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기 싫다

by CHO

예전부터 나는 나이 드는 것이 몹시 싫었다. 막상 나이가 들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 여겼지만, 아직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생각은 여전하다. 주변 친구들이 내 생각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만 유독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유를 정리해보면 크게 세 가지다. 자유로움에 대한 과도한 동경, 젊음에 대한 환상, 그리고 어른에 대한 편견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로움’은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영적 자유와는 조금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고, 무언가에 깊이 빠져 열정을 쏟아붓는 상태를 의미한다. 음악에 미쳐 사는 뮤지션이나 몇 달씩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유로워 보인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것 하나에만 온전히 몰두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타고난 현실주의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의 삭막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자라며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늘 그랬다. 그럼에도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과 일탈에 대한 갈망은 항상 내면에 자리해 있었고, 언젠가는 이를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품어왔던 것 같다. 이 생각은 ‘나중에 대학만 가면’, ‘이십 대 때에는 나도’라는 말로 포장된 채 과도한 동경으로 이어져 왔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청춘’이라는 단어를 신격화하고, 고등학생들이 대학교 축제 영상을 보며 재수와 삼수를 결심하는 모습 역시 이러한 동경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이 동경은 결국 젊음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진다. 젊을 때만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해방감을 누리지 못했다고 느끼는 학생들이나, 이미 젊음이 지나갔다고 체념한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오해다. 심지어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들조차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밤새 술을 마시고 새벽에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삶을 자유라 부른다 해도, 그것은 잠시 허락된 20대 초반의 특권일 뿐이다.


이러한 왜곡된 환상 때문에 나는 나이 드는 것이 더욱 두렵다. 그토록 기다려온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기대했던 해방감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고 방황할 수 있는 시간마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져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어른에 대한 편견 역시 이 조바심을 키운다. 나는 어릴 때부터 50대, 60대가 되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이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왔다. 원하는 운동도 하지 못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평생 몸담은 직장에 매일 억지로 출근하는 ‘아저씨’가 되는 것이 가장 비참한 미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만 보아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어디선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들이 쌓여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듦을 단순한 신체적 노화가 아니라 지혜가 축적되는 시간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결코 절망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새롭게 맞이할 경험과 감정,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떠올리면 설레는 여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여정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청춘은 ‘푸른 봄날’이라는 뜻이다. 봄날은 20대에서 끝날지 모르지만, 푸른 날들은 인생 내내 이어질 것이다. 벚꽃이 모두 떨어졌다고 고개를 떨구기보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면 푸른 하늘과 물든 낙엽이 선사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이 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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