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무고해 지는가_원죄에 관해서...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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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터지기 1년 전쯤이다. '월이'라는 한 기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기방에 방문한 한 승려를 만났다. 그를 접대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어쩐지 꽤 수상하다. '월이'는 '승려'의 짐을 뒤졌고 짐 속에서 '남해안 지형을 상세하게 표시한 조선 지도를 발견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터라, '월이'는 승려가 '일본 첩자'임을 눈치챘다. 그녀는 지도에서 '고성 당항만의 소포포'와 '죽도포' 사이의 육지를 2km가량 지우고 바다가 서로 연결 된 것 처럼 뱃길을 그려 넣었다.


다음해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그들은 '월이'가 그려 넣은 가짜 지도를 통해 들어 왔다. '고성의 당항포 쪽으로...




그러자 지도에 없던 육지가 그들을 가로 막았다. 이 지연 덕분에 조선 수군은 병력을 재정비하고, 해로를 재확인하며 방어선을 구축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원인은 제법 큰 일을 낳는다. 저도 모르게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면 꽤 더 괜찮은 결말을 맞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눈빛, 나의 감정, 감사한 마음,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인연 일수도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을 수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 친구'가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눴었다.




주제는 '원죄', '회개' 이런 내용이었다. 무고한 사람은 무슨 죄를 짓고 있는가,하는 주제였다.




'친구'는 말했다.




모든 인간은 '죄'가 있다고 했다. 그것을 '원죄'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죄'를 포함해서 많은 죄를 짓고 있다고 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에게 '산고'를 주었던 죄, 땅을 딛으면서 수많은 미생을 살생한 죄, 알게 모르게 의식하지 못하며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준 죄"




어쩌면 이런 것들이 '까르마'에 해당되는지 모른다.


깨닫지 못하면 '없는 것'이 되는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집어 넣은 '타조' 모양으로 나는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과 '악'을 구분할 때, '앎'은 어느정도의 역할을 하는가.




'토머스 페러비'는 스물 일곱 살,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191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닥 문제아도 아니고 신동도 아니었다. 학교 성적은 무난했고 특별히 두각을 드러냈다는 기록도 없다. 그는 군대에 입대했고 작전 수행을 위해 장비를 점검했다. 조준경, 계산표, 고도 수치 등...




그리고 작전 수행 중 지시에 따라' 그냥 버튼 하나'를 눌렀다.




이 버튼으로 히로시마에서 약 14만명이 죽었다. 그날 즉사한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방사선으로 죽어간 사람도 있었다. 며칠 뒤 일왕이 항복했다. 전쟁은 끝이 났고 조선이 독립했다. 이 사건으로 죽어야 할 많은 사람이 살았고, 살아야 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생과 사'를 '더존 회계 프로그램'에 넣고 '차변'과 '대변'을 맞춰 복식부기의 '대차균형'을 맞춘다면 그것은 '중립'이 될 수 있는가.




어쨌건 세계사는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서 '앎'의 역할은 무엇인가.




작전을 지시한 이들은 '한 일'을 알있고, 수행한 이들은 같은 '죄'의 무게에서 그만큼 가벼워졌는가. '죄'라는 것의 무게를 '앎'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토마스'의 행동은 '선'인가 '악'인가,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은 철저하게 달라진다. 그는 조용히 전역했고 2000년 3월 16일, 81세의 나이, 평범한 노인으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내가 행했던 수 많은 '악행' 중 인지하고 있는 '악'은 얼마나 될까. 놓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월이'의 이야기처럼 작은 알아차림이 큰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오타니'는 '카르마'를 이용하기 위해, 쓰레기를 줍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참 고리타분한 '동양철학'의 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라플라스의 마녀'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얽히고 섥힌 복잡한 인과관계가 모두 정확한 값을 내놓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가.


나는 오늘 어떤 식사를 메뉴에 올렸으며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


거기에 악의가 없다고 정말 '무고해지는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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