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익~~’, 스마트폰의 짧은 진동음이 정적을 깨고 허공을 가른다. 딱히 기다리던 메시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폰을 살펴보니 빨간색 알림 표시가 빨리 읽어보라고 나를 재촉한다.
평생 함께 다녔던 회사의 입사 동기들의 단톡방이다. 같은 날 입사했지만 그만둔 날은 각자 다르다. 누구는 짧고 굵게, 누구는 길고 가늘게 직장살이를 마쳤다. 누구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평생의 밥줄이었던 직장을 모두 그만두었다.
은퇴자들은 고민이 많다. 생계를 위한 경제적 문제가 제일 크지만, 은퇴 후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중요한 고민거리다. 일에 지쳐 살다가 갑자기 넘쳐나는 시간 앞에 무력해지게 된다.
단톡방에 들어가니 동영상 하나가 다운로드를 기다리고 있다. 보낸 이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한다. 박 이사다. 입사할 때는 모두가 평등하게 사원으로 시작했지만 퇴사한 후의 직급은 각양각색이다. 은퇴자는 퇴사할 때의 직급이 죽을 때까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부장, 이사, 상무, 전무, 사장····,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다 그렇게 부른다. ‘야! 그냥 이름 불러~~’ 라고도 해 보지만, 과거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음인지 회사 놀이를 멈추지 않는다.
“눈 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동영상을 클릭하니 글과 함께 침대 위에서 막 잠이 깬 듯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첫 장면을 시작으로 그림들이 페이드아웃하며 글도 한 줄씩 바뀌어 가지만, 그림에는 여전히 혼자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고독한 모습이 이어진다. 가라앉은 기타 선율 속에 글은 무심히 이어진다.
“월요일인가 하면
벌써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면
어느새 월말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급한 건지 세월이 빠른 건지
아니면 삶이 짧아진 건지
마음속의 나는 그대로인데
거울 속의 나는 어느새 늙어있고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해놓은 건 없고
어느 하늘 어느 동네에 살든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음 좋겠어요.”
제목도 없고 글쓴이도 알 수 없는 영상의 플레이가 끝나고 나니, 가슴이 철렁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릴없이 흐르는 세월에 대한 한탄을 넘어, 나이 든 이의 진한 외로움이 시간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음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글은 다른 이들의 행복을 빌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염원하는 자기 최면의 말이다.
유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사람들은 잊고 있었던 세월을 꺼내어 그간 무심하게 묻어두었던 시간의 흐름을 체크한다. 순식간에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나이 듦과 이루지 못한 성과에 놀라며 탄식하기 마련이다. 오늘 유월의 마지막 날, 박 이사는 이러한 감성을 다른 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나 보다. 동병상련의 단톡방 사람들과 아쉬움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마음속의 허함을 달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메시지가 도착한 단톡방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른다. 메시지를 받으면 응당 답을 하는 것이 상식이건만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20여 명의 회원 모두 박 이사의 글을 읽었음에도 약속이나 한 듯 씹고만 있다. 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유월을 보내는 박 이사의 감성은 그렇게 외면당하고 있었다.
단톡방에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다. 단톡방에 참가하고 있는 회원 모두에게 공통되는 공적인 주제의 메시지만을 게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적인 내용의 메시지를 올려서는 안 된다. 시도 때도 없는 사적 메시지의 향연은 결국 소란한 알림음 공해를 불러오고 화난 회원들의 방 탈출에 불을 붙이게 된다. 그렇더라도 평소 같으면 농담 어린 한두 마디 댓글이 달릴 수도 있으련만, 모두의 마음속 정곡을 찌른 메시지가 그마저 일축해버렸나 보다. 단톡방의 불문율을 떠나, 숨기고 있던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침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 들수록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고 한다. 은퇴 후 일을 멀리하게 되니 외로움의 시간은 급격히 늘어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은퇴자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활동 영역이 좁아짐에 따라 주변의 알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마련이다. 종국에는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오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야 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 활동이 줄어드는 만큼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가끔가다가 아내가 한마디 한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나면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묻는다. 여자들은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서 놀 수 있는데 남자인 내가 걱정스럽단다.
나 혼자 놀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행히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다. 목공도 배우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식물도 기르며 나름 혼자 놀 준비를 하고 있다. 아내더러 걱정 붙들어 매라고 큰소리친다.
몇 년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만났던 어느 할머니의 삶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아흔아홉 행복한 정원사’라는 제목의 영상 속 할머니는 홀로 살며 몸소 가꾸는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60대 중반부터 가꾸기 시작했다는 정원에 하루 종일 머물며 사는 그는 정원이 자신의 친구이며, 직장이며, 놀이터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시간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꽃, 나무, 그리고 새들과 함께 있기에 그는 혼자 노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놀며 교감하고 있다. 상대할 사람 하나 없어도 그저 평안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이 얼굴 한가득이다.
할머니의 생명을 길러내는 작업은 이 세상에 태어난 본분을 다하는 숭고함이 가득 묻어났다. 인생이 다할 때까지 자연과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나와 끝까지 동행해 줄 친구를 얻는 방법임을 깨닫게 했다.
나는 지금 자연과의 교감을 배우는 중이다. 미래의 혼자 놀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