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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건 Jan 05. 2024

나쁜 놈

반짝거리는 너와 

반짝거리는 무언가에 끌릴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눈에 띄는 너를 동경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너를, 나도 모르게 질투하면서.


말 그대로 빛이 난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너무 좋았다. 네가 등장할 때면 세상은 온통 설레임으로 물들고, 연인들은 팔짱과 깍지를 끼고 거리를 활보하고는 했다. 초록과 빨간색이 많아지고 들려오는 음악은 캐롤과 그러한 것으로 바뀐다. 트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세상이 트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위해 트리가 등장하는 게 아니라, 트리가 등장했으니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너를 위해.


참 밝다. 아마 난 너처럼 밝기는 어려울 성 싶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과 밝은 건 다르잖아. 긍정이 무언지를 깨닫고 나서야, 밝음이 빛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나서야 해맑을 수 없음을 인정했다. 티 없이 웃는 아이처럼, 세상의 밝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너와 같은 사람처럼, 나는 될 수가 없으니까. 세상에 연민이 가득하다고 느끼지만 동정받는 사람을 보며 세상을 탓하지 않기는 어려운 나는, 도와줄 수 있음에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시선을 돌리고 생각을 돌리는 나는, 아마 평생. 반짝이는. 빛나는 너완 다르게.


아, 정말 나쁜 사람이다. 특별히 내게 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소리치는 진실을,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치에 맞음을 쫓는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아간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삶인가 생각하면, 그렇다. 이게 내 마음이 원하는 삶인가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니 너를 무시하는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너의 목소리에 덜 귀 기울이는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가끔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기어코 옳음과 미래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나를 지켜봐주길 바란다. 슬퍼지고 마음이 약해질 때면 네게 기대었다가 또 떠나가는 나를 보듬어주길 바란다. 원할 때만 찾고 필요가 없어지면 내 갈 길 가는 이런 나밖에 모르는 나를,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기적인 사람인 내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길 바란다. 반짝.


검은 바탕에 빛나는 트리야. 분명 고민이 있었는데, 홀린 듯 네 앞으로 왔다. 난 너의 정체를 알아. LED, 전기, 전하의 이동, 빛의 직진과 회절, 그림자, 입자성, 그리고 따뜻함. 마지막에 기어코 어울리지 않는 한 단어를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반짝이는 네가 참아. 그리고 이해해 줘. 그리고 도와줘. 그리고 보듬어줘. 그리고 지켜봐 줘. 나쁜 놈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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