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쳐지지 않은 역사

제주4·3평화공원

by 인생여행


제주 4·3평화공원은 제주시 봉개동의 중산간도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4·3평화공원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제주에서 있었던 뼈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화해와 상생을 열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평화·인권기념관이다. 공원은 평화기념관, 위령제단, 위패봉안실, 위령광장, 유해봉안관, 각명비원, 행방불명인 표석 등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역사적 사실의 많은 부분을 은폐하며 후세에 가르치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분개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7년에 시작되어 1954년까지 긴 시간에 걸쳐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수많은 국민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던 역사적 사건은 반세기 동안 학교에서 가르쳐지지 않았다. 내가 학교 교육을 받았던 그 긴 시간 동안 제주 4·3사건에 관한 어떤 것도 들어보았던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이 사건은 장기간의 군사독재가 종말을 고하며 서서히 수면으로 떠올랐지만, 과거에는 이를 거론하는 것조차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로 우리 역사의 어두운 터널 안에 굳게 묻어두고 싶었던 판도라의 상자였다. 좌익 세력의 토벌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실을 변명할 수 없었기에 역사에서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큰 비극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군의 대응 과정이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적 살육의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치 못한다.


2000년 1월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요청으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진상조사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하였다.


2022년이 되어서 비로소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결정되었다. 보상을 위한 신고 과정에서 4·3사건으로 희생된 가족이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로부터의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최근까지도 보상받기를 꺼렸다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응어리진 가슴을 움켜쥐고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며칠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전 고위공직자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제주 4·3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숨겨졌던 민낯이 드러났다. 제주도 출신의 동급생을 빨갱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폭언했다는 그 사실에서 그동안 가르쳐지지 않은 역사가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청소년의 그런 언행의 결과는 오랫동안 이를 숨겨온 나이 많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큰 책임이 있다.


제주도민으로서는 최소 3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가족과 이웃이 무참히 학살당한, 잊을 수 없는 과거를 결코 지울 수 없기에, 여기 이렇게 추모공원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며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많이 들어본 말이다. 잘못된 역사를 감추어 회피하기보다는 이를 끄집어내어 반성하고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장치를 마련해야만 발전된 미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제주도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곳에서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현장들을 마주하곤 한다.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 세대에서 충분히 반성하고 희생자들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하면서 이데올로기의 싸움에 속절없이 희생된 사람들의 영면을 빌며, 냉정하지 못하였던 정치가들의 오판이 되풀이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1960년 다니엘 벨은 그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¹⁾에서 정보와 지식의 생산이 중요하게 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없어지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말대로 세계적인 냉전의 시대는 물러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나라는 정보의 질보다는 이분법적 논리에 따른 편 가르기가 지속되는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치열한 국가의 하나로 남아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데올로기 싸움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더 부추기는 현실의 정치가들에게 제주4·3사건의 교훈을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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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niel Bell, “The End of Ideology”,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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