비록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를 굉장히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 후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온 나는 (보통 미국 술집은 2시에 닫는다)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그가 문자를 할까? 하는 마음으로.
첫 데이트 다음날 회사에서 그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내내 오지 않았다. 역시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야. 신경 쓰였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 듯 룸메들과 어제의 데이트에 대해 카톡을 했다. 우리의 이야기의 초점은 내가 첫 데이트에 회사 사장님을 만난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이 있는데 같이 갈래?”
회사가 끝나고 늦은 저녁 시간에 드디어 그에게 문자가 왔다. 바로 답장을 하지 않고 한 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좋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게 바로 K밀당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답장을 보낼 때마다 나보다 더 긴 텀을 두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우리는 그렇게 짧은 일주일 동안, 적어도 나는 간을 보며 그의 마음을 살펴보았다.
몇 번의 만남과 몇 일이 지나고, 그는 약속 당일 자신의 일이 예상보다 늦게 끝날 것 같다며 집에서 저녁을 투고해 먹자고 했다. 나는 족발과 뼈다귀탕을 사들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직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그날도 노트북을 들고 계속해서 일을 해야 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일을 마무리한 후, 내가 왜 문자를 그렇게 띄엄띄엄 보내는지 물으니 그는 "난 정말 바빠. 정말이야"라고 대답했다.
잠깐 문자는 보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그가 엄청난 워커홀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중하면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그 후 몇 번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그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난 1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카운터 스툴에 앉아 요리를 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요리를 멈추고 나를 지나쳐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그는 창 밖 너머를 바라보며 물었다.
“1년만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고, 평소에 장난끼 가득한 그인데 뒷모습이 정말 상처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데 기한이 있는 만남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의 눈을 보며 정말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럼 우리 사이는 뭐야? 내가 boy toy야?”
그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 단순히 단어로 그 말을 짐작하고, “아니야, 나는 6개월 더 연장할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럼 총 1년 6개월이야!”라고 하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실망한 듯, 상처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모습에 나는 당황했고,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후, 비자를 연장하면 더 있을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설명을 이어갔지만, 그는 이내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미국인은 사랑한다고 말하기까지 오래 걸린다고 알고 있었고, 오피셜한 관계가 되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 2주가 좀 넘은 시점에 “그래서 우리는 무슨 사이야?”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한국에서는 보통 남자가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물어봐."
"그럼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
나는 그의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대답했다. "좋아!"
외동딸과 막내아들의 피터지는 전쟁이 뒤따를지도 모른 채, 난 그렇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